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기, 소련 미그-23 전투기의 벨기에 추락사건

1989년 7월 4일 오전 9시 14분, 폴란드 콜로브체크 소련 공군기지에서 훈련을 위해 이륙한 미그-23(MiG-23M)의 추력이 40초 만에 감소하기 시작했다.

해당기의 조종사 니콜라이 스쿠리딘(Nikolai Skuridin) 대령은 150m상공에서 엔진 셧다운을 보고한 다음 탈출지시를 받고 10초 후 성공적으로 사출했다.

▲ 미그-21 사출 시뮬레이션

하지만 기이하게도 고장났던 엔진이 멈추지 않고 다시 정상작동하기 시작하며 자동제어장치가 비행을 안정화시켰다. 이후 고도 12,000m를 유지하며 시속 750km의 속도로 서쪽으로 향한다. 이제 소련의 지상통제팀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의도치 않게 무인전투기가 된 미그-23은 소련의 동맹국이었던 폴란드와 동독을 지나칠 때만 해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오전 9시 42분 급기야 서독 영공에 진입하였고, NATO 측이 보내는 경고 무전에 응답하지 않자 유럽미국공군(USAFE)의 F-15 두대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접근한 F-15 조종사들은 미그-23의 조종석 덮개는 떨어져 나간 상태인 데다가 사람과 좌석도 없고 무장도 되어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 교신상황

보고를 듣고 이를 사고로 추정한 NATO 측은 미그-23이 예상경로인 북해로 진입하면 안전하게 바다로 격추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 사고경로

하지만 미그-23의 연료가 바닥나면서 기수가 남쪽으로 선회하였고, 결국 오전 10시 37분경 벨기에 남서부 코르트레이크(Kortrijk)에 있는 농가에 추락하며 무너진 집안에 혼자 있던 18세 소년 빔 델라르(Wim Delaere)가 안타깝게 사망하였다. 폴란드에서부터 900km, 69분 36초를 비행한 뒤였다.

▲ 처참한 추락현장
▲ 상공에서 본 현장

이 사고는 1989년 6월, 파리 에어쇼에서 미그-29가 추락한 것에 이어 미그기가 서방국가에서 추락한 두 번째 사고였다.

당시 평화와 군축을 논의하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하고 있던 고르바초프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고, NATO 측은 소련군이나 동독군이 국경을 넘기 전에 왜 미그-23을 격추시키지 않았는지 의문스러워했다. 그나마 냉전이 막바지에 이르러 소련과 서방측의 갈등이 없던 시절이라 단순사고로 해석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 당시 뉴스보도 / MBC

하지만 벨기에 정부는 미그-23이 1시간 이상 곡예비행을 하는데도 경고를 보내지 않은 소련에 공식적으로 항의했다.

결국 사고기 조종사였던 스쿠리딘 대령은 고인과 가족에게 애도를 표시했고 소련은 685,000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했다. 89년 7월 당시의 환율(1달러 667원)로 적용하면 한화 약 4억 6천만 원(2021년 가치 13억)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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