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영화 <컴플라이언스>, 사람은 얼마나 권위에 약한 존재인가



우연히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라는 소름돋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각색도 거의 없이 실화가 그대로 재연되었다는 점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는데요

이 영화의 네티즌 평점란을 보면 '초딩도 아니고 저런데 속냐', '주인공들이 머리가 나쁘다', '답답하다','미국경찰은 무서운가보다' 라는 글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저도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내용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바보같은 상황속에 빠진 주인공들에 대한 답답함으로 화를 내며 영화를 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960년, 미국 예일대학교의 심리학교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전문 연기자들 2명을 섭외합니다

그들이 맡은 역할은 한명은 저명한 교수였고 다른 한명은 그의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이 두사람의 실험에 참가해 달라는 말로 거리에서 다수의 사람들을 도우미로 섭외했습니다




실험의 내용은 '체벌이 학습효과에 미치는 영향' 이었는데 학생이 문제를 틀릴때마다 도우미들은 학생에게 전기충격을 가했으며 한문제씩 더 틀릴수록 15V씩 전압을 높이도록 지시했습니다

학생역할의 전문연기자는 감전된 연기를 실감나게 펼쳤고 도우미들은 몇번의 실험을 하고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교수가 "그 정도로는 사람은 절대 죽지 않는다", "결과는 내가 책임진다" 라고 말하자 65%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450V까지 단계를 올려 버튼을 눌러댔습니다

(450V는 사람이 즉사할 수도 있는 전압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맹목적인 권위에 대한 복종을 보여준 유명한 실험으로 피실험자들은 사람이 죽을수도 있는데 옳지못한 명령에도 버튼을 왜 눌렀냐는 말에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라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 실험은 KBS스펀지에서도 그대로 재현하였는데 한국판 실험에서도 1명만이 '도저히 못하겠다' 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뿐 나머지 실험대상들은 무표정하게 버튼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 밖에 EBS에서 했던 다큐에서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경찰제복을 입은 연기자가 쓰레기를 줍게하고 체벌을 실시하자 황당해 하면서도 묻지도 않고 지시에 따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직업, 학벌, 경제적 상황등 나보다 나은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그건 옳지 않다' 는 말을 용기 내어 할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그가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고 후회하더라도 똑같은 상황이 주어지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처럼 권위자들에게 인간은 맹목적으로 순종하고 따르며 그 사람의 답이 맞느냐 틀리냐는 따져 묻지 않습니다

단지 '권위자가 낸 답이니 나보다는 나을 것이다' 라는 비이성적인 신봉만이 있을 뿐이죠

그러니 사회적으로 직업사칭과 학력위조가 끝없이 이루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빛나는 학벌만 들이대면 나보다 잘난 사람들도 순식간에 내 앞에서 보이지 않는 규제인 '권위' 라는 사슬에 묶인 순한 양이 되어버리니까요 


물론, 영화 '컴플라이언스'의 상황은 비슷한 여러사건들 중에서도 아주 극단적인 피해로 나타난 케이스지만, 과정은 별로 다를게 없었습니다





- 실제사건


실화를 토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건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2004년 4월 9일, 미국 켄터키주 마운트 워싱턴의 맥도날드점에 경찰(물론 가짜)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본인이 '스캇 경관' 이라고 밝힌 가짜 경찰은 부매니저인 도나 서머스에게 직원중의 한명이 고객의 돈을 훔쳤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짜 경찰은 정확히 직원의 이름을 댄것도 아니었고 "카운터의 젊은 백인 여성.." 이라는 말로 얼버무렸지만 부매니저인 도나는 "루이스 오그본(피해자)이요?" 라고 반문해서 가짜 경찰을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도나는 그의 소속과 위치, 자세한 개인신원도 물어보지 않는 우를 범했습니다

가짜경찰은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점장의 이름을 대며 도나를 안심시켰고 '협조'해 달라는 용어로 자신의 권위를 부각시켰습니다


<실제 CCTV 장면>


결국 도나는 그의 고압적인 자세와 명령조의 말에 루이스 오그본을 창고로 데려와 알몸수색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에는 가짜경찰의 권위도 있었지만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실험' 에서와 같이 "모든것은 제가 책임집니다" 라는 말이 책임 회피를 할 수 있는 출구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루이스 오그본이 몇번이고 나가게 해달라거나 경찰에 전화하면 안되느냐고 해도 도나는 경찰을 기다려야 한다며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고 명령에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이후 정신없이 바쁜 패스트푸드점의 피크타임 탓에 도나는 관련도 없는 자신의 약혼자 월터 닉스를 매장으로 불러내 피해자 루이스 오그본을 감시하도록 합니다. 물론 직원이 아닌 사람을 사무실에 들이면 안된다는 메뉴얼이 있었지만 더 큰 권위를 가진 경찰의 허락이 있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판단이었겠죠


도나의 약혼자 월터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경찰이라는 권위에 맹목적으로 따랐습니다

어린여성의 신체 구석구석을 살피고 체벌을 가하라는 명령에 따르는가 하면 정말 말도 안돼는 지시까지 결국 이행하게 됩니다


<영화속 피해직원 베키>


결국, 경찰을 사칭한 전화는 톰 심스라는 유지보수 담당 직원의 당연한 의심으로 장난전화임이 밝혀질때까지 하루종일 피해자들을 유린하고나서야 막을 내렸습니다 

경찰이 최대 피해자인 루이스 오그본에게 왜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랐냐고 묻자 "그냥 시키는대로 했어요" 라는 허무한 대답만이 돌아왔습니다


한편, 권위자가 부여한 권위를 받아든 대리인들은 처음에는 모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경찰이 이렇게 하래' 라며 마치 '나는 선하고 이 일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위에서 시키니까 내 책임이 아니야' 라는 모습을 보이며 지시를 '전달'만 했습니다

그렇게 어쩔수 없이 시키는대로 하는 듯하던 대리인들도 나중에는 화를 내며 권위를 능동적으로 행사합니다

그들도 강자가 명령을 내리면 약자는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권위'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맛본셈이었죠


<감독과 주연배우들>




- 사건 처리결과


약혼자 월터 닉스



도나의 약혼자 월터 닉스(실제인물)는 불법감금과 미성년자학대로 징역 5년형이 떨어졌습니다. 

그나마 원래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학대는 최소 20년 징역형이지만 상대가 경찰인줄로 착각했다는 점이 참작되었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가짜경찰이 그에게 지시한 알몸 검색이나 팔벌려뛰기, 또는 체벌과 보상등의 과정은 눈치가 극도로 없더라도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그런 이유로 그가 책임을 회피하고 옳지 않은 일임을 완전히 인지했음에도 행한것들은 '시키는대로 했다' 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 수준이라는 배심원들의 판단이 따랐습니다




장난전화 혐의자 데이비드 스튜어트



장난전화 가해자인 데이비드 스튜어트(당시38세)는 5명의 자녀가 있는 사설보안업체(Corrections Corp. of America)의 직원이었습니다.  사설보안업체에 채용되기전에는 쇼핑몰 경비원, 보안관 대리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모두 권위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제복을 입은 직업들이죠

최초 경찰의 조사 전화를 받기를 거부한 그는 경찰이 직접 회사로 찾아오자 미친듯이 땀을 흘리며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찰에 물었다고 하네요 "혹시 다친 사람이 있나요?"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끝났군 아멘" 

이후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지만, 경찰조사로 9개의 패스트푸드점에 전화를 건 혐의가 추가되었습니다

그의 집을 수색한 결과 경찰 서류, 경찰 잡지, 유니폼, 권총등이 발견되는 등 '경찰이 되고 싶어한' 그의 욕망을 확인했습니다

그가 장난전화속에서 피해자들에게 당당한 경관의 모습으로 사기를 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역할극에 깊이 빠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화를 거는 순간만큼은 스튜어트는 진짜 경찰관이었던 셈이죠



하지만, 그의 변호사는 "그와 수많은 대화를 해보았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일을 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설득력은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똑똑하지 않다" 고 변호했습니다

9번의 통화 역시 통화가 발신된 공중전화에서 스튜어트를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스튜어트의 전화 음성을 여러개의 목소리중 정확히 식별해낸 피해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는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피해자 루이스 오그본의 민사소송에 대해 뻔뻔하게도 피해자에게 편지를 보내서 "당신의 고소장을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책임이 없습니다. 허나 당신의 피해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합니다. 왜냐하면 나도 집과 차와 직장을 모두 잃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체포된 후, 비슷한 장난전화가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가 체포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체포를 본 동종범들이 겁을 먹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부 매니저 도나 서머스



부 매니저 도나 서머스는 불법감금과 경범죄등의 혐의로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녀는 사건 이후 약혼자인 월터와 관계를 끝냈으며 직원이 아닌 사람을 사무실로 오게 한 점과 허용되지 않은 알몸수색을 실시한 이유로 맥도날드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이후 도나 서머스는 맥도날드가 장난전화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5천만달러의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재판 끝에 맥도날드는 그녀에게 110만달러의 금액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직원 루이스 오그본



사건발생 3년후,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 루이스 오그본은 맥도날드를 상대로 무려 2억달러의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도나 서머스의 소송이유와 마찬가지로 이미 미국 패스트푸드점을 대상으로 이런 장난전화사건이 여러건 보고된 바가 있었고 맥도날드가 위험성을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보안시스템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또 루이스 오그본이 외상후 만성 스트레스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우울증 치료제를 남용하고 있다는 정신과 의사의 증언이 민사소송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맥도날드는 루이스 오그본에게 610만 달러를 피해보상금액으로 지불했습니다

그녀는 이 돈으로 법대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건 발생후 맥도날드는 공식사과성명을 냈으며 장난전화를 방지하고 직원들의 인권보호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고자 관리자 훈련프로그램을 개정했습니다.




댓글(9)

  • 최고시네요.
    2013.07.24 22:20

    정말 잘 봤습니다. 포스팅의 디테일함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런 류의 발상이나 고민을 저 역시도 참 많이 하는데, 나는 절대 당하지 않을텐데.. 혹은 나는 저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어. 이런 오만한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이 된다면 모르죠. ㅎ
    권위의 복종이라.....인간은..어떻게 해야 어떤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 2013.08.21 10:23 신고

      그런 상황이 현실에 닥치면 근원적인 물음을 자신에게 적용해봐야겠죠
      이 사람이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 옳은것인가? 라는 물음과 행위의 책임을 타인의 권위에 전가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해야겠죠
      단순하지만, 인간은 조직에 속해있기에 현실에선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죠

  • 방인
    2013.07.25 14:39

    무죄라니.. 말도안되네요. 적어도 무기징역아닌가요.

    • 2013.08.21 10:25 신고

      결국 명확한 증거가 없으니 안타깝게 되었죠

  • 도나서머스
    2013.07.27 20:19

    도나 서머스 괘씸하네요 오히러 소송을 걸어서 무려 100만달러나 타가다니 .. 솔직히 징역형에

    피해자에게 모든 재산 뱉어 내야 할 xx년 아닌지 ... 흠.....

    • 2013.08.21 10:28 신고

      자신은 경찰인줄 알고 복종했다는거죠
      도나 서머스 본인도 직장을 잃고 결혼도 못하게 되어 버렸으니 멍청함에 대한 죗값은 어느정도 치룬셈인데 장난전화 지침을 내리지 않은 맥도날드의 허점을 노린걸 보면 그리 멍청한것도 아닌것 같네요

  • 깨소금
    2014.06.25 17:00

    정리를 잘해주셔서 잘 보고 갑니다~

  • 123
    2014.07.26 11:09

    약혼자만 최종 피본듯...

  • 2015.12.05 01:30

    글 잘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떻게 이것이 실화인지에 대한 충격을 받으면서 감상했네요. 인간이 권위에 복종하는 정도를 아무리 감안하고 보더라도 최소한의 의심을 하지 않을수 있을까 싶더라구요. 그나마 마지막 직원이 가장 정상인듯.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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