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 이야기들 ㉓ 절벽을 수직으로 내려가는 기병

현대 승마의 아버지


1906년, 말을 탄 기수가 영화의 특수효과처럼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수직으로 내려가는 모습.

이 모습은 '현대 승마기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페데리코 카프릴리(Federico Caprilli)가 이탈리아 로마 근교 토르디퀸토(Tor di Quinto)의 기병학교에서 '카프릴리 강하'라고 이를 붙여진 기술의 시범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 기병학교의 모든 기병장교후보생들이 훈련을 수료하기 위해서는 이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다.

오늘날 현대 승마에서 장애물을 넘는 '전경자세(forward seat)'역시 페데리코 카프릴리가 고안한 것이다.

▲ 장애물을 넘는 전경자세(forward seat)

과거의 기수들이 말을 타고 장애물을 넘는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현재와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과거의 장애물을 넘는 방식(back seat)

당시의 비월자세는 위의 사진과 같이 등자를 이용해 발을 앞으로 최대한 뻗고 몸은 뒤로 젖히는 것이었다.

고삐로 당겨진 말은 뒷다리부터 착지했는데, 이는 연약한 앞다리보다는 튼튼한 뒷다리로 착지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여겨졌기 때문. 당연하게도 이것은 본능적인 말들의 점프동작을 방해하는 방식이었고, 공포로 인해 말들이 장애물을 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 구식방법으로 장애물을 넘는 기수

페데리코 카프릴리는 말이 자유롭게 점프하는 모습을 마치 오늘날 스포츠 전력분석관처럼 면밀히 관찰하였고, 기수가 타지않은 말들이 장애물을 넘을 때 최대한 웅크리고 무조건 앞발부터 땅에 닿는 것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자세를 고안해낸 것이다.

마찬가지로 카프릴리 강하 역시 기수의 체중을 말의 등에 온전히 실리게 하고, 몸을 젖혀 무게중심을 말의 뒤로 보내는 과학적인 방법이었다.


▲ 기수없이 점프하는 말의 동작

그의 기술을 통해 기수들은 장애물을 안정적으로 높이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젊은 장교후보생들이 흉하게 엉덩이를 보이며 말을 타자 고루한 고위장교들의 반발을 산 것은 어쩌면 당연했고, 카프릴리는 이탈리아 기병학교의 교관에서 지방의 기병대로 쫓겨났다.

▲ 페데리코 카프릴리(Federico Caprilli, 1868~1907)

군대의 중요한 전력이었던 기병대는 이 시기 과도기를 맞고 있었다. 적 포병의 화력 앞에 기마병들은 속수무책이 되었고, 말과 기수들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정찰과 전령의 임무로 전환되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중기병의 모습을 잊지 못한 늙은 장교들은 기술의 변화를 '미친 생각'이라며 받아들이기 힘들었겠지만 이제는 웅덩이와 장애물을 빠르고 안정적으로 뛰어넘는 능력이 우선이었다.


▲ 기병학교에서 전경자세 시범을 보이는 카프릴리

새로운 시대에 카프릴리의 탁월한 기술은 전출지의 승마대회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빛을 발했다. 결국 기병 총감찰관이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왕자(Vittorio Emanuele, 1870~1946)의 부름을 받아 기병학교의 수석교관으로 당당히 복귀했다.

▲ 카프릴리 강하 시범을 보이는 모습

서두에 나온 '카프릴리 강하'도 이 시기에 선보인 것이다.

카프릴리의 기술을 완벽하게 이식한 이탈리아 기병대는 각종 승마대회를 지배하였고, 세계 각국의 기병장교들이 연수를 오기도 했다. 특히 1906년 아테네에서 열린 중간올림픽(1906 Intercalated Games)에서 카프릴리가 승마시범을 보인 이후 그의 기술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