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프랑스 노르파드칼레 광산의 '탄광마(Mine Horse)'

1966년 4월, 프랑스 노르파드칼레 광산(Nord-Pas de Calais Mining Basin)에서 광부들과 탄광마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속의 비엔페(Bienfait)라는 이름을 가진 19살의 말은 프랑스의 마지막 탄광마로 남았으며 1969년 임무를 마쳤다.

증기기관이 이미 개발된 시기였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기에 탄광에서 탄차를 실어 나르던 탄광마들은 광산업에서 필수적인 존재였다. 탄광마는 19세기 후반부터 1950년대까지 프랑스, 영국, 미국, 호주 등 석탄 생산 국가에서 널리 사용되다가 컨베이어 벨트 등 전기기관이 도입되면서 사라져 갔다.

1920년 프랑스는 각 광산마다 최소 500마리의 탄광마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1926년에는 총 10,000마리의 탄광마가 활동할 정도로 정점을 이루다가 1960년대에는 130마리로 줄어들었다.

드넓은 평원을 달리거나 탁 트인 도로를 질주하던 말들을 어두운 갱도에 집어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한번 들어가면 20년은 갱도 내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로 튼튼한 신체와 더불어 온순하고 강력한 인내심을 가진 종이 선호되었다. 흥분한 말들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거세마들이 중용되었다.

또 금속의 레일과 단단한 돌 위를 걸어야 했기 때문에 발굽이 완전히 자란 6살 이상의 말들이 선택되었다. 좁고 낮은 갱도를 가진 광산에서는 말의 크기도 고려 사항 중의 하나였다.

▲ 탄광에 내려갈 말을 준비하는 모습

말을 갱도에 내릴 때에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눈가리개를 하고 발아래에 땅이 없으면 공포를 느끼는 말이 다리를 버둥거려 다치지 않도록 꽁꽁 묶었다. 다리 사이에는 짚단 등을 넣어 충격을 대비했으며 무사히 내려진 말들은 하루 동안 암흑에 대한 적응기간을 거쳐 2~3주간 탄광 작업 훈련을 실시했다.

▲ 말을 리프트에 달아 내리는 모습

탄광에서 말들이 해야 하는 일은 탄차를 끄는 지루한 작업이었으며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먼지, 소음도 큰 스트레스였다. 이로 인해 약 30%의 말들은 좁은 갱도와 스트레스에 적응하지 못해 불과 며칠 뒤에 사망할 정도였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동물학대에 가깝지만, 사실 탄광마들은 여성과 어린이들의 노동력을 대체한 것이었다.

광산에 말이 도입되기 전에는 덩치가 작고 인건비가 저렴한 여성과 어린이들이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던 시기가 있었다.

1842년, 영국의 광산법이 여성과 10세 이하 어린이 고용을 금지하자 광산업자들은 강하고 뒤탈 없는 말들을 갱도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중 셰틀랜드, 데일스 조랑말, 세이블 아일랜드, 웰시 품종은 작고 인내심이 강한 품종들이었다.

▲ 탄광의 마굿간

하지만 말이라고 해서 언제까지고 막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11년에 제정된 영국의 광산법에 따라 말은 광산에 투입하기 전에 4년 이상의 다른 작업을 거쳐야 했다. 또 각 작업마다 말의 허리보다 높은 작업환경을 보장해야 했다. 심지어 이 탄광마들의 건강검진 결과를 정기적으로 제출해야 했는데, 이는 당시 노동자들의 처우와 비교하면 되려 호강하는 것이어서 광산업자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심지어 건초와 옥수수 등 사료와 식수도 엄격하게 관리되었으며 평균 8시간마다 교대 근무가 지켜졌다. 이런 탄광마들은 20살 즈음에 은퇴하였는데 '퇴직 탄광마'들이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시설까지 생겨났을 정도였다.

이런 비교되는 처우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광부들은 탄광마들에게 고마움과 애정을 느꼈다.

탄광마들이 했던 일들은 노동 효과의 증대도 있었지만 삭막한 갱도를 행복하게 만드는 역할도 했던 반려동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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