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 이야기들 (67) 1996년, 우크라이나의 마지막 핵미사일

1991년 기준 우크라이나 병력은 78만 명에 달했으며 6500대의 탱크, 7000대의 장갑차, 7200문의 포, 500척 이상의 군함, 1100기의 전투기, 1000기 이상의 전술핵무기와 176기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고 있었다.

공산권의 정신적 지주인 소련의 붕괴로 우크라이나 병사들의 사기도 떨어진데다가 많은 재래식 무기들이 고철이 되었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것은 소련과 미국 다음으로 많은 핵무기였다.

당시 핵버튼의 통제권이 여전히 러시아의 크렘린궁에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 과학자들의 기술개발로 독립적인 전략핵미사일 부대를 운용할 여지가 희박한 확률로 남아있었다.

▲ 우크라이나에서 설계, 생산한 R-36M(SS-18 Satan) ICBM

이에 미국과 소련의 핵포기 압박이 우크라이나에 가해졌다. 마침 핵미사일 기지 운용에 따르는 막대한 재정에 부담을 느꼈던 우크라이나도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에 서명하는 각국 지도자들

결국 1994년 12월 5일, '안보 보장'을 대가로 핵확산금지조약(NPT)과 부다페스트 안전보장각서(Budapest Memorandum on Security Assurances)에 서명한 우크라이나는 한낱 종이에 불과한 이 약속을 철저하게 신봉했다.

당시 부다페스트 안전보장각서에는 레오니드 쿠치마(Leonid Kuchma)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러시아 대통령, 빌 클린턴(Bill Clinton) 미국 대통령, 존 메이저(John Major) 영국 총리가 서명했다.

▲ 미국에 의해 파괴된 페르보마이스크(Pervomaisk)의 핵미사일 사일로

'향후 7년간 핵 비축량의 30%와 절반 이상의 탄두를 폐기하겠다'는 각서상의 계획보다 훨씬 빠르게 군축은 진행되었고, 그로부터 2년이 채 되지 않은 1996년 여름 무렵이면 우크라이나에는 핵무기가 거의 남아있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핵무기 폐기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주권과 영토를 보전받을 뿐만 아니라 참여한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제재를 거부하는 것에 서약했다. 또한 타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무력으로 함께 대응할 것을 천명했다.

▲ 1996년 해체된 우크라이나의 제43 로켓군 패치

하지만 그로부터 채 20년이 되지 않은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크림반도와 돈바스 일부를 점령했다. 각서의 당사자이자 보증인인 러시아가 이를 어김으로써 우크라이나식 핵폐기 모델이 다른 핵보유국가에 적용되는 것은 불가능한 선례가 되었다.

또한 다른 두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도 우크라이나가 침공을 받을 시 무력대응에 나선다는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입으로만 '러시아의 행동에 우려를 표명'함으로써 소위 국가 간 평화조약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약속인지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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