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성이 만든 백악관의 윌슨 대통령 자수 초상화

미국 백악관 그랜드 로비(Grand Foyer)나 집무실에는 전직 대통령들의 초상화를 전시하는 전통이 있다.

물론 2021년까지 선출된 미국 대통령은 46명에 이르기 때문에 모든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전시되는 것은 아니고 현직 대통령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데, 전시된 인물의 면면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 2012년 5월 31일, 조지 W 부시 대통령 내외가 자신들의 초상화 제막식에 참여하는 모습

그런데 1927년 1월, 백악관에는 전직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의 초상화가 전시되었는데 특이하게도 화가가 그린 유화가 아니라 자수로 수놓은 것이었다.

▲ 윌슨 대통령의 자수 초상화와 제작한 여성

이 자수를 놓아 만든 초상화는 당시 뉴욕에서 미술상으로 성공을 거두고 대형 화장품(중국향)매장을 운영하던 안정수(安定洙)의 아내 이윤희(李允喜, 27)라는 여성이 일 년간에 걸쳐 만든 것.

이윤희는 개성 호수돈여숙(현 대전 호수돈여고)을 졸업하고 경성 여자성서학원(女子聖書學院)에서 일 년간 성경공부를 하던 중 1919년 2월, 19세의 나이에 안정수와 결혼한 후 도미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는 신혼임에도 홀로 남편과 떨어져 웨슬리언 대학과 틸튼 컬리지를 다니며 한동안 학업에 뜻을 두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이윤희

그녀의 남편 안정수는 한성영어학교 출신으로 1903년 초기 하와이 이주노동자로 호놀룰루에 건너와 일제에 저항하는 목적의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한 인물 중의 한 명이었다.

1904년 신민회가 해산한 후에는 미국 본토로 이주한 다음 뉴욕에서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통해 교포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미국 유력가들에게 조선독립의 필요성을 피력하며 후원금을 모아 독립군을 지원하기도 했다.

▲ 이윤희. 그녀의 오빠는 연극인이자 언론인 이기세(李基世, 1888~1945)로 부부의 활동과 대비되는 친일인사이다.

안정수는 경제적 성공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로비를 하는 과정에서 생전의 윌슨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나라도 없는 동양인의 아내가 만든 자수작품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백악관에 전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미주지역 한인사회는 미국 정재계를 통해 활발한 외교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었으며, 한국 정부는 안정수의 이 같은 공훈을 인정하고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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