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새해, 화폐박물관 앞을 지나가는 경성 상인들

해가 바뀌는 것은 단순히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것뿐이지만 지나가는 해에 액운을 실어 보내고 새로운 복이 오기를 희망하는 것은 지금이나 한 세기 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래의 기사는 1933년 정월 초하루, 경성의 시끌벅적한 거리를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 개시만금래(開市萬金來)

정초 가두를 활발하게 지나가는 행렬!

이것은 초하루의 행렬이다. 마차, 구루마(くるま 수레), 자동차에 자기 상점의 상품을 가득 싣고 악대를 선두로 내닫는 품이 금년의 경기를 혼자 차지할 것같이 서두른다.

상인이 서두르는 버릇은 고금을 통하여 같은 것이나 이 서두르는 것도 점점 방식이 달라져서 작년과 금년에는 북촌 상인들도 이 초출하(初出荷)라는 새로운 형식의 선전전을 개시하였다.

▲ 종로(?)를 지나가는 초출하의 광경 【동아일보 1933.01.03】


위 기사에 첨부된 사진을 보면 지금은 자동차로 가득한 서울거리가 상품을 가득 실은 수레로 복잡한 모습이다.

'초출하(初出荷)'라는 단어는 일제시대에 나온 것으로 요즘은 일반적으로 '첫 출하'라고 표현하지만 농업분야에서는 아래와 같이 여전히 쓰이고 있는 단어이다.

▲ 미성숙 농산물을 '초출하'로 조기출하하는 행태를 고발하는 기사

보통 농작물이나 양식수산물 등을 첫 수확해 출하하는 것을 말하지만 1930년대 초반에는 공산품의 경우에도 단순히 해가 바뀌고 처음으로 납품하는 것을 '초출하 상품'이라며 홍보해 판매량을 높였다. 구매자들 역시 해가 바뀌고 처음으로 생산된 새 물건이라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던, 지금의 '한정판'과 비슷한 선전문구였던 것이다.

한편 동아일보의 사진설명에는 「'종로'를 지나가는 초출하의 광경」이라고 되어있지만 사진에 나오는 건물은 아무리 봐도 남대문로에 있었던 조선은행(朝鮮銀行) 본점 건물이다.

▲ 일제시대 조선은행 본점 앞 거리

즉 정확한 설명은 '종로에서부터 초출하 상품을 싣고 온 상인들이 조선은행 본점 앞을 지나가는 광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조선은행 본점은 일본인 건축학자 다쓰노 긴고(辰野金吾, 1854~1919)가 설계한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1907년에 착공하여 1912년에 완공되었다.

▲ 화폐박물관(옛 조선은행)의 현재 모습(2021년 7월)

1950년 6월 6일부터는 새로 출범한 한국은행 건물이 되었으나 불과 3주 후 6.25 전쟁으로 내부가 전소되기도 하였다.

이후 복구하여 사용하다가 1987년 한국은행 신관이 준공되면서 2001년부터는 화폐박물관으로 개관하여 대중에 무료 개방하고 있다. 일제시대에 건축된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로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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