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총으로 쏘기도 했던 KFC 창업주 이야기


'KFC' 하면 하얀양복과 염소수염을 기른 인자한 미소의 할아버지가 그려진 로고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로고속의 할아버지는 실제 존재했던 사람이었다' 라고 하면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있군' 이라고 하는 분들이 대다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로고 속의 주인공은 KFC의 창업자 커널 샌더스(Colonel Sanders)이고 책이나 방송에서 험난한 인생역정 스토리로 많이 다루어졌기에 아주 유명하죠


하지만, 지금 처음 알았다는 분들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KFC의 고향인 미국 USA Today 지에서 조사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무려 60%의 미국인들이 이 로고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18세에서 25세사이의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몰랐다고 합니다




실패의 대명사 커널 샌더스


이 영감님의 본명은 헤럴드 데이비드 샌더스(Harland David Sanders)로 인생의 대부분이 사업실패로 점철되어 있으며, 그런 이유로 인생 강의나 희망 강연의 단골 소재로 거론되는 분입니다


- 1890년 출생, 아버지를 여의고 새아버지의 학대로 인해 가출

- 15세때 나이를 속여 군에 입대

- 제대후 철도회사에 입사했으나 노사갈등으로 퇴직

- 마음잡고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었으나 그만둠

- 증기선 기관사, 보험영업, 보트제조, 농부, 타이어 영업등 여러직장을 전전

- 주유소영업 시작하여 성공하는듯 했으나 1929년 대공황이 닥침

- 다시 주요소를 맡아 식당과 모텔사업도 병행

- 이때의 성공으로 켄터키 주지사로부터 '커널' 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음

- 1939년 , 대형화제로 전 재산 소실 

- 1941년 재기에 성공하나 1950년 우회도로 건설로 인한 손님 격감

- 자신의 치킨 레시피로 치킨 한조각당 5%의 수수료를 받는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음, 이때가 65세

-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Kentucky Fried Chicken) 탄생

- 1980년 90세의 나이로 사망

 

<젋은 시절의 샌더스>


경력속의 변호사를 그만두게 된 것은 고객을 폭행한 사건 때문이었으며, 

인자한 미소와는 어울리지 않게 총격전에 휘말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기도 하였으나 먼저 시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당방위로 인정되어 무죄처리되었습니다

만약 살인죄로 기소되었다면 우리가 먹는 KFC는 출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커널이란 이름의 유래



켄터기 주에서는 국가나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개인에게 주지사와 국무장관의 이름으로 '켄터키 커널(Kentucky Colonels)' 이라는 호칭이 수여됩니다

1813년부터 시작된 이 전통은 켄터키주에서 부여하는 최고의 영예로운 가치로 수상자들은 사회적 기부도 많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허리케인이나 국가 재난이 닥칠때 식사와 구호품을 이재민에게 제공하는 기부활동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1936년, 샌더스가 주유소와 식당(Sanders Court & Café)을 병행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을때 주지사 루비 라푼(Ruby Laffoon)이 그에게 바로 이 '켄터키 커널(Kentucky Colonels)' 을 수여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본명보다 '커널 샌더스' 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 로고의 변천


 


최초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로고는 1952년에 출현했습니다

이후 이 커널 샌더스가 직접 쓴 단순한 서체와 얼굴이 1978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1978년에는 약간 세련된 서체로 변형되어 유지되던 것이 1991년, 드디어 KFC라는 이니셜만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샌더스의 얼굴을 파란색으로 변경했습니다

1997년에는 미소짓는 샌더스의 얼굴을 도입하였고 그림의 선을 얇게 하여 기존의 만화적인 느낌에서 사실적으로 바꾸었습니다

2006년에는 흰색 양복이 사라지고 더 간결한 그림체와 앞치마를 입은 샌더스가 도입 되었습니다

KFC측은 그가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라 원래 요리사였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변경이유를 밝혔습니다

즉, 흰색 양복과 수염은 커널 샌더스의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지만, 인자한 미소를 짓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훗날 만들어진 것입니다



- 수염은 사실 염색한 것

 

 

1950년대, 샌더스는 마케팅 전략으로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과 염소수염을 기르고 흰색 양복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직접 개발한 스타일의 넥타이 매듭도 묶고 다녔습니다

백발의 머리에 맞게 콧수염과 턱수염을 탈색하여 온통 하얀색으로 '깔맞춤' 하였습니다

샌더스는 20년이 넘게 공공장소에서 이 복장외의 차림으로는 나타난 일이 없었으며 사망 후 관에 들어갈때도 이 복장으로 입관되었습니다

그가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을때에도 치킨 레시피 외에 가맹주가 자유롭게 자신의 모습을 홍보에 사용하는 권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KFC의 극비 제조법



커널 샌더스가 개발한 KFC 치킨의 제조법은 11가지의 허브와 향신료들의 종류와 혼합률입니다

이 조리법은 켄터키주 렉싱턴의 KFC 본사 지하에 모션감지기와 여러대의 감시카메라로 둘러싸인 금고내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2명의 고위 경영진만이 접근할 수 있으며 금고에는 샌더스가 직접 연필로 적은 비법이 공책에 적혀 있다고 합니다


솔직히 시대를 감안하면 공책은 변색되었을 것이고 연필로 적은 필기는 흐릿해졌을 것입니다. 

즉 다른 곳에 옮겨 기록하면 그만인 상징적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이라는 사명을 현대적인 이니셜 'KFC' 로 변경해가며 정체성을 바꾸고 싶어하면서도 '커널 샌더스의 비법이 극비로 보관되어 있다' 는 홍보로 KFC와 커널 샌더스의 강력한 결합만은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셈입니다 



- 커널샌더스의 절반의 성공



커널 샌더스가 KFC로고나 동상으로 직접 등장하기에 사람들은 그가 현재의 KFC를 일군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그는 1964년에 캐나다와 미국에서 600개가 넘는 지점이 개장하며 사업이 확장되자 더 이상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하여 존 Y. 브라운(John Y. Brown)과 잭 메시(Jack C. Massey)에게 미국 KFC 법인을 겨우(?)200만 달러에 넘겼습니다

그는 매각 제의를 받고 고민하다가 별자리 점성술로 그날의 운세를 확인하고 판매에 합의했다고 합니다

이 금액은 2013년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1500만달러에 해당하며 2012년 KFC의 수익이 95억 달러에 달하는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헐값입니다


<KFC가 입점한 국가>


여러번의 사업실패를 겪고 KFC 창업과정에서도 1008번의 거절을 당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열정으로 현재 115개국 17000여개 지점을 보유한 패스트푸드점을 세웠다고 알려져 있는 커널 샌더스. 

사실 사업을 매각한 시점을 보면 현재의 KFC를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빨리 손을 뗀 셈인데요

여러번의 실패가 인생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최후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1968년, KFC는 미국에서 가장 큰 패스트푸드 사업체가 되었으며 그는 두고두고 미국법인을 판매한것을 후회했습니다


한편, 200만 달러에 KFC미국 법인을 인수한 잭 메시(Jack C. Massey)는 7년후 2억3천9백만 달러에 KFC를 매각했습니다

커널 샌더스는 90세로 사망할때까지 세계 곳곳을 다니며 KFC를 홍보하는 명예이사로 남았습니다




- KFC 할아버지의 저주



일본 프로야구팀 한신타이거즈가 1985년 센트럴리그에서 우승했을 당시, 기쁨에 겨워 흥분한 한신팬들이 도톤보리강으로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팬들끼리 환희를 느끼며 강으로 뛰어들며 자축으로 시작한 재미있는 광경이었는데 KFC 도톤보리점(道頓堀店)에 세워져있던 커널 샌더스 동상을 뽑아서 헹가래를 치다가 도톤보리강에 집어던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조사에 따르면 21년만에 한신을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끈 타격 3관왕(0.350 / 54 HR / 134 타점) '하늘이 내린 용병' 랜디 바스(Randy William Bass)가 KFC 할아버지와 닮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사실 전혀 안닮음>


동상이 강으로 던져진 이후 하루종일 다이버까지 동원해 수색을 벌였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농담처럼 "발견하지 못하면 한신은 영영 우승할 수 없을걸" 이라고 얘기했는데 이후 그 저주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신은 무려 18년동안 리그 우승도 차지하지 못했으며 2003년과 2005년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하지만 일본시리즈에서는 패퇴하며 '커널 샌더스의 저주' 가 맞아들어갔습니다 


<발견 당시 보도>


그런데, 2009년 3월 10일 커널 샌더스 동상의 상반신이 도톤보리강 정비작업을 벌이던 다이버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이 후 근처에서 하반신과 손목이 추가로 발견되었고 기자회견까지 열리며 떠들석한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사진만 보면 시신수습작업 분위기>


'저주가 풀려 이제 우승할 수 있다' 고 한신팬들은 기뻐했지만 오히려 4년연속 A클래스(3위내)에 있던 팀성적이 그해 4위에 그쳤으며 이후 2위를 차지한 2010년을 제외하면 2011년 4위, 2012년 5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여전히 분노중인 커널 샌더스>


다시 발견된 커널 샌더스의 동상은 2010년 3월 20일, 한신의 홈구장인 고시엔구장에서 도보로 1분거리에 있는 KFC 고시엔 지점에 설치되었습니다.



댓글(7)

  • ㄱㄱㄱ
    2017.08.02 21:36

    사람을 총으로 쏜 것 맞는데 이 책 읽어 본 사람은 진짜 변호사 된 게 아니고 방송대학에서 잠깐 법학 공부한거데 그게 와전된거다고 함 상식적으로 변호사 자격증 있는 사람이 변호사 때려치고 영업,장사하면서 힘들게 사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

    • 2017.08.03 18:12 신고

      안녕하세요. 방문 감사드립니다.

      커널 샌더스의 생애 스토리는 워낙 굴곡이 있다보니 '사실이다 아니다'로 논쟁이 잦은 주제 중의 하나인데요.

      그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부분의 사실 여부는 저도 해당 포스팅 작성 후 방문자들의 문의가 몇 차례 있어서 자료를 좀 살펴보았습니다.

      1. 우선 KFC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100% Real, 100% Awesome'이라는 문구와 함께 그의 직업을 나열해두고 있는데요. (http://goo.gl/CkcVtK)

      <From 1920 to 1930, Sanders started a ferryboat company, worked as an insurance salesman, a lighting salesman, a lawyer, a tire salesman, an obstetrician, and a secretary at the Chamber of Commerce in Indiana.>
      조금 읽어내려가다보면 변호사라는 직업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 그가 직접 쓴 자서전인 'The Autobiography of the Original Celebrity Chef'에는 변호사로 일했던 시절을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That move to Little Rock was a milestone in my life. I was there for three years studying law, reading the material La Salle sent me, and reading in the office of Judge Iscreed. When any of my cases had to go to a higher court, a court above the Justice of the Peace Court, if I didn’t win in the J.P. Court, I turned them over to the judge. He’d take them from there on in and we’d split the fee. It was a slim living, but I was getting by.
      Then, I decided I didn’t want to be a lawyer anymore.>

      위 부분에서 보시다시피 일하면서 3년동안 라살 엑스텐시온 대학의 원격강좌를 통해 법학 학위를 딴 이야기와 비전없는 법원에서의 생활, 그럭저럭 살아가는 삶을 나열하며 변호사를 그만두는 과정을 쓰고 있습니다.
      이 자서전은 다음 링크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다운로드: http://kfc.ro/__test/assets/pdf/Cartea_Colonelului.pdf


      3. 또 Josh Ozersky가 쓴 커넬 샌더스에 대한 책 'Colonel Sanders and the American Dream'에도 변호사를 그만둔 과정에 대한 차이는 있으되 역시 변호사로 일했던 시절이 나옵니다.

      <his mid-twenties, presents himself as an attorney at the site of a train wreck, the start of a brief career that ended in a fistfight with a client.>

      책소개: https://utpress.utexas.edu/books/ozecol

      샌더스 본인은 빈곤하고 재미없는 생활 때문에 변호사를 그만둔 것처럼 말했습니다만(물론 그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순 있겠지만) 이제 막 변호사 커리어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판사 앞에서 고객과 주먹다짐을 한 것이 주된 이유로 나옵니다. 본인 자서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제외하면서 미화를 한 것으로 추측되네요.


      - 미국에서의 변호사의 위상은 그 숫자만큼이나 천차만별이죠. 당연히 좋은 대학을 나온 변호사는 어마어마한 수임료를 받고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존경을 받으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겠지만, 원격강좌를 통해 딴 변호사의 위상은 그의 자서전처럼 그럭저럭 사는 정도겠죠. 거기다 고객과 싸움까지 했으니 본인이 때려친게 아니라 실은 변호사로 더이상 일하기가 힘들었다고 보는게 더 합당하겠죠. '변호사 자격증 있는 사람이 변호사 때려치우고 영업, 장사하면서 힘들게 사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라는 부분은 의혹이 풀리실 거라 봅니다.

      - '책을 읽어본 분이 방송대학에서 잠깐 법학 공부한 게 와전된 거라고 했다'라고 쓰셨는데 그런 내용이 나오는 것이 어느 책인지 알려주시면 한번 찾아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서전을 일단 사실로 놓고 공식사이트와 또 다른 작가의 책으로 크로스체크를 하는게 맞지 않나 생각됩니다.
      제가 찾아본 자료들은 공부한 대학의 이름이 다르거나 혹은 위에 말씀드렸다시피 변호사를 그만둔 과정이 다르기는 해도 변호사로 일한것 만큼은 동일했습니다.

  • ㅇㅇ
    2018.01.11 00:49

    아직 왼손 못찾아서 한신의 저주는 안풀린다능

  • twain
    2018.01.20 05:31

    안녕하세요. 커널 샌대스의 생애를 찾아보다가 사이트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잘 정리해두셔서
    포스팅을 보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자료를 더 찾고자 하는데, 리플에 커널 샌더스가 직접 쓰신 자서전 링크를 답글로 다신 걸 보았습니다. 그런데, 리플의 2번의 링크가 열리지 않는데, 혹시 확인해주실 수 있을까요?

    • 2018.01.20 23:17 신고

      twain님 안녕하세요. 사이트가 리뉴얼되어서 링크주소가 바뀌었네요. 바뀐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s://www.kfc.ro//Cartea_Colonelului.pdf

  • lifeasjun
    2018.01.30 16:36

    kfc 할아버지 성공사례를 찾다가 여기까지 왔는데요 잘 봤습니다.
    그 1007번 실패하고 1008번째 투자자를 만났다는 내용을 찾았었는데 더 많은 이야기를 보게되어 기쁩니다.
    좋은 정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박정선
    2018.04.17 00:22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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