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의 딸들 ⑭ 윤치오의 딸, 윤시선

한국 최초의 공개구혼 광고를 낸 것으로 유명한 윤치오(尹致旿, 1869~1950)는 세명의 부인(이숙경, 윤고라, 현송자)을 두었고, 이중 이숙경(李淑卿, 1869~1907)과의 사이에 4남 1녀를 두었다.

- 관련 글: 한국사 최초 공개구혼으로 재혼한 윤치오

이숙경의 다섯 자녀 중 유일한 딸이 바로 윤시선(尹時善, 1898~?)이다. 지난번에 소개한 윤정선(尹晶善)과는 이복자매인 셈.

- 관련 글: 윤치오-윤고라 부부의 딸, 윤정선

윤시선은 아버지가 공개구혼으로 재혼한 계모 윤고라(尹高羅)가 미국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영어를 착실하게 배울 수 있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일본으로 미술유학을 떠났다. 그러던 중 갑자기 중도 귀국하여 1922년 4월 26일 정오, 종현성당(현 명동성당)에서 민원식(閔瑗植, 1898~?)과 결혼식을 올렸다.

 

▲ 민원식과 윤시선의 결혼식 모습

그녀의 남편이 된 민원식은 조선말 관료였던 민영철(閔泳喆)의 3남으로 일제의 작위를 거부하고 망명한 부친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해외생활을 시작했다. 13세에는 큰형 민유식(閔裕植)을 따라 프랑스로 건너가 고등학교와 툴루즈대학을 졸업했고 이후에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그 역시 1922년 갑자기 귀국했는데 시기상으로 볼 때 아마도 가문끼리 결혼을 밀어붙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 시절부터 홀로 해외생활을 했던 민원식은 지금처럼 한인 유학생들이 많은 시절도 아니어서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기에 조선에서는 형이 따라다니며 통역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윤시선도 윤치오가 망명생활을 하던 당시 도쿄에서 출생하여 불영화여학교(佛英和女學校) 부속유치원과 부속소학교를 다녔다.

▲ 불영화여학교(佛英和女學校)

이후 1906년 가족과 함께 귀국하여 조선에서 고등여학교를 마치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으니, 그녀도 신랑 민원식과 마찬가지로 해외생활이 익숙했다. 게다가 영어도 익숙했기에 '아들은 조선말을 전혀 하지 못하지만 조선인 며느리를 원하는' 명문가 부모에게는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이후 민원식은 연희전문학교 불어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해방 후에는 연합통신을 설립하는 등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건국 후에는 장택상(張澤相) 대한민국 초대 외무부 장관의 차관보로도 근무하였으나 6.25 전쟁이 발발해 납북되었고 이후의 생사는 알 수 없다.

▲ 민원식(閔瑗植)

윤시선도 일제시대와 한국 초기의 서양화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였으나 남편과 함께 납북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195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출품된 작가 명단에 그녀의 이름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당시 여류 서양화가가 많지 않은 시대에 한자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이 존재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며, 남편과 함께 납북된 것으로 혼동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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