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대, 영국의 항구도시 '휘트비(Whitby)' 풍경

사진작가 프랜시스 메도우 서트클리프(Francis Meadow Sutcliffe)는 영국 리즈 헤딩리(Headingley)에서 태어나 화가였던 부친으로부터 카메라를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

1870년에는 노스요크셔 주의 항구도시 휘트비(Whitby)로 가족이 이주하였는데, 1년 후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서 18세에 가장이 되었다. 다행히 그는 이곳에서 성공적인 사진작가가 되었고, 오늘날 휘트비가 낳은 최고의 재능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 프랜시스 메도우 서트클리프(Francis Meadow Sutcliffe, 1853~1941)

특히 서트클리프는 빅토리아 후반기 영국도시의 풍경과 인물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르포르타주(reportage) 장르의 선구자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당시의 거대하고 무거운 카메라 장비로는 스냅사진을 찍거나 몰래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설정된 사진이었다.

아래는 1800년대 후반, 서트클리프가 촬영한 항구도시 휘트비와 주민들의 모습이다.

▲ 1880년대, 휘트비의 웨스트클리프(West Cliff).

▲ 1880년대, 웨스트클리프(West Cliff)에서 본 휘트비 전경.

▲ 1880년대, 휘트비 세인트메리 교회(St. Mary's Church)의 종탑에서 본 부두 전경.

▲ 안개 낀 휘트비 항구.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 1728~1779)이 이곳에서 출항해 호주와 뉴질랜드에 영국인 최초로 상륙했다.

▲ 휘트비 항구로 접안하는 범선.

▲ 1880년대, 휘트비 항구에 정박한 배들.

▲ 휘트비 항구의 선착장.

▲ 고기잡이를 마친 휘트비의 어부들이 어구를 정리하고 있다.

▲ 1887년, 어선에 앉아 놓고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 1885년, 부둣가에 앉아있는 어부들.

▲ 사용한 그물을 수리하는 어부들. 오늘날에도 휘트비는 어업활동을 하고 있지만, 경제활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관광산업으로 변모하였다.

▲ 부둣가에서 생선을 경매하는 모습.

▲ 1885년, 휘트비 농가의 목가적인 풍경.

▲ 1880년대, 밭에서 채소를 수확하는 휘트비의 농민.

▲ 말을 이용해 쟁기로 밭을 갈고 있는 농민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가족.

▲ 부츠를 벗고 젖은 양말을 말리는 남편을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있는 아내가 바라보는 모습.

▲ 1885년, 휘트비 농가의 노부부. 노파는 우유를 짜러 가기 위해 의자와 양동이를 들고 있다.

▲ 휘트니 농가의 출입문에서 한 노파가 손녀와 함께 양모를 실패에 감고 있는 모습.

▲ 1889년, 그물을 들고 포즈를 취한 폴리 스왈로우(Polly Swallow)라는 이름의 여성.

▲ 홍합이 가득 담긴 바구니 옆에서 어구를 정리한 것을 손에 들고 포즈를 취한 리지 앨리스 혹스필드(Lizzie Alice Hawksfield). 휘트비는 예로부터 고래잡이청어낚시로 유명했으며,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어업활동에 참여했다.

▲ 휘트니 해변의 주택가에 여성들이 모여 홍합을 까고 있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여성이 위의 리지 앨리스 혹스필드(Lizzie Alice Hawksfield)와 같은 인물. 홍합은 어부들이 낚시할 때 미끼로 사용했으며, 이를 다듬는 것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리지 앨리스 혹스필드(Lizzie Alice Hawksfield, 1861~1935)의 또 다른 사진. 그녀는 1882년에 휘트비의 캐비닛 제조업자인 존 하틀리 아가(John Hartley Agar)와 결혼했으며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 선착장에서 포즈를 취한 휘트비의 구조대원 헨리 프리먼(Henry Freeman, 1835~1904). 그가 착용하고 있는 것은 코르크 여러 개를 이어 만든 것으로 현대 구명조끼의 초기모델이다.

▲ 휘트비 구명정박물관 외벽에 설치된 헨리 프리먼의 흉상

1861년 2월 9일, 북해를 덮친 폭풍 당시 구명보트를 타고 나간 프리먼은 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던 덕분에 홀로 살아남았다. 그는 사고 후에도 300명 이상의 목숨을 구하였으며, 왕립구명정협회(Royal National Lifeboat Institution, RNLI)로부터 두 번의 은메달을 수상하는 등 구조대원의 전설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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