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굴되던 모습

1907년, 영국의 귀족 조지 허버트 카나본(George Herbert de Carnarvon, 1866~1923)은 이집트 왕들이 묻힌 '왕가의 계곡'을 조사할 이집트 학자들과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 1874~1939)를 고용했다.

이집트 입장에서는 외세에 의한 자국 문화 발굴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겠지만, 하워드 카터 박사는 시대를 앞서간 세심하고 꼼꼼한 기록을 필수로 여기는 유물의 보존과 관리에 큰 명성을 가진 학자였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런 그가 이 작업에 고용된 것은 현재의 이집트나 인류의 입장에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 투탕카멘의 마스크(1925)

하지만 무려 15년간의 조사에도 특별한 업적이 나오지 않자 카나본 경은 '앞으로 몇 달만 발굴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낙담한 카터 원정대는 발굴에 박차를 가한다.

1922년 11월 4일, 카터 박사는 작은 계단 형태가 새겨진 바위를 발견했다. 근처의 흙을 전부 걷어내자 무덤의 입구로 향하는 계단이 드러났고 이에 흥분한 카터 박사는 카나본 경을 급히 호출했다.


3245년 만의 만남

 

1922년 11월 26일, 카터 박사는 촛불을 들고 무덤의 입구를 열었다.

처음에는 무덤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느낌과 촛불의 깜빡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점차 눈이 어둠에 적응해가자 공간의 형태와 동물들의 조각상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이 완전히 어둠에 적응하자 카터 박사는 도처에 번쩍거리는 금들과 마주하게 된다.

▲ 1922년 12월, 천상의 암소(celestial cow) 형태로 장식된 침대와 음식들이 보존된 방의 모습. 카터 박사는 이 방을 '무덤의 홀'이라고 이름 붙였다.

1922년 12월, 사자 모양의 화려한 침대. 옷과 각종 장신구를 보관한 방.

 

1923년, 보물을 실은 보트 모양의 함.

1922년 12월, 도금한 사자 모양의 침대와 보물 상자들.

1922년 12월, 침대 아래 흑단나무와 상아로 만든 의자(39번). 투탕카멘은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의자가 작다.

▲ 1923년, 암소의 형태를 한 메후르트(Mehurt)상과 각종 보물들.

1923년, 무덤 내의 보물 상자들.

1922년 12월, 복잡한 디자인의 꽃병.

1923년 10월, 발굴 작업의 후원자인 카나본 경이 책을 보며 쉬고 있다.

1923년 11월 29일, 카터 박사가 요리하는 조각상을 밖으로 꺼내기 위해 천으로 세심하게 싸고 있다.

 

1923년, 죽은 자들의 신 아누비스(Anubis) 상과 파라오의 내장이 담긴 상자.

1923년 12월 2일, 하워드 카터 박사가 이집트 작업자들과 무덤의 문을 넓히고 있다.

1923년 12월, 관이 있는 매장실. 검은 린넨 천에 금장식으로 '밤하늘의 별'을 형상화했다.

1923년 12월 30일, 하워드 카터 박사가 조심스럽게 린넨 천을 접고 있다.

▲ 1923년 12월, 하워드 카터 박사가 작업자들과 매장실 내의 황금석관 중 하나를 꺼내고 있다.

▲ 1925년 10월, 투탕카멘의 석관을 살펴보는 카터 박사.

 

▲ 1925년 10월, 순금으로 만든 석관에 담긴 젊은 파라오의 미라를 살펴보는 카터 박사.

기원전 1332년에서 1323년까지 이집트를 지배한 젊은 파라오의 무덤 발굴은 세계적인 화젯거리가 되었다. 무엇보다 도굴의 흔적이 전혀 없는 상태와 수많은 보물들은 단숨에 고고학적 발견사의 가장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서두에도 말했듯이 하워드 카터가 이런 무덤을 발견한 것은 인류에게는 행운이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모든 유물을 철저하게 문서화하고 분류하는 작업은 8년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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