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에어프랑스의 퍼스트 클래스(일등석) 모습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의 사진기자 유진 루이스 캐머먼(Eugene Louis Kammerman, 1920~1961)은 1944년 미군과 함께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 상륙했다.

이후 프랑스 여성과 결혼해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의 기자로 르 익스프레스(L’Express)와 협업하며 프랑스에 정착했고 Elle, Paris Match, Life 등의 잡지에 기고하며 많은 사진을 남겼다.

아래의 사진은 그가 촬영한 에어프랑스(Air France)의 1957년 신형 여객기 록히드 L-1649 스타 라이너(L-1649A Starliner)의 내부 모습이다. 외부에서 촬영한 2~3개의 사진을 제외하면 광고를 위해 연출된 세트장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이지만 50년대의 전형적인 퍼스트 클래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950년대에 들어서며 인류는 처음으로 제트 여객기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를 맞았다. 세계 최초의 상업용 제트여객기 '드 하빌랜드 DH.106 코멧(de Havilland Comet) 1형'이 1952년 5월 2일 15:12 GMT에 36명의 승객과 7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런던~요하네스버스 노선(11,265km)에서 정기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런던을 출발하는 BOAC의 드 하빌랜드 코멧》

드 하빌랜드 코멧은 23시간 26분 만에 요하네스버그에 성공적으로 도착했다. 하지만 1953년 5월에는 공중분해, 1954년에는 동체의 금속피로로 인한 두건의 폭발사고를 겪으면서 제트여객기의 시대는 잠시 중단되었다.

《드 하빌랜드 코멧 내부구조》

이후 미국 항공사 보잉이 최초의 대서양 횡단 노선을 재개하고 팬암(Pan Am), 영국해외항공(BOAC) 등이 경쟁에 뛰어들며 여객기 전성시대를 앞당겼다.

《에어프랑스의 수면실》
《침대로 변신한 좌석》

지금이야 일등석(퍼스트 클래스), 이등석(비즈니스 클래스, 프레스티지 클래스), 일반석(이코노미 클래스)으로 여객기의 좌석등급이 매겨져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50년대 초반의 여객기 좌석은 등급이 없었다. 여객기를 탄 것 자체가 이미 VIP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요금이 비쌌기 때문이다.

항공사는 어떻게든 요금을 낮출 수만 있다면 승객수가 급증하고 대박 산업이 될 것을 직감했지만 50년대의 여객기 국제 요금은 국제항공 운송협회(IATA)에서 지정했다. 항공사는 서비스를 놓고 경쟁할 수는 있었지만 가격경쟁은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에어프랑스 승무원》

당시 미국 항공사들은 국내선에 한정해 '코치 클래스(Coach Class)'라는 서비스를 이미 시행 중이었고 이를 유럽행 노선에도 도입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미국 항공사들보다 기체수가 적어 가격경쟁을 하면 상대가 될 수 없었던 유럽 항공사들이 이에 완강히 저항했다.

결국 팬암이 IATA탈퇴를 선언하는 초강수를 두자 극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1952년 5월 1일부터 각 항공사는 간소화된 서비스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할인된 요금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에어프랑스 L-1649 스타 라이너》

이에 새롭게 등장한 서비스는 '투어리스트 클래스(Tourist Class)'였다. 요금은 비수기 왕복티켓 가격이 일반요금(퍼스트 클래스) 254달러보다 최대 30% 저렴한 173달러 13센트까지 떨어졌다. 이는 2021년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6993달러에서 4770달러로 저렴해진 것이었다.

1952년 당시 미국에서 재규어 승용차는 5000달러, 캐딜락은 2500달러 정도. 즉 당시 비행기 티켓 가격이라면 중저가 차를 구매할 수 있었기에 중산층 이상에게도 '새 차를 사느냐, 비행기 여행을 가느냐'를 동일선상에 놓고 고민을 하던 시대였을 정도로 여객기 여행은 소수만을 위한 특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할인된 여객기 티켓이 출시되자 비행기를 통한 여객 숫자는 급증했다. 항공사의 예상대로 티켓 가격 때문에 억눌린 관광수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승객》

할인된 요금을 제공하기 위해서 항공사는 승객의 안락함도 할인(?)했다. 좌석의 숫자는 퍼스트 클래스보다 50%나 촘촘하게 많아졌고, 식사나 음료에도 차별화 정책이 생겼다.

약간의 요금이 할인되었을 뿐이지만 비행기 여행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다. 1957년까지 투어리스트 클래스의 점유율은 전체 항공여행의 70%를 차지했다. 그 해의 IATA 회의에서는 투어리스트 클래스 요금을 20% 할인한 이코노미 클래스(Economy class) 서비스 출시 제안에 동의했다.

《에어프랑스 이코노미 클래스》

이코노미 클래스의 출현에 언론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설마 34인치(86.36cm)를 넘지 않는 좁은 좌석에 알코올음료도 제공되지 않는 여행을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이나 이용할 승객이 있겠느냐는 것.

하지만 여행이 자유화되고 여객의 수요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늘어나자 항공사는 기내 라운지를 없애는가 하면 오히려 퍼스트 클래스를 줄이고 이코노미 클래스를 늘리면서 언론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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