1934년, 한국판 '고양이의 보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꼬마 주인을 구한 고양이 타라 이야기'는 한때 전 세계의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런 고양이와의 깊은 유대관계는 반려동물 문화가 뿌리 깊은 미국이니 가능한 일이고, 한국처럼 천대받는 길고양이가 널려있는 곳에서는 불가능한 에피소드처럼 느껴진다.

- 관련 글: 은혜 갚은 고양이, 타라

하지만 한국에도 고양이 타라 못지않은 충성심으로 은혜를 갚은 90여 년 전 경상북도의 한 이름 모를 고양이가 있었다.


은혜 갚은 고양이 기사 내용

 

■ 고양이의 보은 미담

- 산사태로 집 무너지자 주인 구출하고 순사(殉死)
- 병든 여주인의 곁에서 죽어
- 삼남 대우중의 삽화

'고양이가 자신을 길러준 주인을 살린 은혜 갚은 이야기'


이것은 이번 남부지방의 수재 속에서 일어난 단편영화 같은 스토리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고양이를 떠올리면 인정머리 없는 고약한 짐승으로 안다. 자신을 학대한 주인에게 원수를 갚았다는 옛이야기는 있지만, 주인이 위기에 빠졌을 때 주인을 구하고 제 목숨을 바쳤다는 말은 별로 들은 적이 없다.

시일은 조금 흘렀지만 사건의 전모는 다음과 같다.

- 때는 1934년 7월 23일 오전 10시
- 장소는 경상북도 상주군 외남면 구서리
- 등장인물은 김홍수(40세). 그리고 병으로 꽁꽁 앓아누운 그의 아내
- 추가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 한 마리

▲ 상주군 외남면 구서리 위성사진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고 흙탕물은 집 주변을 휩싸고 돌고 있었다. 천지를 뒤흔드는 우레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가운데 김홍수는 병들어 누워있는 아내를 간호하는 중이었다.

시계가 10시를 가리켰을 때, 부부의 곁에 누워 졸고 있던 고양이가 무슨 감각을 느낀 것인지 벼락같이 일어났다. 이어 미친 듯이 펄펄 뛰더니 문 밖으로 나갔다가 퍼붓는 비를 맞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김홍수의 주위를 빙빙 돌다가 또다시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처럼 난리를 펴는데도 김홍수는 아픈 아내를 간호하느라 고양이의 행동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같은 행동을 세 번이나 반복하던 고양이는 마지막 수단으로 주인의 저고리 앞자락을 물고 밖으로 끌어냈다. 김홍수는 그제야 뭔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밖으로 나왔고, 그를 끌어낸 고양이는 다시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김홍수가 밖에 서서 고양이의 몸이 집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는 그 찰나에 '쾅!' 소리와 함께 뒷산이 무너져 내렸다. 그의 집은 병들어 누운 아내와 사랑스러운 고양이를 삼킨 채 무너지고 만 것이다. 비가 그친 후 무너진 집을 파내고 보니 고양이는 그의 아내 곁에서 고이 잠들어 있었다.

【동아일보 1934.08.16】

 

여기까지가 이름도 남아있지 않은 주인을 구한 '구서리 고양이' 이야기이다.

타라 에피소드를 두고 당시 일부 전문가는 단순히 "영역을 지키려는 고양이의 습성이 발현된 것"이라고 폄하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를 사실이라 보더라도 구서리 고양이는 영역과는 전혀 상관없이 순수하게 주인을 구하려는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타라보다도 더욱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건이 발생한 배경


• 기사에 쓰인 '순사(殉死)'는 '따라 죽을 순(殉)'을 사용한 단어로 함께 죽었다는 의미. 이 한자를 사용한 익숙한 표현은 고대 귀족들의 장례풍습인 순장(殉葬)이 있다.

삼남대우중(三南大雨中)은 '삼남지방의 폭우 속'이라는 뜻으로 여기서 '삼남(三南)'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세 지역을 의미한다.

• 기사의 배경인 '경상북도 상주군 외남면'은 1995년 상주시 외남면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다. 인구수는 2018년 12월 기준 1757명에 불과한데, 80년 전에는 그야말로 사람 보기 힘들었을 산골로 추정된다.(위성사진 참조)

• 기사 내용처럼 1934년 7월 17일부터 영호남 지역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이른바 '갑술년 대홍수'로 경부선·호남선·경남선·마산선 등의 철도가 끊어졌으며, 88명이 죽고 170여 명이 다치는 큰 피해가 발생했다.

▲ 낙동강역 침수상황

• 1934년 7월 24일 오후 5시, 왜관의 최고수위는 10.43m를 기록하였고 금강과 영산강 유역도 범람하며 한반도 남부는 물바다가 되었다. 일제시대의 한반도는 분단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부지방'이라는 의미는 서울·경기·강원을 제외한 지금의 대한민국 중남부 지역을 의미했다.

▲ 왜관교의 수위상승

• 경북 안동은 제방붕괴로 시내 전체가 침수되었으며, 300년 이상 된 영호루(映湖樓)가 이때 유실되었다. 현재의 영호루는 철근 콘크리트로 된 한식 누각으로 복원된 것.

▲ 떠내려간 영호루가 있던 자리

• 1934년 7월 17일부터 내린 비는 25일까지 내렸으며, 전남 함평의 743.9mm를 비롯해 대부분의 지역에 600mm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특히 기사 속 배경인 안동·영주·상주 등 경북지방에는 7월 22일과 23일에만 200mm 이상의 폭우가 내렸다.

▲ 1934년 강우량

• 이어 8월에는 태풍까지 들이닥쳐 사망 787명, 가옥 붕괴 34,380채의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때 조선일보는 거액을 들여 비행기를 대절해 취재와 구호활동에 나섰는데, 이것이 '한국 언론사 최초의 항공촬영 및 취재'였다.

▲ 삼송 2 복엽기

• 비행기 기종은 영화 '청연'의 조선 최초의 여성 비행사 박경원이 타던 청연호(靑燕號)와 같은 것으로, 프랑스제 삼송 2(Salmson 2A.2)를 일본에서 대절한 것이었다. 조선일보의 항공취재는 기록영화로 생생하게 전달되어 구호품 모금이 더욱 수월하게 진행되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고, 홍수로 고립된 지역에 구호품을 실어 나르는 활약을 펼치기도 하였다.

▲ 동아일보의 삼남수재활동 상영회

• 조선일보뿐 아니라 동아일보 등 신문사의 특파원들이 촬영한 상영회는 국민들에게 동포들의 피해상황을 알리고 전국 각지에서 삼남수재의연금(三南水災義捐金)이 답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 고양이의 보은미담 (193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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