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많은 보릿고개'의 참상

'보릿고개'는 지금은 고난을 뜻하는 수식어로 쓰이거나 인기 트로트의 제목으로 유명하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이 고개를 넘지 못하고 안타까운 비극으로 이어지는 일들이 많았다.

추수한 쌀이 바닥을 드러내고 아직 보리는 익지 않은 5~6월, 그러니까 딱 지금 이 시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먹을 것을 찾아 나서던 춘궁기(春窮期)였다.

▲ 식량이 떨어진 농가에서 밥달라고 보채는 손주를 달래는 할머니

보릿고개 시대의 참상은 당시 보도된 몇 가지 사건으로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1. 쑥 뜯어먹고 사망


본격적인 보릿고개에 들어간 1963년 5월, 충청북도 중원군 상모면 토계리에서 일가족이 '쑥'범벅(쑥버무리)을 먹고 사고를 당했다.

 

5월 9일, 12세의 딸이 뜯어온 쑥으로 범벅을 만들어 다음날 아침식사로 가족 다섯 명이 먹었는데, 이중 네 명이 앓다가 12세와 4세의 어린자매가 절명하고 만 것이다.

부검 결과 이들은 오랜 굶주림으로 영양실조가 온 상태에서 갑자기 음식을 섭취하면서 급체로 인한 급성위장염이 발병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참조: 경향신문 1963.05.17)



2. 속출하는 극단적 선택


가장 힘든 시기인 보릿고개는 5~6월이었지만 몇 달 전부터 식량이 바닥나면 다가올 굶주림에 대한 공포는 엄청났다. 이에 1956년 1월, 춥고 배고픈 시기에 자살자가 속출했다. 당시 보도된 사례는 다음과 같았다. (참조: 경향신문 1956 01.18)

▲ 보릿고개동안 여자와 아이들의 주식은 고구마였고, 잡곡밥은 일을 해야하는 성인남성들이 먹었다.


• 12일 오전 6시 30분, 영천 도동에 거주하는 이상도(52)씨는 생활고로 철로에 뛰어들었다.

• 같은 날 오후 5시경, 청도군 이서면에 거주하는 이송용(48)씨는 굶주림에 허덕이다 급기야 쥐약을 먹고 극단적 선택.

• 경주 성건리에 거주하는 김종묵(41)도 역시 부채와 생활고로 같은 날 오후 8시경에 세상을 하직.

• 같은 날 오후 11시, 영양군 삼지동에 거주하는 김순도(29)씨는 심각한 생활난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 도둑도 돈보다 '쌀'


1955년 5월 19일 정오, 전남 보성군 회천면 군농리의 한 주택에 권총을 든 괴한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 괴한은 돈이 아닌 "쌀을 내놔라"고 협박한 다음 쌀을 들고 도주하려다가 주인의 저항으로 넘어졌고, 주민들이 가세하며 결국 체포되었다.

괴한의 신분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보릿고개 시기에 돈이 아닌 쌀만을 강탈하려 한 것만으로도 범행의 이유는 익히 짐작할만하다. (참조: 경향신문 1955.05.21)


4. 섬으로부터의 구조요청

 

▲ 전라남도 연도(鳶島) 위치

1962년 4월 18일 정오,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의 가장 남쪽에 있는 섬 연도(鳶島)의 이장 장석민(張石珉)씨가 '보릿고개를 맞아 가난에 시달리는 외로운 섬사람들을 구호해달라'며 동아일보 본사를 찾아왔다.

▲ 연도(鳶島)의 현재 모습. 당시는 배로 7시간이 걸렸다.(현재는 2시간)

장 씨의 말에 따르면, 이 시기 연도 주민들 2,870명 중 3분의 2가 식량이 떨어져 고구마로 겨우 연명하고 있었으며 매해 봄마다 이런 상황은 반복되고 있었다. 이런 사정은 근처에 있는 안도(安島) 역시 마찬가지였다. (참조: 동아일보 1962.04.20)



5.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국민학생들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은 김제평야 부근에 있어 풍요로운 고장의 느낌이지만 역시나 춘궁기를 앞두고 양식이 떨어지고 있던 상태. 이곳에 있는 황산국민학교(현재 황산초등학교)의 점심시간은 참담했다.

• 6학년 1반 75명 중, 도시락 가져온 아이가 5명, 집에 가서 먹고 오는 아이 15명.
• 6학년 2반 75명 중, 도시락 가져온 아이가 2명, 집에 가서 먹고 오는 아이 7명.
• 6학년 3반 75명 중, 도시락 가져온 아이가 19명, 집에 가서 먹고 오는 아이 10명.

▲ 1965년, 황산국민학교 6학년 2반의 점심시간 풍경

6학년 총 225명 가운데 점심을 먹는 아이가 58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167명은 굶고 있었다. (참조: 동아일보 1965.03.11)


6. "아버지 난 안 죽을래"


1964년 5월 21일 새벽 1시,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 등천리에 있는 호남선 천원역 남쪽 3km 지점 선로에서 김전태 씨 일가족 7명이 집단자살을 기도해 장녀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보릿고개에 접어들어 굶는 날이 많아지자 김 씨는 이날 가족을 깨워 마을 앞 철길로 데리고 나와 소주를 나눠먹이고 철로를 베개 삼아 나란히 누웠다. 이때 잠에서 깬 어린애들이 춥다고 하자 장녀에게 집에 가서 이불을 가져오게 했다.

이불을 가지러 가려고 일어난 김덕윤(金德允, 12)은 순간 내리막길을 빠르게 달려오는 화물열차를 보고 "아버지 난 안 죽을래~!"라고 외치면서 철길 밖으로 뛰쳐나가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 현재는 무인역이 된 천원역(川原驛)

당시 정부에서는 이 사건이 '보릿고개로 인한 굶주림이 원인이 아니라 김전태의 사업실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족들에 따르면 사망한 가족들은 굶기를 밥먹듯이 했고, 입암국민학교(현재 입암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결식아동으로 등록되어 모두 학교에서 끓여주는 옥분죽(옥수수가루죽)으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 역시 사고가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김덕윤으로부터 "오는 사월초파일이 우리 엄마 생일인데 그날 쌀밥 한 그릇씩 먹고 죽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아마도 정부는 국민들이 굶주림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를 최대한 누락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 홀로 생존한 김덕윤 양

한편 하루아침에 부모형제를 모두 잃은 김덕윤을 데리러 5월 22일 오후 4시 고아원 원장이 찾아왔고, 아이는 마지막으로 학교에 들러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눈물을 흘리며 고아원으로 떠났다고 한다. (참조: 동아일보 196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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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2022.05.03 02:06 신고

    1964년에 이미 부모가 자식동반해서 죽는 시도가 있었군요. 아이고.. 여기 유럽도 기근에서 벗어나 세끼 다 챙겨 먹게된 지는 백년이 안되요.

    • 2022.05.04 00:23 신고

      그러고보면 지금은 정말 좋은 세상인데 어긋난 방향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