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조선의 장발장'으로 불렸던 여자 도둑

183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1862)'에는 '장발장(Jean Valjean)'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가난과 배고픔으로 인해 빵 한 조각을 훔치고 감옥에 갔다가 연이은 탈옥 시도로 19년의 형을 살고도 범죄자의 낙인이 찍혀 평생 추적당하는 비운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

조선에서는 1910년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이 'ABC계'라는 제목으로 처음 소개되었고, 이후 여러사람에 의해 번역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 영화 '레미제라블(2012)'과 빅토르 위고(1802~1885)

레미제라블은 소설뿐만 아니라 활동사진(영화)으로도 상영되었다.

1920년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 동안 종로 중앙청년회관(YMCA회관)에서 조선부식농원(朝鮮扶植農園)이 주최하고 매일신보가 후원하여 '희무정(噫無情)'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서 수입한 레미제라블을 상영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레미제라블 상영회의 만원관객 【每日申報 1920.5.13.】

이는 '조선 최초의 활동사진 상영회'로 기록되었으며, 화제의 작품답게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김덕경(金德經)과 서상호(徐相昊)가 변사를 맡기도 했다.


최초의 상영회가 성황리에 끝난 이후 레미제라블은 식민지였던 조선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생계형 범죄불운한 사연이 있는 사건사고에는 어김없이 '장발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였고 이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 1933년의 장발장(좌)과 2020년의 장발장(우)

 

신출귀몰한 100년 전 여자 '장발장'


193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특이한 사연의 장발장이 검거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당시 '짠발잔'으로 보도된 이 범죄자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이라는 것. 그리고 이미 전과 3범이었다.

▲ 검거된 조선의 '짠발잔' 【每日申報 1934.12.26.】

황해도 해주 출신의 신복순(申福順)이라는 여성은 13세 무렵부터 절도, 사기, 강도 등을 일삼았지만 미성년자라는 어린 나이와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수차례 훈방되었다. 하지만 경성구호소에 데려다 놓으면 어느새 탈출하였고, 전라남도 목포가 고향이라고 하여 경관이 정거장까지 배웅을 해주면 경성에 돌아와 범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탈취한 물품을 팔아 사치품을 구입하였고, 전문학교를 다니는 애인과 요릿집 남자종업원들의 호의를 사는데 돈을 허비하였다.

수차례 범죄행각 끝에 1926년, 18세에 결국 첫 감옥을 가게 된 신복순.

당시 그녀는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몸에 병이 생기고 도둑질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제일 재미있어서 도둑질을 못하게 되면 목숨을 끊겠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 18세 무렵의 '장발장' 신복순 【동아일보 1926.02.12.】

교도소에서 신복순은 일본어를 습득하여 출소했는데 역시나 개과천선하기는 커녕 늘어난 연기력에 더해 어린 티를 벗어던지고 양머리에 하이힐을 신은 모던여성으로, 천주교의 수녀로, 불교의 여승으로, 가정교사로, 평범한 행랑어멈(파출부)으로 다양하게 신분을 바꿔가면서 아래와 같이 범행을 벌였다.

1. 병을 앓는 자에게 명약이라고 속여 마취제를 먹이고 금품을 탈취.

2. 방문판매원을 가장하고 집에 들어가 주의를 돌린 다음 현금과 의류를 절도.

3. 의류상점에 들어가 본인이 성공회 관계자인데, 연말에 쓸 의류 제작을 의뢰한다며 바느질 실력을 검증할 의복과 현금을 보여달라고 한 뒤 절도.

4. 천주교 명동성당(메이지마치 천주교회당) 고아원에 직원으로 취업을 알선해준다며 현금을 사취.


이처럼 처음에는 '장발장'으로 시작한 안타까운 생계형 범행이 기술을 습득하여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을 연상시키는 신출귀몰한 연쇄 사기행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의 '프랭크 애버그네일'과도 흡사한 신복순의 행각

신복순으로부터의 피해가 수십 건에 달하자 1935년 연말을 앞둔 종로경찰서는 경관 1,000명을 동원해 특별경계령까지 내리며 그녀의 검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희대의 여성괴도 신복순은 쫓기는 상황에서도 범행을 멈추지 못하다가 결국 12월 22일 체포당하기에 이르렀는데 피해액은 무려 1만여 원이 넘었다. 당시 경성의 교사월급이 100원 안팎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는 현재가치로 최소 수억 원 단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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