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거리의 부랑자들


중세 유럽은 로마 가톨릭이 지배하는 종교적 시대였습니다



갑옷을 입은 기사와 드레스를 입은 공주와 왕족들이 동화책과 사람들의 상상속에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이지만, 현실은 도시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거리는 지저분하였고 상하수도가 없는 비위생적인 환경은 질병의 천국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대표적인 중세유럽의 풍경에는 여러 종류의 부랑자들이 있었습니다 



 

- 파문당한 사람들



'파문' 이란 가톨릭에서 신자를 교회에서 제외하고 추방하거나 징벌을 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파문에는 소파문(minor excommunication)대파문(major excommunication)이 있었는데, 소파문은 학교의 유기 정학처럼 일정 기간 후에 구제될 수 있었지만, 대파문은 사회적인 교류가 완전히 금지되었으며 현생뿐 아니라 내세까지 배제됨을 의미했습니다

종교적 사회였던 중세유럽에서 죽어서도 구제될 수 없다는 의미는 지금 사는 곳이 곧 지옥이란 의미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교황은 '파문권한' 을 손에 쥐고 국왕들과의 권력투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라는 말로 유명한 스피노자도 파문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스피노자의 이성적 삶은 그가 속한 유대인 커뮤니티로부터 신성 모독행위로 간주되었고 결국 랍비들은 스피노자를 파문하며 그에게 가혹한 파문서를 내렸습니다

낮에도 그대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고, 밤에도 그대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대가 앉아 있을 때에도 저주가 있을 것이고, 그대가 일어서 있을 때에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대가 밖에 나가도, 그대가 안에 있어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신은 그대를 용서치 않을 것이며 모든 천계의 저주를 통해 그를 전체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격리시킬 것이다

파문당한 자들이 깊은 회개를 하는 모습을 보이면 파문을 거두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지만, 스피노자는 어떤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이름까지 바꾸며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는 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닌 가장 신의 뜻에 맞는 삶을 산다고 스스로 믿었습니다
당시의 종교는 신에게 절대 복종을 원했지만, 스피노자는 진정한 신이라면 인간의 복종을 원하고 징벌하는 따위의 낮은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절대적인 존재라고 여겼으며 그런 신을 믿고 자족적인 삶을 영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망 후 장례식 직전 그의 시신은 도난당하였고 비어있는 관으로 장례가 치러졌는데요

당시 사람들은 파문자들의 시신이 거룩한 교회의 땅을 더럽힌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장애인



현대에도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중세유럽은 장애인이 살아가기조차 힘든 시대였습니다

중세유럽의 장애인은 동냥은 커녕 두들겨맞기 일쑤였으며 편히 앉아있을 곳도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맹인이나 절름발이 혹은 팔이 하나 없는 장애인들은 범죄자나 빈민들과 같은 사회적 위치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런 고통을 겪는 것은 영적인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중세유럽의 시선이었습니다

 


 

- 나병환자



흔히 '문둥병' 이라고 불리는 나병환자들은 중세유럽의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초기 중세시대에는 나병환자들은 불쌍한 사람들로 여겨져 동정받았으나 전염성과 흉측한 외모를 드러내는 증상탓에 두려움과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구밀집지역과 분리된 지역의 병원으로 추방되었으며 사람들이 있는 곳에 살 경우에는 멀리 떨어져 다녀야 했으며 경고의 표시로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있어야 했습니다



살아서 혐오의 시선을 받는 것도 모자라 나병 판정을 받은 사람의 재산은 해당지역의 영주가 법적으로 몰수 할 수 있었습니다. 또 교회는 나병환자에 대한 장례식을 치러 사실상 사망판정을 내렸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살아있는 유령이 되어 거리를 떠돌아야 했습니다





- 매춘부들



중세시대의 매춘부들은 종교적 교리에 위배되었지만 더 큰 악惡(강간과 자위행위)을 방지하기 위해 교회와 국가로부터 용인되었습니다

위생관념이 낮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질병의 온상이었고 따라서 중세사회의 최저 구성원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가족들이 먹고 살기 위해 딸을 거리의 매춘부로 내몬 경우가 많았습니다



 

- 유대인


중세의 유대인들은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흑사병이 퍼졌을때는 사람들이 먹는 우물에 유대인들이 독을 풀었다는 루머가 돌아 대규모 학살이 이루어졌으며, 영국에서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교도 어린이의 피를 종교의식에 사용한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나는 유대인입니다' 라는 상징을 나타내는 배지를 착용해야 했으며 성난 군중들의 급격을 받아 죽음을 당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초기 중세시대에는 잉글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등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이곳저곳을 떠도는 부랑자 생활을 하는것은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 광대



요즘은 연예인들이 전세계적으로 선망받는 직업의 하나가 되었지만 중세유럽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종교적 엄격함으로 가득한 사회분위기는 광대들이 전혀 날개를 펼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이런 광대들은 두 가지 부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귀족과 관리들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이른바 '개인전속광대' 들이 있었고, 또다른 부류는 거리를 떠돌며 사람들을 웃기는 '길거리 광대' 들이 있었습니다


<중세 유럽이라면 바로 체포당할 모습>


이런 광대들은 특정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경우에도 범죄자로 간주되어 체포되었습니다

1400년대 후반에는 더럽고 가난한 부랑자들은 아무 혐의가 없어도 '수상쩍은 방랑자' 라는 이유로 잡혀들어갔습니다.



댓글(3)

  • eratho
    2013.02.27 19:39

    그렇군요. 집필예정인 글이 있는데 많은영감을 얻고갑니다

    • 2013.03.01 13:05 신고

      글을 쓰시면 이곳에 링크를 남겨주시면 많은 분들에게 유익할 것 같습니다

  • 이슬람 다시배우기
    2013.03.24 10:56

    장애인이나 여성 약자에게도 관대한 유럽사회에서도 중세시대때에는 천대받았으니...! 서구에서 예술가들이 우대를 받게된건 19세기에 들어서라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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