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여인국’에 대한 언론 보도와 실제 모습

2019년 알프레드 프리드 사진상(Alfred Fried Photography Award) 최종 후보에는 독일 사진작가 말레나 발트하우젠(Marlena Waldthausen)이 촬영한 브라질의 '노이바 두 코르데이루(Noiva do Cordeiro)'마을에 관한 작품이 출품되며 눈길을 끌었다.

191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알프레드 헤르만 프리드(Alfred Hermann Fried, 1864~1921)의 이름을 딴 알프레드 프리드 사진상(Alfred Fried Photography Award)은 2020년부터 '세계평화사진상(Global Peace Photography Award)'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이곳은 한때 세계 언론에 싱글들을 들뜨게 만드는 "남자 찾아요"라는 자극적인 문구와 함께 '미녀 600명이 모여사는 여인국'으로 소개되며 눈길을 끈 바 있다.

▲ 한국신문에 보도된 모습

기사 내용을 간추려보면, 여성들만 모여사는 이 마을에서 남성은 18세가 되면 타지로 떠나야 하고 유부녀의 남편은 주말에만 방문이 가능하다. 이곳의 미혼 여성들은 '기존의 방식이 아닌 이곳의 질서를 따르며 살 수 있는 남자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 여인국이 아니라 실은 여성 주도의 공동체

하지만 노이바 두 코르데이루에는 사실 남자도 128명이 거주하고 있다. 단지 여자가 200명으로 훨씬 많을 뿐이다.(2020년 기준)

▲ 노이바 두 코르데이루 위치

이곳의 주민 로잘리 페르난데스 페레이라(Rosalee Fernandes Pereira, 50)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떤 언론에도 자신들은 남편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마 2008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 여성이 장난으로 "이곳엔 남자가 없어요."라고 한 말이 와전되어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언론들이 '아마조네스들이 남편을 찾고 있다!'고 과장 보도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 집을 짓고 있는 남자주민들

남자들이 주말에만 오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긴 하다. 돈벌이를 위해 대부분의 남자들은 인근 도시인 벨루오리존치(Belo Horizonte)의 수도회사나 광산에서 주중 내내 숙식하며 근무한다.

직업 때문에 주말에만 돌아오는 것일 뿐, 남자가 주말에만 방문하도록 규칙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 주말에 남편이 오기전에 서로 화장해주는 모습

여성들은 남자들이 없는 주중에 좀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삶을 위해 일종의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이것이 현재 노이바 두 코르데이루의 기초가 되었다.

■ 마을의 역사

1890년대, 이 근방의 마리아 세노리냐 데 리마(Maria Senhorinha de Lima)라는 여성이 아버지의 강요로 인해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한 마리아는 3개월 만에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도주했다.

▲ 노이바 두 코르데이루 전경

이는 당시에는 범죄에 가까운 행동이었기에 가톨릭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받으며 마리아는 연인과 함께 4대 자손까지 파문을 당했다.

심지어 지역의 여성들까지 싸잡아 '매춘부'로 낙인찍혔고, 결국 사회로부터 배척당한 이들이 살기 위해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게 된 것을 마을의 출발시점으로 보고 있다.

▲ 주민들의 주업은 농업

이후 1940경, 개신교 복음주의 목사인 아니시오 페레이라(Anísio Pereira)가 이곳에서 16세 여성 도나 델리나(마리아의 손녀)와 결혼 후 노이바 두 코르데이루(Noiva do Cordeiro)라는 새로운 종파를 만들었고, 배척받으며 살던 주민들을 개종시켰다.

▲ 도나 델리나는 현재 마을의 촌장격이다.

아니시오 목사가 세운 규칙에 따르면, 주민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을 듣는 것도 금지되었고 피임도 할 수 없었다. 여성들에 대한 규율은 더욱 가혹해서 긴 머리와 롱드레스만 입어야 했으며, 남자의 말이 우선되었고 매일 몇 시간씩 기도를 하는 엄격한 생활을 해야 했다.

안 그래도 가톨릭 질서에 반하는 기원을 가져 찍힌 마을인 데다가 개신교 복음주의 목사가 만든 폐쇄성 탓에 외부인들의 눈에는 남성 노동자들이 주말을 맞아 단체로 '매춘부들이 모여사는 것으로 소문난' 곳으로 들어간다는 오해를 사기엔 충분했고 마을은 더욱 고립되었다.

▲ 여성들만 모여있는 모습은 많은 오해를 낳았다.

노이바 두 코르데이루는 1995년에 이르러서야 아니시오 목사가 사망하면서 숨통이 트이게 된다. 목사의 딸 노엘리(Noeli)는 결혼식 전날 도덕적 금욕주의가 만연한 마을에서 금지된 음악을 연주했다. 아버지가 만든 규율을 자손이 스스로 없앤 것이다.

그렇게 교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이들은 오랜 고립생활로 인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지라 지역사회에서 여전히 거부당했다.

▲ 최근 코로나19 백신을 맞는 모습

결국 종교적인 목적이 아닌 생존을 위해 이들은 자발적으로 모였다. 주민들은 그동안의 규율에 질렸는지 모든 규칙을 폐지한 것은 물론, 위계질서나 특권이 사라진 새로운 공동체를 출범시켰다.

 

■ 마을 생활

▲ 식당에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주민들

마을은 80명까지 수용 가능한 중앙회관과 70개의 주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회관에는 주방과 거실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사는 곳은 달라도 여성들은 이곳에서 순번을 정해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청소하고 아이들을 보살핀다.

▲ 회관에 있는 유일한 TV는 외부와의 소통창구다.

누군가 시내로 물건을 사러 갈 때면 마을 주민 전체에게 목록을 받아 구입하며, 농장에서도 잡초뽑기부터 땔감까지 함께 마련하고 마을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공동으로 판매하고 있다.

▲ 생산된 농산물을 판매하는 여성들

오후에는 바느질, 노래, 연극, 악기 등 자신들이 하고 싶은 활동을 하는데 함께 일하는 만큼 자기 시간을 가지게 되었기에 이곳에서 나고자란 토박이보다는 외부에서 억압을 받으며 살다가 들어온 주민들의 만족도가 더욱 높다고 한다.

▲ 바느질 취미활동 중

많은 학자들이 이곳을 샘플로 삼아 '모계사회', '사회주의', '풀뿌리 민주주의' 등의 용어를 붙여 좋을 대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의 고립과 공동체 생활에는 나름의 역사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결국 주민들 간의 사랑과 동정이 마을을 지탱하는 근간이며, 다른 것들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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