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바닷속에 잠든 아기

1941년 12월 7일, 일본해군이 하와이 오아후섬의 미국 태평양함대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이 공격으로 미군의 전함 4척이 침몰하고 2,335명의 군인과 68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중에는 '아기' 한 명도 있었다.

하지만 이 아기는 공식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유골함에 있는 상태로 수면 아래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1937년 8월 29일, 메리 다이앤 와그너(Mary Dianne Wagner)와 낸시 린 와그너(Nancy Lynne Wagner)는 필리핀 마카티에 있는 가톨릭병원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안타깝게도 아기들은 미숙아였고, 낸시는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사망했다.

▲ 앨버트 와그너와 부인

미 해군이었던 아기들의 아버지 앨버트 와그너(Albert Wagner, 1896~1975)는 낸시의 유골함을 들고 새로운 근무함인 USS 유타(BB-31)에 승선했다.

그는 딸을 태평양에 수장하기를 희망했지만, USS 유타에 군종신부가 아직 탑승하지 않았던 관계로 선실의 사물함에 일단 보관하며 장례를 미루고 있었다.

▲ 와그너(가운데)는 첫딸 헬렌도 함선 위에서 수장했다.(1936년)

그리고 진주만 공습의 그날, 포드 섬(Ford Island) 앞바다에 정박해있던 USS 유타는 두발의 어뢰를 맞고 불과 14분 만에 침몰하게 된다.

▲ 일본의 공격으로 전복된 USS 유타

USS 유타에 타고 있던 해군들 중 461명은 바다로 뛰어들어 탈출에 성공했으나, 미처 피하지 못한 58명의 해군은 배와 함께 해저로 가라앉았다(시신 4구 인양). 갑작스러운 상황에 와그너는 사물함에 있던 딸의 유골함을 챙길 시간조차 없었다.

그로부터 2주 후, 이 사연을 전해 들은 해군 잠수부들이 유골함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으나 내부가 심하게 파괴된 상태여서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 USS 유타 기념관 매년 약 150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

이후 침몰한 함선은 방치되다가 해안가로 인양되어 1972년 USS 유타 기념관(USS Utah Memorial)으로 조성되었다

▲ 메리 다이앤 와그너. 그녀도 생후 4개월 동안 인큐베이터에 있었다.

쌍둥이 여동생을 바닷속에 둔 메리는 "훌륭하고 용맹한 54인의 전사들이 낸시를 지켜주는 것보다 더 명예로운 대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라며 비록 자매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곳이 낸시가 외롭지 않게 영면하기에 최고의 장소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