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히피들의 여행코스였던 이란-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네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이 배낭여행의 전성기라면,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는 히피문화에 심취한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아시아로 떠나는 '히피 트레일(Hippie trail)'의 시대였다.

이들의 주요 루트는 유럽에서 출발해 「이스탄불(터키)-테헤란(이란)-헤라트(아프간)-칸다하르(아프간)-카불(아프간)-페샤와르(아프간)-라호르(파키스탄)-인도-네팔-동남아시아」로 향하는 것이었고, 「터키-시리아-요르단-이라크를 거쳐 이란-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으로 향하는 루트도 있었다.

▲ 히피 트레일 루트

이런 여행 방식을 택한 사람들은 박물관등의 명소를 방문하는 전통적 관광보다는 현지인과 어우러지는 것을 선호했고, 젊은 층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저렴한 방법으로 오랜 기간 여행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미니버스를 대절해 출발하거나 동유럽에서 테헤란까지 운행하는 열차를 타고 이동한 다음, 현지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했다.

여행객의 대부분은 서유럽인들과 캐나다와 미국, 호주, 일본인 등으로 이들은 주요 코스나 숙소에서 맛집이나 핫플레이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는 등 세계인이 된듯한 기분을 느꼈을 법한 흥미진진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히피 트레일은 1970년대에 접어들며 주요 루트 국가들의 정치적 변화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되었다. 중동 쪽에서는 욤키푸르 전쟁이 발발하며 서구인들에게 비자를 제한했고, 1975년에는 레바논 내전 발발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다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발생하자 여행객들의 육로는 전면 폐쇄되었고, 파키스탄의 치트랄과 인도의 카슈미르도 긴장관계에 접어들며 히피 트레일의 시대는 완전한 끝을 고했다.

아래는 1966년 유럽인들의 히피 트레일을 사진으로 담은 모습이다.

▲ 여객선을 타고 출발지인 벨기에 오스텐드(Ostend)로 향하는 여행객들

▲ 독일 쾰른(Cologne)의 밤거리

여행을 책임질 자가용 버스

▲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Belgrade)의 백화점에 들른 여행객들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거리의 음료수 가판대

▲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Sofia) 거리의 차량과 트램(노면전차)

▲ 불가리아 소피아의 대로

불가리아 중남부 플로브디프(Plovdiv)의 전통가옥 대문

터키에서 수박을 사 먹는 여행객들을 현지 어린이들이 구경하고 있다.

이스탄불(Istanbul)의 공원에서 엽서와 사탕을 파는 상인

▲ 터키 이스탄불의 주택가 거리

이스탄불에서 여객선을 기다리는 여행객들

▲ 터키 킬리키안 관문(Cilician gate)의 도로

▲ 터키 안탈리아(Antalya)에 도착한 버스를 주민들이 신기해하며 구경하고 있다.

▲ 터키 네브세히르(Nevşehir)에 있는 괴레메 국립공원(Göreme National Park)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행객들

괴레메 국립공원 내에서 복숭아를 팔고 있는 터키 어린이들

▲ 괴레메 국립공원 수돗가에서 몸을 씻는 여행객들. 이런 방식의 여행이 유행인 시대라 여러 대의 버스가 정차해있다.

▲ 시리아 라타키아(Latakia)의 가방과 가죽 상점. 사장이 손님을 기다리며 물담배를 피우고 있다.

▲ 시리아 라타키아에서 버스 옆으로 마차가 지나가는 모습

▲ 시리아 다마스쿠스(Damascus)의 대형시장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귀여운 어린이들

▲ 레바논 베이루트(Beirut)의 화물열차

레바논 베이루트의 그릇가게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여행객이 현지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 레바논 비블로스(Byblos)의 어린이들

레바논 비블로스의 유적에 올라가 사진 촬영을 하는 관광객들. 지금이라면 금지된 행동이다.

▲ 이스라엘 베들레헴(Bethlehem)의 버스터미널

▲ 이스라엘 예루살렘(Jerusalem)과 요르단 암만(Amman)을 잇는 도로에 잠시 멈춘 버스

▲ 예루살렘-암만 도로가의 오아시스. 현지인이 관광객들을 피해 멀찌감치 떨어져 기다리고 있다.

예루살렘-암만 도로가의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 요르단 제라시(Jerash)의 로마 유적지

요르단 제라쉬의 로마 유적지

이라크 북부 도시 카나킨(Khanaqin)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행객들

▲ 카나킨(Khanaqin)의 유적지에서 일광욕을 하는 여행객들

이라크 카나킨의 주택가

▲ 이라크 동부 쿠트(Kut)의 허름한 버스정류장

▲ 이라크 크테시폰(Ctesiphon) 호스로 2세의 황궁 아치 유적.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대도시로 도시의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바그다드의 남동쪽으로 32km 떨어진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 이라크 바스라(Basrah)의 폰툰 다리를 건너가는 버스

이란에 도착한 여행객들이 정비를 하고 있다.

밀린 설거지를 하는 여성들

이란 이스파한의 냄비 가게

이란 북동부 니샤푸르(Nishapur)에서 한 노인이 당나귀를 타고 가고 있다.

이란 북동부 사브제바르(Sabzevar)의 농지와 당나귀

▲ 사브제바르(Sabzevar) 거리의 과일 노점상과 부르카를 쓴 여성. 사브제바르는 14세기 티무르의 침공을 받아 마을 대부분의 주민 9만 명이 학살되었다. 티무르는 학살 후 주민들의 두개골을 쌓아 세 개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는데, 이는 지금의 사르베리즈(Sarberiz) 광장으로 그 뜻은 '해골의 광장'이다.

▲ 이란 사막지대의 도로를 지나가는 유목민. 유목민답게 어린아이도 혼자서 말을 잘 타는 모습이다.

아이와 여자들을 말에 태우고 걸어가는 유목민의 가장

▲ 사막의 도로가에서 캠핑을 하는 여행객들. 한 양동이씩 주어진 귀한 물로 임시 샤워를 하고 있다. 버스에는 런던-카불이라고 적혀있다.

▲ 지나가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의 화려한 트럭

▲ 여행객들이 아프가니스탄 서부 헤라트(Herat)의 도로에서 멈춰버린 버스를 고치고 있다.

▲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Ghandehar)에서 또다시 멈춘 버스. 아프가니스탄 현지 트럭이 돕기 위해 다가와있다.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의 마을 입구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물을 긷는 여행객들. 현지 주민들이 모두 몰려와 구경 중이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Kabul)의 시장에서 구걸하는 장애인

아프가니스탄 카불 거리와 양철 난로를 파는 상인

▲ 도시화된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인파. 당시의 카불은 자유도가 높아지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지금도 세계 아편의 주 생산지이지만 당시에도 야생 대마초로 유명한 곳이어서 해쉬쉬(hashish) 관광을 오는 히피들도 있었다.

▲ 카불 시장. 양철로 만든 주전자와 냄비를 전문적으로 모여있는 거리이다.

▲ 카불의 간식 노점상. 여성들은 부르카를 착용하고 있다.

▲ 카불의 대로변. 인도가 넓고 잘 정비된 대도시로 '중앙아시아의 파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히피 트레일은 마냥 훈훈하고 안전한 여행은 아니었다. 문화가 다른 현지인과 어우러지는 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범죄가 발생해도 즉각 실종된 사실을 알 수 없는 여행 중인 외국인들이라 미제로 종결되거나 혹은 발생한 사실도 모른 채 덮인 케이스도 많다.

2021년에 방송한 BBC 8부작 드라마 '더 서펀트(The Serpent)'는 이 루트에서의 범죄 실화를 다룬 내용.


▲ 타하르 라힘, 제나 콜먼이 주연을 맡은 '더 서펀트' / 넷플릭스

드라마의 주인공은 프랑스 출신의 찰스 소브라즈(Charles Sobhraj, 샤를 소브라이)라는 실제 인물로 1963년부터 1976년까지 히피 트레일에서 여행객들을 상대로 한 연쇄살인행각을 벌였다. 그는 태국에서만 14명을 살해했으며 자백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20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소브라즈는 네팔의 교도소에서 종신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히피 트레일 루트는 최근에도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곳이라 과거와 같이 완전한 자유여행은 언제 다시 가능해질지 아무도 모른다. 최근의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관광루트는 '과거에는 안전했던' 위험한 분쟁지역을 우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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