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AFC 아시안컵,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굴욕

4년마다 아시아 축구 최강의 나라를 정하는 AFC 아시안컵. 과거 국내에서 '아시아선수권대회'로 불렸던 아시안컵은 지금은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대회로 성장했지만 초창기에는 변방의 미미한 대회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1회(1956) 대회와 2회(1960) 대회를 연패한 디펜딩 챔피언 한국도 이스라엘에서 열린 1964년 3회 대회에는 국가대표 2조(2군)를 출전시켰다. 같은 시기에 열린 1964 도쿄올림픽 축구 예선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 1964년 아시안컵 공식 포스터. 태극기가 엉터리로 그려져 있다.

1964년 5월 27일,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열린 결승리그 첫 경기에서 한국은 인도를 만났다.

이날 인도는 초대 총리였던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 1889~1964)가 사망한 날이었고, 그의 영전에 승리를 바치겠다는 인도 선수들의 정신력은 불타올랐다. 결국 한국은 0:2로 완패하며 3연패 전선에 빨간불이 켜지게 되었다.


▲ 시합 전 네루 총리를 애도하며 묵념을 하는 양팀 선수들

다행히 2차전에서 홍콩을 1:0으로 잡고 한숨을 돌린 한국은 6월 3일, 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홈팀 이스라엘을 상대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승점 4점(득실 +3)으로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었고, 한국은 승점 2점(득실 -1)으로 2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


▲ 만원관중의 라마트간 경기장. 광고판과 조명탑에도 사람이 올라가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전반에만 두골을 성공시키며 패색은 일순간에 짙어졌다. 그나마 한국은 무실점 행진을 달리던 이스라엘의 철벽 수비진을 상대로 이순명이 골을 성공시킨 것이 위안이었다.

결국 준우승만 두 번을 했던 이스라엘은 한국에 2:1로 승리하며 자국에서 우승컵을 들었고, 먼 거리를 날아온 한국은 분투했지만 최악의 결과를 받게되었다. 하지만 최종 3위의 성적표보다 시상식이 더욱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 폐막식에서 우승컵을 반납하는 한국대표팀

한국은 디펜딩 챔피언이었고 폐막식에서 우승 후 소유했던 트로피를 직접 들고 나와 반납하는 의식을 가져야 했던 것이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1조 선수들에게 밀려 덜 관심받는 대회에 나온 마당에 기껏 선배들이 지켜온 우승컵을 직접 숙적에게 돌려줘야 했던 선수들의 굴욕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 우승의 주역 슐로모 레비(Shlomo Levi), 모르데하이 슈피글레르(Mordechai Spiegler), 모셰 레온(Moshe Leon) 【사진: Moshe Pridan】

이스라엘 선수들과 관중들은 승리를 만끽했고, 시상자로 나선 잘만 샤자르(Zalman Shazar, 1889~1973) 대통령은 "오늘은 이스라엘 독립선포 후 최고의 날입니다"라고 말하며 감격해했다.

▲ 이스라엘 잘만 샤자르 대통령이 주장 나훔 스텔마흐(Nahum Stelmach)에게 시상을 하고 있다.

설욕을 노렸을 한국은 1968년 대회에는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암흑기를 맞았고, 1972년에는 이스라엘이 중동국가와의 정치적인 문제로 출전하지 않게 되면서 만남은 무산되었다.

이후 이스라엘이 AFC에서 축출되면서 초창기 라이벌이었던 두 팀의 아시안컵 대결은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고, 70년대 이후 이스라엘이 UEFA에 소속되면서 월드컵 예선에서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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