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프랑스 마르세유(Marseille)의 모습

▲ 바다 쪽에서 본 마르세유 도시 전경.

가운데 보이는 건물은 공사 중인 성모 마리아 대성당(Cathédrale Sainte-Marie-Majeure de Marseille). 마르세유 대성당(Cathédrale La Major)으로도 불리며 1896년 완공되었다.

마르세유 구 항구(Vieux-Port de Marseille)로 들어오는 입구. 왼쪽의 등대와 오른쪽의 마르세유 대성당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 등대 쪽에서 촬영한 마르세유 대성당의 현재 모습

 

마르세유 구 항구(Vieux-Port de Marseille)의 풍경.

마르세유 구 항구(Vieux-Port de Marseille)에 인접한 건물들.

▲ 항구 입구의 생장 요새(Fort Saint-Jean)의 모습(왼쪽).

▲ 생장 요새의 현재 모습

생장 요새는 루이 14세에 의해 지어진 곳으로, 프랑스혁명 기간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마르세유 구 항구(Vieux-Port de Marseille)의 프라테르니테(fraternité) 부두.

▲ 부둣가에 마차가 짐을 실어가기 위해 잔뜩 대기하고 있는 모습.

▲ 1854년까지 마르세유 구항구는 1,000척에서 1,200척의 선박을 수용할 수 있었다. 매년 약 18,000척의 상선들이 이곳을 통과하며 번영했으나, 19세기 후반에 대형 증기선이 출현하면서 6m 깊이의 얕은 항구는 점점 무용지물이 되었다.

마르세유 구 항구(Vieux-Port de Marseille)에 정박하고 있는 증기선.

▲ 정박한 증기선과 부두에 가득 쌓인 짐.

▲ 짐과 마차로 분주한 부두.

▲ 마르세유 구 항구와 연결되는 꺄느비에흐 거리(La Canebière, 카네비에르). 멀리 도로의 끝으로 항구가 보인다.

▲ 꺄느비에흐 거리 왼편으로 보이는 상공회의소(Palais de la Bourse)

1860년 8월에 완공된 건물로 나폴레옹 3세(1808~1873)가 개관식을 가졌다. 그런 이유로 내부에 그의 동상이 있었으나 1870년 9월 4일, 폭동이 발생했을 때 동상의 머리가 잘려 거리에 뒹굴었다. 지금은 동상이 있던 자리에 기압계가 세워져 있다.

▲ 상공회의소 내부. 기압계가 있던 자리에는 나폴레옹 3세의 동상이 있었다.

 

▲ 꺄느비에흐 거리는 약 1km의 길이로 현재 '마르세유의 샹젤리제'라는 별명이 붙여져 있다.

1934년 10월 9일에는 이 거리에서 유고슬라비아의 왕 알렉산다르 1세(Alexander I of Yugoslavia)가 암살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다.

- 관련 글: 알렉산다르 1세의 암살과 루마니아 공주 마리야와의 결혼식


▲ 상공회의소(Palais de la Bourse)는 2차 대전 중 독일 포병의 포격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심각한 손상을 입기도 하였다. 현재는 해양박물관(Musée de la Marine)과 마르세유-프로방스 상공회의소(CCIAMP) 사무실이 입주하고 있다.

▲ 같은 위치의 현재 모습

 

마르세유 구 항구(Vieux-Port de Marseille) 쪽에서 본 꺄느비에흐 거리.

▲ 1859년, 마르세유 시의회는 꺄느비에흐 거리의 폭을 30m로 정하면서 기존의 아름다운 저택들이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다. 당시 지어진 건물들은 현재까지도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다.

▲ 꺄느비에흐 거리를 오가는 노면전차. 마르세유의 옛 전차(L'ancien tramway de Marseille)는 1876년부터 2004년까지 운영되면서 20세기 내내 중단되지 않았다.

▲ 꺄느비에흐 거리에서 꽃을 파는 여성들.

▲ 이 시기 마르세유의 거리에는 마차, 증기기관차, 전기로 가는 노면전차가 혼재하고 있었다.

▲ 1893년까지 마르세유의 교통망 51km 중 마차가 점유하는 구간은 36km로 정점을 찍었다. 이 중 노면전차는 6km 정도를 점유하고 있었다.

▲ 1863년 8월 15일에 완공된 그랜드호텔 루브르(Hôtel Louvre et Paix, Le Grand Hôtel du Louvre et de la Paix)의 모습.

▲ 현재의 루브르 호텔

1863년에 지어진 호텔로 카미유 플라마리옹(Camille Flammarion), 마크 트웨인(Mark Twain), 브라질 제국의 황제 페드루 2세(Pierre II)등이 묵었다.

▲ 그랜드호텔 루브르 앞의 노아이으 거리(Rue Noailles).

오늘날 '마르세유의 배꼽(le ventre de Marseille)'이라 불리는 노아이으(Noailles)는 거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 마차로 넘쳐나는 마르세유의 거리. 이 시기 말들은 도시발전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였던 반면 최악의 오염원이기도 했다. 거리에는 말들의 배설물과 그로 인한 냄새로 가득했다.

1899년에 마르세유는 전력망이 구축되면서 150대의 노면전차를 구입하기 위해 말과 마부들을 해고했다. 20세기를 앞두고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 관련 글: 도시를 말로부터 구한 자동차


▲ 마르세유 레퓌블리크 거리(rue de la République, 뤼 드 라 레퓌블리크). 프랑스 제2제국 시대에는 '임페리알레 거리(rue Impériale, 뤼 임페리알레)'로 명명되었다가 제3제국에 들어서면서 법령으로 개칭하였다.

▲ 항구에서 본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Notre-Dame-de-la-Garde)의 모습. 1864년에 완공된 성당으로 149m 높이의 언덕에서 항구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종탑의 높이는 41m이다.

▲ 요트로 가득한 현재의 모습

 

▲ 마르세유 구 항구의 수송용 다리(Pont transbordeur de Marseille). 건축가 페르디낭 아노딘(Ferdinand Arnodin , 1845~1924)이 건설한 것으로, 곤돌라를 통해 짐을 부두 사이로 빠르게 운송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 완공된 다리 모습

두 개의 주탑의 높이는 86.60m, 주탑을 연결하는 상판은 52m로 선박의 운항에 방해가 되지 않게 높게 만들어졌으며, 곤돌라는 1분 30초 만에 부두 사이를 왕복하면서 항구의 교통난을 해소했다.

▲ 다리를 왕복하는 곤돌라

1899년부터 건설에 들어가 1905년 12월 15일에 개통되었으며, 건설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건설업자에게 75년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하지만 1944년 8월 22일,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이 마르세유 전투 중 항구를 막기 위해 다리를 폭파하였다.

▲ 1893년, 비슷한 형태로 지어진 스페인 비즈카야 다리(Vizcaya Bridge)는 지금도 사용중이다.

파리의 에펠탑이 초기에 파리 시민들에게 흉물 취급을 받았던 것처럼 철골구조의 다리는 마르세유 시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오히려 재건하자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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