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 이야기들 (59) 특종을 위해 달리는 백악관 기자들

1945년 8월 14일(미국 시간),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백악관 주변에 돌고 있었다.

아래의 사진은 이 사실이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 대통령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확인되자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각자 소속신문사의 편집실에 연락하기 위해 로비를 지나쳐 달리는 모습이다.


이는 일제가 지배하고 있던 동아시아 지역의 독립을 의미하기도 해서 한국에서도 유명한 사진이다. 한국시간으로는 8월 15일, 즉 광복절의 순간이다.

백악관 출입기자단의 역사는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6대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는 정부와 언론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다.

▲ 로비의 원형탁자는 1934년 필리핀 대통령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 1869~1964)가 선물한 것이었다.

당시 각 언론사에서 나온 특파원들은 개인사무실에 분산되어있다가 백악관으로 출근하였으나 지금의 행정실 건물에 기자들을 위한 전용공간이 배정되면서 기자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다만 이때는 브리핑룸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고, 대통령 집무실 앞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을 불러들여서 백악관의 공식입장을 밝혔다. 집무실이 곧 브리핑룸이었던 셈.

▲ 1945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집무실 기자단 브리핑

사진 속 어딘가로 급히 달려가는 기자들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집무실에서 일본의 항복에 대한 공식발표를 전해 듣고 '2차 대전 종전'이라는 특종을 전하기 위해 전화기가 있는 기자실로 향하는 것이었다.

▲ 소속 언론사 편집부에 전화를 거는 백악관 출입기자들

같은 공간에 모여있는 기자들은 동종업자들끼리 친분도 쌓고, 질의응답을 하는 기술도 자연스럽게 훈련되는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대기인원이 현지기자들에 더해 외국특파원까지 수백 명으로 불어나자 더 넓고 효율적인 공간의 필요성이 생겨났다.

이에 1969년, 새로운 브리핑룸 '웨스트 테라스 프레스센터(West Terrace Press Center)'가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1913~1994) 시대에 서쪽 끝 건물(웨스트 윙)에 있던 백악관 내 수영장을 덮고 그 위에 만들어졌다. 이 수영장은 소아마비로 인한 장애를 갖고 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1882~1945) 대통령의 재활운동을 위해 193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 백악관 내부의 수영장. 현재는 컴퓨터 서버실이 되었다.

이후 2000년에는 제임스 S. 브래디 프레스 브리핑룸(James S. Brady Press Briefing Room)으로 개칭을 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명칭은 1981년 워싱턴 힐튼호텔 앞에서 발생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 당시 머리에 총을 맞아 불구가 된 17대 백악관 공보비서관 제임스 S. 브래디(James Scott Brady, 1940~2014)를 기리는 뜻이다.

▲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BTS가 연설을 하는 모습(2022년 5월 31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모습인 백악관 제임스 S. 브래디 프레스 브리핑룸은 2007년 850만 달러를 들여 현대적인 개보수를 거쳐 재개장하였으며 전 세계 미디어의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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