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용의 선구자, 진수방(陳壽芳)

■ 진수방의 1934년 잡지 인터뷰

- 반(半)의 반생기(半生記), 진수방

내가 걸어온 길이요. 얼마 되어야지요. 이제 겨우 열여섯 살이니 인생의 반의 반도 채 못 온 셈인데 무슨 이야기가 있겠습니까.

동생 둘과 싸우던 이야기나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 치마꼬리에 매달려 과자 사내라고 흥얼거리던 이야기나 써볼까요.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 부끄러운 이야기니 어떻게 할까요.

나는 서울서 나고 서울서 자라났습니다. 아버지는 병원 의사 노릇 하시고 어머니는 집에서 우리들 기르시기에 무한한 노력을 하십니다. 나는 부모님의 둘째 딸로 남부러울 것 하나 없이 지금까지 자라왔습니다.

▲ 16세의 진수방

경성 사범부속 보통학교에 다닐 때부터 다른 애들보다 무용에 아주 취미를 가지게 되어 한 주일에 한두 번씩밖에 안 되는 유희시간이 얼마나 좋았던지 몰라요. 다른 애들이 못하는 것을 나 혼자 할 수 있게 될 때의 기쁨이란 지금 여기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쨌든 나는 졸업한 후 부모님의 승낙을 얻어 조택원 선생의 무용소를 찾아가게 되었고 또 거기에서 선생의 무용예술을 배우려고 결심했지요.

그러다가 한 달 동안이나 다녔을까 말까 해서 경성에 천승좌(天勝座) 일행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동무들과 함께 구경가게 되었지요. 처음으로 보는 그들의 춤과 노래는 내 맘 전부를 빼앗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몰래 나는 이튿날도 사흗날도 거기에 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서울을 떠나던 날 나도 함께 떠나게 되었습니다.

때는 2년 전 겨울입니다. 하늘에서 솜 같은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데 나는 기차가 경성역을 떠나자 낯선 동료들의 권유하는 것도 듣지 않고 어떻게 울었던지요. 동생들과 싸우던 일도 가슴 아팠습니다마는 어머니 아버지를 속상하시게 해 드린 일까지도 내 마음을 몹시 쥐여 잡는 것이었습니다.

석 달 동안이나 그들과 한 무리가 되어 이리저리로 떠다니면서 고생하다가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 보고 싶고 또 조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싶은 충동을 가슴에 안고 봄도 오지 않은 작년 2월에 그리운 내 고향 흙을 밟게 되었으며 따라서 다시 조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아무 걱정 근심 없이 날마다 유쾌하게 무용예술에 정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혼자 가만히 앉아서 천승좌 일행을 따라다니던 생각을 하면 코끝이 짜릿해지면서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잡지 '여성' 1936.04.01】


진수방과 텐카츠극단

진수방(陳壽芳, 1921~1995)은 한국 근현대 무용과 발레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존재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은 신여성이라 하더라도 1930년대에 10대 초중반의 여성이 홀로 무용에 대한 열정으로 극단에 가입하고 집을 떠나는 등의 진취성을 보였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해방 후에는 한국무용가 협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국립발레단 창설을 역설하는 등 한국 현대무용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 노년의 진수방

한편, 인터뷰 기사에 나오는 '천승좌'일행은 텐카츠극단(天勝一座)을 말하는 것으로, 도쿄 출신의 쇼오쿄쿠사이 텐카츠(松旭斎天勝, 1886~1944)가 단장으로 있었다.

▲ 쇼오쿄쿠사이 텐카츠

당시 텐카츠(天勝)라는 이름은 곧 '마술사의 대명사'로 통할 정도로 당대를 주름잡았다. 시대를 뛰어넘는 미모로 그녀의 사진은 현재 온라인상에서 '일본 메이지 시대의 미인', '100년 전 게이샤' 등의 제목을 달고 떠돌고 있기도 하다.

▲ 텐카츠의 마술공연

1911년, 27세의 나이에 100여 명 규모의 텐카츠극단(天勝一座)을 창립하여 미국에서도 공연을 성공시키며 짝퉁극단까지 출현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끌다가 1936년 2대 텐카츠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하였다.


진수방이 한국에 온 텐카츠극단을 보고 따라나선 것은 1935년이니 이때는 아직 초대 텐카츠가 은퇴하기 전의 시기이다.

▲ 텐카츠극단 조선극장 공연홍보 【조선일보 1923.06.14】

텐카츠극단(天勝一座)은 조선을 방문하면 경성과 인천 등 각 도시의 극장을 돌며 요술가극 등으로 인파를 몰고 다녔고, 조선에서는 불가능하거나 기이한 일에는 '천승도 울고 갈 일이다', '천승이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등의 문장도 사용되며 한 시대의 획을 그었다.

 

Reference:
• 朝鮮日報社 여성 1-1호. 진수방 (193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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