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 이야기들 (74) 역사상 최초의 경기장 스트리킹(Streaking)

1974년 4월 20일,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친선 럭비 경기가 영국 런던 트위크넘 스타디움(Twickenham Stadium)에서 열렸다.

그런데 전반전 도중 한 남성이 나체로 경기장에 난입해 트랙을 달리는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운동장에서 종종 벌어지는 '관중 난입'은 경기 흐름을 끊고 시간을 지연시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위지만 당시에는 전례가 없었던 일이어서 더욱 쇼킹한 일이었다.

문제의 남성은 호주에서 온 26세의 회계사 마이클 오브라이언(Michael O'Brien). 그가 이런 행동을 저지른 이유는 '내기'때문이었다.

함께 경기장에 온 호주 친구들이 영국 동료들에게 "오브라이언은 어떤 내기라도 받아들일 정도로 미친 녀석이니 절대 내기하지 마!"라는 도발을 했고, 이에 영국 동료들은 '경기장 끝의 펜스까지 달려간다면 10파운드를 주겠다'는 내기를 걸어 그를 시험했다.

친구들의 부추김으로 인해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자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 것.

▲ 원거리에서 본 난입 순간

동쪽 스탠드 앞을 달리던 오브라이언은 펜스에 도달하기 전에 체포되었고, 경찰은 연행 후 경범죄로 벌금 10파운드를 부과했다. 심지어 그는 다음날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한순간의 객기 때문에 큰 손해를 입었다.

1974년 10파운드는 2022년 현재가치로 약 116파운드에 해당된다.(한화 약 18만 4천 원)

▲ 영국 런던 '트위크넘 스타디움(Twickenham Stadium)'

이렇게 알몸으로 경기장을 달린 자가 곤욕을 치르는 동안 사진작가 이안 브래드쇼(Ian Bradshaw)는 이 순간을 우연히 카메라에 담았고, 이는 그가 촬영한 작품들 중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을 한 나체의 남성이 제복을 입은 경찰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은, 마치 고대로마의 군인들이 예수를 박해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화를 연상시킨다는 평을 받은 것이다.

▲ 역사를 장식한 인물이 된 순간

광고가 나가는 순간이라 TV 생중계는 되지 않았지만 브래드쇼에 의해 박제된 오브라이언의 모습은 세계 35개국 신문에 실렸고, LIFE 매거진으로부터 '올해의 사진'과 월드프레스포토의 사진상을 받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 사건 직후 옷을 입고 경찰과 만난 오브라이언(1974.04.22.)

전혀 계획에 없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흑역사여서인지 마이클 오브라이언은 긴 세월 철저히 언론을 피했다.

그러다 32년 만인 2006년, 이슈가 된 인물들의 근황을 보는 'Where Are They Now?'라는 호주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시의 일을 후회하고 있으며 어리석은 짓이었다"라고 회고했다. 다행히 그는 사업가로 성공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오브라이언의 중요 부분을 무사히 보호(?)해준 영국 경찰관 브루스 페리(Bruce Perry)도 방송에 초대받았다. 그는 당시의 헬멧을 오브라이언에게 전달하며 "폭도들이 해를 끼칠 수도 있었고 날씨도 매우 쌀쌀했기에 고민 없이 덮어주었다. 게다가 그는 별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물건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라며 웃음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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