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분리로 인종차별이 일상이던 시기의 미국

미국 남북전쟁(1861~1865) 이후 노예제 폐지를 내건 북부와 달리 농업이 중심이었던 남부는 여전히 노예제를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1877년, 미국 남부지역에 주둔하던 연방군이 철수하자 남부주들은 일제히 흑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우선 투표권을 박탈하자 흑인들은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을 선출하지 못하게 되었고, 백인 정치인들은 흑인들을 차별하는 정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겨난 법이 '짐 크로법(Jim Crow laws)'으로, 합법적으로 남부의 모든 공공시절에서 흑백분리정책이 시행되었다.

짐 크로법과 관련된 법안들은 1964년 7월 2일 제정된 민권법(The Civil Rights Act of 1964)과 1965년의 선거권법(Voting Rights Act of 1965)에 의해 완전히 철폐될 때까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지탱하는 정책으로 남아있었다.

▲ 1902년, 흑인 학생들을 위한 교실.

▲ 1920년, 뉴욕 할렘의 흑인 전용 술집에서 흑인 손님들에게 음료를 주는 흑인 바텐더.

▲ 1922년, 흑인을 위한 야구 관중석. 이 당시 흑인 야구선수들은 메이저리그가 아닌 니그로 리그(Negro league)에서 뛰어야 했다. 흑인들의 리그는 관중석의 공간도 좁고 열악해 마치 동물원의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선수들 뿐 아니라 관중들도 차별받았다.

▲ 1930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드뤼드 힐 공원(Druid Hill Park) 흑인 전용 수영장. 분리정책은 '인종을 분리하되 동등하게 대우하면 차별이 아니다'라는 허울 좋은 논리로 포장하고 있었지만 사진과 같이 흑인들의 시설은 유지보수가 되지 않고 열악해지면서 결국 차별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 1930년, 공장들은 인종에 따라 식당을 분리해 흑인들은 별도의 공간에서 따로 식사를 했다.

▲ 1935년, 앨라배마주에서 열린 지역 축제에서 인종에 따라 지역주민들이 따로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 1937년, 미시시피주 릴랜드(Leland)의 흑인 전용극장.

'유색인종(colored people)'이라는 단어는 남북전쟁 이후 해방된 노예들이 새롭게 자신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만들어냈으나 20세기 중반까지 인종분리를 위해 사용되면서 미국에서는 '흑인'을 지칭하는 차별적인 단어로 변해갔다.


▲ 1938년, 한 흑인 소년이 노스캐롤라이나주 핼리팩스 카운티의 법원 앞에 설치된 흑인 전용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 1939년, 한 흑인이 오클라호마 시티에 있는 흑인 전용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 1940년, 버지니아주 셰넌도어 국립공원(Shenandoah National Park)의 피크닉 구역에 '백인 전용'이라고 적혀있다.

▲ 1940년,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Durham)의 버스 정류장(현재 North Magnum Street 309)의 흑인 전용 대합실.

▲ 1940년,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의 식당에 백인과 흑인이 드나드는 출입구가 따로 마련된 모습이다.

1941년, 플로리다주 벨 글라드(Belle Glade)의 흑인 노동자를 위한 허름한 가게.

▲ 1941년, 조지아주 시골에 위치한 흑인 학교 교실의 열악한 모습.

1941년, 디트로이트의 주민들이 흑인 이주민을 거부하는 팻말을 내건 모습.

2차 대전중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이 군수공장으로 전환되면서 고임금이 책정되자 수많은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급증한 인구로 인해 주택난이 가중되자 디트로이트 주택위원회(DHC)와 미국 주택청(USHA)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소저너 트루스 프로젝트(Sojourner Truth Project)'를 가동했다.

소저너 트루스 프로젝트가 실시된 곳은 디트로이트 북동부의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코넌트 가든스(Conant Gardens)였다. 하지만 이곳의 흑인들은 사업가, 변호사, 정치인 등 성공한 중산층이었기에 백인들도 포용하고 있었을 뿐 빈민층 흑인들이 아니었다. 가난한 노동자 흑인들을 이주시키는 공공주택사업에 격분한 백인 주민들은 자신들의 동네와 재산가치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반대 시위와 항의편지, 사진의 팻말과 같은 문구로 반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1942년 2월 28일 새롭게 건설된 공공주택에 흑인 가족들이 입주하면서 반대하는 백인들과 찬성하는 흑인 시위대 수천 명이 충돌하여 40명이 부상당하고 220명이 체포당하는 등 오늘날 '소저너 트루스 폭동(Sojourner Truth riot)'이라고 부르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1943년, 루이빌(Louisville)과 내슈빌(Nashville)을 잇는 고속도로 사이의 휴게소 식당에 '흑인은 뒷문을 이용하라'는 친절한(?) 안내가 적혀있다.

1948년, 메릴랜드주의 한 주점 출입문에 '백인 전용'이라는 표지판이 있고 흑인은 뒷문을 이용하라고 적혀있다.

1956년, 법원은 인종에 따른 버스 승객의 좌석 차별을 철폐할 것을 결정했으나 흑백 양쪽 모두 하루아침에 이를 바꾸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백인과 흑인은 여전히 버스에서 각자의 익숙한 자리에 따로 앉았다.

1957년, 마이애미에서 두 명의 흑인 고등학생이 버스의 앞좌석에 앉았다가 지역경찰로부터 하차 명령을 받고 있다.

1960년, 플로리다주 레이크랜드(Lakeland)에서 흑인 여성들이 전용 벤치에 앉아있다.

1960년, 백인과 흑인이 각자의 전용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댓글(2)

  • 2021.10.23 21:31 신고

    아직도...공공연하게 자리잡은 인종차별...적어도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할텐데 말이죠.
    스스로를 돌아봐야하겠습니다..

    • 2021.10.24 21:15 신고

      과거를 보고나면 결국은 시간이 답인것 같습니다. 저당시의 분리정책이나 최근의 역차별로 인한 혼란 모두 개인의 각성이 우선하지 않으면 소용없음을 보여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