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기상천외했던 '공중에서의 결투'

19세기 이전,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는 결투 문화가 일상적이었다. 특히 프랑스의 루이 13세는 결투를 벌이다 발생한 살인에 대해 8,000건을 사면했을 정도.

각자 결투신청을 하는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주로 '나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 '파리 근교, 볼로뉴 숲의 결투' / by Godefroy Durand(1875)

그중 1808년, 파리에서 벌어진 그랑프레(Grandpré)와 피케(Pique)라는 인물들 간의 결투는 역대 가장 기상천외했던 결투 중 하나로 남아있는데 바로 사상 최초의 '공중전'이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사랑


두 사람은 파리 오페라극장의 젊고 매력적인 무용수였던 티흐빗(Tirevit)을 동시에 흠모하고 있었다.

그해 4월, 치열한 삼각관계 끝에 결투를 통해 티흐빗의 미소를 승자가 쟁취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는데 둘 다 기구 타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있어서인지 사상 최초의 공중전에 쉽게 합의했다.

▲ 현대의 기구

아마도 진부한 검으로 싸우는 것보다는 세련된 첨단 기구로 하늘에서 싸우는 것이 낭만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어쨌든 취미가 일치하는 라이벌들은 한 달 후 각자 최선의 기량을 보일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결전을 벌이기로 하였다.


기구를 이용한 공중 결투


한 달 후인 1808년 5월 3일, 파리의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에서 두 사람은 나팔총(Blunderbuss)을 들고 조수와 함께 열기구에 올라탔다. 즉 이날은 패배자의 충직한 조수도 함께 죽을 운명이었다.

▲ 1760년, 프랑스의 나팔총 'espingole'

아침 9시가 되자 기구를 고정하던 밧줄이 끊어지고 군중의 환호성과 함께 기구는 하늘로 솟구쳤다.

당시 군중들은 이 결투가 기구를 타고 하늘에서 총으로 서로를 쏘는 게 아니라 당연히 경주를 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

간격 80m를 유지하면서 800m까지 올라가자 아래에서 결투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내려졌다.

피케가 서둘러 먼저 총을 발사했지만 빗나갔다. 그랑프레는 안전하게 몸을 숙이고 있다가 피케가 재장전을 하는 사이 일어나 침착하게 정조준을 하고 풍선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피케의 기구는 쪼그라들며 중심을 잃고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 또 다른 기구 결투모습 1878년(좌), 1877년(우)

목격자에 따르면 피케와 조수가 탄 바스켓은 몇 초 후 어느 집의 지붕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고 한다.

승리자 그랑프레는 지상으로 돌아오기 전에 세리머니를 하듯 더 높이 기구를 상승시켜 파리에서 약 20km 떨어진 곳에 착륙했다.

▲ 영국 Northampton Mercury 신문에 보도된 공중전 (1808.07.23)

그 후 그랑프레가 티흐빗과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었는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사실 애초에 그녀가 '기구 결투에서 이기는 사람과 결혼하겠어요'라는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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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 재리 부부
    2022.06.07 06:56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 2022.06.07 18:04 신고

    티흐빗에게 다짐을 받고 결투를 해야지. 자기들끼리 목숨을 걸고 결투하면 어쩌나...이겨봐야 티흐빗이 '노'하면 끝인데... 그죠? ^^

    • 2022.06.07 22:56 신고

      그러게요. 흔치 않은 취미도 같은데 그냥 둘이 친구로 지내는 것도 괜찮았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