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의 딸들 ⑬ 민영찬의 딸, 민몌리

민영찬(閔泳瓚, 1873~1948)은 조선 말기의 외교관으로 프랑스 공사를 지냈으며, 일제시대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이력으로 친일인사로 분류되는 인물.

민영찬은 조선의 마지막 임금순종의 임종 순간을 지켰던 두 사람 중 한명일 정도로 왕실 종척의 주요 인물이자 백만장자로 호화를 누렸으나, 아들들의 방탕한 생활과 아끼던 첩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재산을 털리는 등 지체에 맞지 않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 1927년 체신국에서 우편강연하는 민영찬. 그는 대한제국시절 만국우편회의에 특사로 참석하였다.

- 관련 글: 순종의 최후를 지킨 이지용, 민영찬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민영찬의 딸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는 영국의 판화작가로 1919년 3월 28일에 조선을 방문해 당시의 풍속을 그림으로 남겼다.


이때의 작품 중에 '민씨가의 규수'라는 제목의 그림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제작연도는 1938년이지만 이는 그림을 목판화로 만든 시기를 말하는 것이고, 그림 자체는 첫 방문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민씨가의 규수(A Daughter of the House of Min, 1938)

한편 그림의 주인공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대체적으로 덕혜옹주의 유치원 동창으로도 알려진 민용아(閔龍兒)가 거론된다. 왜냐하면 민영찬의 딸은 민용아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영찬은 구한말 사람답게 부인과 많은 첩을 거느리고 있었고, 호보영(胡寶英)이라는 중국인 첩과의 사이에 또 다른 딸도 있었다.


민영찬의 장녀 민몌리


민영찬이 호보영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민몌리(閔袂利)는 1926년 20세의 나이로 중국 베이징에 있는 페이화여학교(培華女學校) 5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위키백과에는 민영찬의 중국인 후실이 '호미리(胡美梨, 후메이리)'로 기록되어있는데 아마도 딸의 이름과 혼동되어 섞인 듯하다.

▲ 위키백과의 민영찬 후실 기록

페이화여학교는 영국 기독교 성공회에서 운영하던 학교였기 때문에, 민몌리는 영어도 능숙했을 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정구에도 재능을 보였다. 또한 모친이 중국인이었던 만큼 현지적응도 완벽하게 하며 명문가 규수로 이름을 높였던 것으로 보인다.

- 다재 다복한 민몌리양
- 민영찬 씨의 장녀로 북경에 유학하는 중

몸이 명문에 태어나 바람 불세라 비가 내릴세라 금지옥엽같이 귀히 길리다가, 산설고 물선 타향에 작객(作客)되어 꽃다운 청춘에 쓸쓸한 객관살이가 얼마나 안 슬프겠습니까.

이 같은 고생살이도 돌아보지 않고 조선문화의 근원이 되는 중국 북경에 몸을 붙여 배화여학교(培華女學校)에서 형설의 공을 닦는 조선 작은아씨는 사진에 보이는 민영찬 씨의 장녀 되는 민몌리 양이올시다.

▲ 민몌리(閔袂利)

민몌리 양은 돌아가신 이왕 전하와는 내외종 육촌 남매간이 되는 것이니, 금년 20세의 성숙한 규수로 피아노에는 빛나는 천재가 있으며 영어를 장려시키는 학교의 교풍에 젖어서 영어는 대화도 능히 하는 터이며, 특히 정구에 대한 성벽(性癖)이 굳세어서 북경 여자정구계에서는 화형(花形)노릇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금년에 5학년이니 내년 봄에는 업을 마칠 터이라 하며, 업을 마치는 때에는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가 전문교육에 나아가리라고 합니다.

민영찬 씨는 세상이 다 아는 바와 같이 이제는 익선동에서 한가한 세월을 보내나, 당시에는 조선에서 손꼽는 외교관으로 불란서, 영국 등지에 오래 파견되었던 분입니다. 따님을 귀하여하시기를 친구와 같이하여, 이번 여름휴가에 몌리양이 귀성하였을 때에도 남부러워하도록 따님의 재롱을 보셨다고 합니다.

【매일신보 1926.10.30】


그림의 진짜 주인공

 

위에서 거론한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의 실제인물을 민용아라고 하기에는 당시 그녀의 나이는 너무 어리다. 민용아는 1911년 혹은 1912년생으로 그림이 그려진 1919년에는 불과 만 7~8세였다.

▲ 민용아(좌측에서 두 번째)

그림 속의 규수가 그 정도로 어려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민용아가 그림의 실제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쪽은 나이와 맞추기 위해 초상화가 1920년대 혹은 30년대에 그려졌거나, 아예 판화가 만들어진 1938년에 그려진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오로지 추정과 상상력에 기반하고 있는 분석이다.

▲ 민영찬의 장녀 민몌리

하지만 이 그림의 주인공이 민몌리라고 가정하면 이 '억지 나이 맞추기'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방한해 그림을 그린 1919년에 민몌리는 만 13세, 현재의 중학생 나이로 어린아이 티는 벗어날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씨가의 규수' 초상화의 주인공은 민몌리일 확률이 높다.


영문학자 심재홍과의 결혼

 

민몌리는 1930년 10월 7일 오전 열 시, 정동 영국성공회당에서 심규섭의 장남 심재홍과 결혼식을 올렸다. 심재홍은 지난번에 다룬 심재순의 오빠로, 즉 민몌리와 심재순은 '올케와 시누이 사이'가 된다.

- 관련 글: 친일파의 딸들 ⑩ 심상훈의 손녀, 심재순

결혼당시 민몌리는 도쿄 성심고등여학교(聖心高等女學校, 현 세이신여자대학)를 마쳤고, 심재홍은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만남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풍조답게 부부는 당분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했다.

▲ 심재홍과 민몌리의 결혼사진

심재홍은 해방 이후에는 한국외국어대 교수로 재직하며 춘향전 등 고전문학을 번역해 해외에 알리는데 주력하였고, 민몌리는 이후 활동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학자인 남편을 능통했던 어학능력으로 내조하며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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