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레닌의 시신을 없애려던 시도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가지도자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의 시신을 영구 보존해온 역사는 매우 깊다. 특히 공산주의 정권의 정치인들은 본인들의 의사와는 별개로 우상숭배와 사후 권력 강화를 목적으로 시신이 영구 보존되었다.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은 사망 후 9년간(1953~1961) 시신이 영구 보존되었으나 스탈린 격하운동에 힘입어 박제에서 탈출해 땅에 매장되는 행운(?)을 누렸으며,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클레멘트 고트발트(Klement Gottwald, 1896~1953), 불가리아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Georgi Dimitrov, 1882~1949)도 사후 전시되었다가 공산주의 몰락 이후에야 영면할 수 있었다.

'엠버밍(Embalming)'이라 불리는 이 시신 영구보존기술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연간 100~150만 달러의 고비용이 추가로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영구보존 시도를 했던 인물 중 현재까지 전시되고 있는 시신들은 몇 구 되지 않는다.


■ 현재 전시 중인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시신

현재 대중에 공개되어 전시 중인 공산권 지도자들의 시신은 다음과 같다.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Ilyich Lenin, 1870~1924) 소련

호찌민(Hồ Chí Minh, 1890~1969) 베트남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중국

김일성(金日成, 1912~1994) 북한

김정일(金正日, 1941~2011) 북한

이중 북한은 소련이 스탈린의 시신을 매장함에 따라 유일하게 두 구의 시신을 영구 보존하고 있으며, 최초로 세습한 부자의 시신을 영구 보존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 레닌 영묘 파괴 시도

영구보존 리스트 중 가장 오래된 블라디미르 레닌의 시신 보존 지속 여부는 구 소련이 붕괴된 후 러시아에서 매년 찬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1924년 레닌 영묘의 모습

2017년 러시아 여론연구센터(VTsIOM)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 '레닌의 시신을 땅에 묻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중 절반은 '가능한 한 빨리 묻어야 한다'고 답한 반면, 나머지 절반은 '소련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가 사라진 다음에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답한 것을 보면 그 시기는 당장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이 공산주의의 상징을 파괴하려는 시도는 아래와 같이 수차례 있었다.



1. 1934년, 권총사격

1934년 3월 19일, 국영농장에서 근무하는 미트로판 미하일로비치 니키틴(Митрофан Михайлович Никитин, 1888~1934)이 참배를 하는 척하다가 레닌의 관에 가까이 다가가 나강(Nagant) 권총을 꺼내 두발의 사격을 가했다.

▲ 1932년 8월, 레닌 영묘의 참배객들

하지만 총알은 관을 모두 빗나갔고 경비병들의 대응사격에 미트로판은 현장에서 사살되었다(자살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영묘 내에 있던 참배객들은 '본 것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지시받았다.

미트로판의 소지품에서는 자신이 수백만 노동자를 위해 나서는 것임을 주장하며 국민들의 궁핍과 파멸에 대해 공산당에게 항의하는 유서가 발견되었다.


2. 1959년, 망치 공격


1959년 3월 20일, 방문객들 중 누군가 레닌의 유리관을 향해 망치를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 1925년의 영묘. 임시로 만들어진 목조건물이었다.

유리는 망치에 맞아 깨졌으나 레닌의 시신에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망치를 던진 참배객은 체포되었고 조사 결과 '정신질환자의 소행'으로 발표되었으나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3. 1960년, 발차기


1960년 7월 14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출신의 미니바에프(Minibaev)라는 주민이 참배를 하다가 레닌의 시신으로 돌진해 석관의 유리를 온 힘을 향해 발로 걷어찼다.

▲ 이 시기에는 레닌과 스탈리의 시신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깨진 유리파편에 레닌의 피부가 약간 손상이 된 것으로 전해지며 미니바에프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는데, 그는 1949년부터 시신을 파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말했다. 수리를 위해 레닌의 영묘는 몇 달간 폐쇄되었으며 석관은 더 강력하게 보강되었다.


4. 1961년, 침과 돌


1961년 9월 9일, 스미르노바(Smirnova)라는 여성 참배객이 욕을 하며 레닌의 유리관에 침을 뱉고 손수건으로 싸가지고 들어온 돌을 던져 유리를 박살 냈다.

▲ 레닌 영묘 앞의 대기줄

경비병들은 인상착의가 수상한 사람들은 철저히 경계했으나 여성의 테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5개월 후인 1962년 4월 24일에는 또 다른 남자가 침을 뱉고 돌로 유리를 깨려는 같은 시도를 하다가 체포되기도 하였다.


5. 1962년, 로켓포 발사 미수


1962년 3월 25일, 스타브로폴에 거주하는 트레할리나(L.V. Trehalina)가 외투에 로켓 발사기를 숨기고 영묘를 방문해 레닌의 관을 향해 로켓포를 쏘려다가 발사 직전에 체포되었다.


6. 1966년, 망치


1966년 3월 29일, 크라스노다르에 거주하는 바틴체프(Vatintsev)라는 남자가 레닌의 무덤에 대형 망치를 투척했다. 하지만 강력한 보강 때문인지 별다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 과거의 석관과 보강된 현재의 석관


7. 1967년, 영묘 입구 자살폭탄

1967년 9월, 크리사노프의 한 주민이 폭탄벨트를 차고 레닌의 영묘 입구 근처에서 기폭장치를 가동했다.

▲ 당시 사고 현장

영묘 외부였던 데다가 보강된 레닌의 묘는 전혀 피해가 없었지만 테러 당사자를 포함해 처음으로 여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8. 1973년, 영묘 내부의 폭발


1973년 9월 1일, 레닌의 석관이 있는 방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한 남성이 입고 들어온 폭탄조끼를 터뜨린 이 사고로 참배객 중 부부 한쌍이 사망하고 네 명의 학생 순례객들이 중상을 입었으며 경비병들은 심각한 뇌진탕 증세를 보였다. 방학을 맞아 레닌의 묘를 방문한 학생들 틈에 섞인 이 남성을 경비병들은 학생들의 담임교사로 착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범인의 시신은 머리와 손의 일부만 남아있었으며 신분증 조각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 이미 사망한 타인의 신분증을 도용해 그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방탄유리로 보강된 레닌의 관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 레닌 영묘의 현재 모습

이밖에도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1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광장의 영묘 앞에서 분신자살 시도를 벌였다. 이후 검문소가 설치되며 보안관리가 엄격해지고 방문객들이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하는 규정이 생기면서 큰 사고는 사라졌다.

▲ 2015년 1월에는 두명의 행위예술가들이 영묘 입구에 성수를 뿌리며 "일어나서 떠나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렇다면 북한의 김부자가 전시되어있는 금수산태양궁전에는 아무런 파괴 시도도 없었을까.

러시아 생물구조연구센터가 두 사람의 시신 보존을 맡아 처리한 만큼 경험에서 우러난 테러 대처법도 함께 전수해 안전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 설사 있었다 해도 김부자의 종교국가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신성모독이라 할 수 있는 파괴 시도 자체를 극비로 다루며 철저히 덮지 않았을까.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2)

  • 2021.10.27 11:12 신고

    당사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가 참 와닿네요. 오늘도 잘봤습니다!

    • 2021.10.27 22:57 신고

      레닌 영묘의 시신보존을 합리화는 경우를 보면 카톨릭 신부들이나 왕들의 예를 들면서 야만적이거나 우상화가 아니라는 주장이지만, 우선적으로 당사자가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에 체제강화를 위한 전시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가 없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