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 이야기들 (77) 군인 등에 업힌 당나귀
- 타임캡슐/낡은 사진과 신문
- 2022. 10. 2. 23:18
한 군인이 노약자를 보살피듯 조심스럽게 당나귀를 등에 업고 목초지를 지나가고 있는 사진은 과거 전쟁터에서 찍힌 흥미로운 모습으로 온라인을 떠돌고 있다.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2차 대전 중 당나귀를 등에 업고 이동하는 군인. 실은 동물을 사랑하거나 연민 때문이 아니라 당나귀가 조심성 없이 지뢰를 밟으면 군인들도 피해를 볼 수가 있기 때문에 업은 채로 지뢰지대를 지나가고 있는 것'
동물과의 교감에 뭉클했던 마음을 식게 만드는 반전이지만 이 설명이 오히려 사실이 아니다. 사진에 담긴 내용은 보통의 반전패턴과는 달리, 보이는 그대로 동물에 대한 동정심의 발로가 드러난 모습이 맞다.
전쟁 중 발견된 새끼 당나귀
우선 사진이 촬영된 시기는 2차 대전이 아닌 그 후의 시점이다. 군인이 입고 있는 복장이 1940년대의 군복이 아니기 때문. 또한 일렬로 조심스럽게 움직이지 않고 흩어져서 이동하는 군인들의 모습으로 지뢰지대라는 설명도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알제리 전쟁 중이었던 1958년 7월, 프랑스 제13외국군단 준여단(13th Demi-Brigade of the Foreign Legion)의 부대원들은 작전중 탈진한 새끼 당나귀를 발견했다.
병사들은 불쌍한 새끼 당나귀를 데리고 막사로 돌아가기로 결정했고,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진 녀석을 업고 귀환하게 되었다.
이렇게 복귀하는 사진이 종군기자에게 촬영되면서 언론에 의해 기사화되었다.
졸지에 입대(?)하게된 새끼 당나귀는 막사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커다란 눈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새끼 사슴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밤비(Bambi)'라는 사랑스러운 이름까지 붙여졌다.
그 사이 사진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였다. 미국동물학대방지협회(ASPCA)는 새끼 당나귀를 업은 군인에게 감사를 표하는가 하면,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는 제13외국군단 준여단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당나귀를 업은 군인의 이름은 제13외국군단 준여단 측이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하면서 드러나지 않았다. 또 밤비를 실제로 업은 것은 한 명이 아니었고, 여러 명이 교대로 등을 내어주며 부대까지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일년 후, 데일리 미러는 밤비의 근황을 다시 한번 전했다.
짬이 찬 밤비는 어느덧 일병으로 진급해 있었고, 건초 대신 전투식량을 먹으며 부대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누구나 밤비의 사육 담당이었고, 밤비는 기지 내의 어디든지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이후 밤비는 프랑스 군단이 소유한 알제리 씨디벨아베스(Sidi Bel Abbès)의 농장으로 간 것 외에는 정확한 후일담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삭막한 군대에서 병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만큼 평화로운 삶을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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