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비 왕조 시기의 1960년 이란 풍경

▲ 한 시골마을의 하천에 소녀들이 나와 빨래를 하고 있다.

이스파한(Isfahan)의 타일 공장에서 장인이 타일에 새길 문양을 그리고 있다. 이스파한은 예부터 이란 타일 공예의 중심지로 대대로 장인들을 배출하고 있다.

▲ 이란 여성이 땔감용 나뭇가지를 한 짐 짊어지고 가고 있다.

▲ 부르카를 뒤집어쓴 시골마을의 여성이 양모로 빗자루를 만들고 있다. 팔라비 왕조 시기의 이란은 공공장소에서의 두건과 히잡을 금지시켰고, 심지어 강제로 벗길 수도 있었다. 이런 탈종교화 정책은 종교적 신념이 강한 층과 노년층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이하 '이란 혁명'이라 칭한다)으로 이어지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구세군에서 나온 학생 신분의 교사가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비록 어린이들이지만 남녀가 같은 반에서 수업을 받는 모습과 현재는 이슬람 국가가 되어버린 곳인지라 기독교 단체에서 행하는 교육이 인상적이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란에서 남녀 분리는 대중교통과 공공기관 등 일상의 모든 부분에 적용되었다.

▲ 학교에서 수학 수업 중 칠판에 문제를 푸는 학생을 정장을 입은 교사가 바라보고 있다. 칠판 위로 국왕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Mohammad Reza Pahlavi, 1919~1980)의 사진이 걸려있다. 국왕 부부는 공공장소에서 양복 정장을 착용했으며 공무원들에게도 이를 강력하게 권장했다.

▲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한 할머니가 어린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 고등학교 수업에 들어온 만학도 노인들. 모하마드 레자 샤 팔라비가 추진하였던 '백색혁명'을 성공시키고 이란을 근대화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선결과제 중 하나는 농촌개발문맹퇴치였다.

▲ 카펫을 짜던 소녀 두 명이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1953년 백색혁명이 추진된 이후 아동 결혼은 금지되었고, 1963년에는 여성에게 투표권과 참정권도 부여되었다.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율법에 따라 여성의 법적 혼인 연령은 9세로 낮아졌다.

▲ 수업에 열중하는 이란 여학생들. 이 시기의 여성들에게는 교육이 장려되었으며, 정부는 물론 구세군과 같은 기관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학교가 제공되면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크게 늘어났다.

▲ 사고로 팔을 잃은 소녀가 발로 글씨를 쓰고 있다. 팔라비 왕조의 교육개혁과 보육기관 운영은 일반인은 물론 장애인 아동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혜택이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모든 보육기관은 '이슬람의 양육방식을 차단하고 모성애를 거세하려는 서방 측의 음모'로 비난받으며 폐쇄되었다.

▲ 한 유목민 남성이 자신의 낙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 카펫 상인이 발을 다친 망아지와 함께 말을 타고 가고 있다.

▲ 한 무리의 상인들이 카펫을 싣고 이동하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와의 국경지역에 있는 샤트알아랍(Shatt al-Arab)에서 이란 서부의 해발 1,718m 고지대에 있는 술탄나바드(Sultanabad: 현재의 아라크, Arak)를 오가며 카펫을 판매했다.

이란은 지금도 페르시안 카펫(Persian Carpet)으로 유명하지만 술탄나바드는 19세기 이후 '이란 카펫의 중심지'로 불리어온 이란의 산업수도이다.

관련 글: 이란의 세계에서 가장 큰 카펫

 

▲ 달리던 트럭이 유목민들의 양 떼에 가로막혀 멈춰있다.

▲ 사막의 암벽 위에 지어진 유목민들의 석조 주택.

▲ 이란 사막지대의 마을 풍경. 그늘을 만들기 위한 담벼락과 물을 저장하는 지하저수지 '압 안바르(Ab anbar)'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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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의 설 명절인 노루즈(Nowruz / نوروز)의 상차림. 7가지 종류의 상징물을 올려놓는 것으로 '하프트신(Haft-sin)'이라고 칭한다. 상차림은 각 가정의 전통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으며 각각의 물건들은 의미를 담고 있다.

관련 글: 노루즈 '하프트신(Haft-sin)'의 의미

 

▲ 이란 여성이 하프트신(Haft-sin)을 차려놓은 재단에 액운을 날리는 의미의 촛불을 켜고 있다. 노루즈는 매년 춘분에 치르는 행사로 일반적으로 3월 21일 경이다. 친미정권이었던 팔라비 왕조 시기라서 그런지 코카콜라의 플라스틱 쟁반이 눈에 띈다.

▲ 준비가 완료된 하프트신(Haft-sin)에 모여 앉은 가족들이 지혜의 상징인 경전을 읽고 있다. 경전은 각자의 종교에 따라 기독교인은 성경을, 무슬림은 코란을, 조로아스터교도는 아베스타를 읽으며 시를 좋아하는 나라답게 이란의 위대한 시인 피르다우시(Ferdowsi)나 하페즈(Hafez)의 시를 암송하기도 한다. 【사진: Paul Alm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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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2021.11.17 06:40 신고

    팔라비 왕조 시기는 세속국가였던 모양이네요. 많이 올드한 사진이지만, 그래도 행복해 보이네요.. ^^ 종교적 이념이 정치를 장악한 지금은 좀더 암울한 느낌이네요.

    • 2021.11.19 23:16 신고

      그렇습니다. 당시 왕정에 반대하는 정치범들을 무차별로 잡아들였다는 것이 이란 혁명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이슬람 정권으로 바뀐 후 그 스무배 이상의 정치범들이 생겨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