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으로 떨어진 오렌지 공주 :율리아 티모셴코


세계에서 가장 섹시했던 여성총리



몇해 전, 온라인상에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지도자 라는 타이틀로 우크라이나의 여성 총리 '율리아 티모셴코'가 유명세를 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한국에 방문하면서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는데요



그녀는 이미 2001년 캐나다 신문 ‘더 글로브 앤 메일(The Globe & Mail)’에서 최고의 미인 정치가로 뽑히기도 한 전력이 있습니다.


<일본 만화에도 등장한 티모셴코>



단지 외모뿐만 아니라 에너지 재벌 출신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첫손에 꼽히는 부자에다 여성 총리라는 명예까지 더해지며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구름위를 걷던 율리아 티모셴코는 현재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추락하는 오렌지 공주



잘나가던 그녀가 바닥까지 추락한 것은 2010년 2월 7일의 대통령선거에서 예상치 못한 패배를 하면서부터입니다.

새로운 정권하에서 잠시 총리직에 있던 그녀는 얼마안가 사임하였고, 오렌지 혁명으로 물러났다가 복귀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오렌지 혁명' 정권을 겨냥한 표적수사를 시작합니다.


-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


2004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은 빅토르 유셴코 후보가 낙선하자, 부정선거에 불복하여 율리아 티모셴코는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대 한복판에 있었던 티모셴코는 막아서는 무장 경찰관들에게 꽃을 나눠주는 모습과 미모로 순식간에 ‘혁명의 꽃’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는 오렌지 혁명으로 불리며, 결국 유셴코가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며, 티모셴코는 그 공로로 2005년 1월, 총리로 임명되었습니다.



2011년 9월 27일, 우크라이나 법원은 티모셴코 전(前) 총리가 2009년 국영 에너지기업 나프토가즈(Naftogaz)에  압력을 행사해 러시아에 유리한 계약을 주도록 한 혐의로 기소하여 징역 7년과 벌금 15억 그리브나(한화 약 2003 억원)를 선고합니다. 


현 정부의 말에 의하면 티모셴코의 국내외 이미지제고를 위해 우크라이나는 터무니 없는 가스값을 지불해야 했고 결국 국민들이 큰 세금을 물게 되었다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복역을 마친 이후에도 3년간 공직출마와 취임이 불가하다라는 구형이 내려졌습니다.

이로써 무려 10년간 그녀에 대한 정치계에서의 축출이 이루어졌는데요


<판결문 낭독중에 일어나 기자들을 향해 발언하는 티모셴코 전 총리>



거기에 추가로 정치권에 들어서기도 전인 1990년대에 티모셴코가 에너지 기업인 UESU 의 회장으로 있을 당시 탈루한 세금에 대한 혐의도 고발하는등 그녀의 정치생명을 완전히 끊어버릴 테세입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검찰은 “티모셴코가 16년 전 하원의원이자 사업가인 예프헨 셰르반 부부를 청부살해한 것을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 며 살인 혐의를 추가할 방침임을 밝혔습니다.



이 판결에 대해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구진영은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국제사회가 현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부의 `정치 보복`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가운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역시 유죄판결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티모셴코의 즉각적인 석방을 권고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정치 연합 및 자유 무역 예비협정을 체결하려 했던 유럽연합(EU)은 티모셴코에 대한 판결 이후 우크라이나 법원의 선택적 사법 적용을 비난하며 협정 체결을 미루었습니다.


<유로 2012 당시 볼 수 있었던 시위대들>



티모셴코는 이날 공판에서 검찰의 주장이 “어처구니 없는 쇼”라고 비판했으며, 법정 안팎의 티모셴코 지지자 수백여명도 검찰의 기소 내용이 “거짓”이라며 항의 시위를 벌이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티모셴코 측에서는 이번 재판이 2011년 2월 대선에서 근소한 차로 승리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정치적 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004년 대선에서 승리했으나 부정선거 시비 속에 티모셴코와 빅토르 유셴코 전 대통령 등이 주도한 오렌지 혁명으로 쫓겨났던 야누코비치가 티모셴코의 총선, 대선 출마를 막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교도소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웃어보이는 티모셴코>



결국, 티모셴코는 수도 키예프에서 동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동부 도시 하리코프의 교도소로 옮겨져 수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8월, 우크라이나 대법원은 티모센코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확정했습니다.

티모셴코는 지병을 이유로 재판정에 출석하지 않았으며, 변호인단은 프랑스에 있는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선거당시 그녀의 마스코트였던 새끼 백호는 어느새 새끼를 낳았습니다>





수감생활중의 논란


수감생활을 하던 2012년 5월, 교도관들에 의한 폭행의혹으로 다시한번 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교도당국은 티모셴코가 진료와 치료를 거부해 어쩔 수 없이 교도소로 재수감했다고 발표했으나 티모셴코는 교도당국이 애초부터 본인의 동의 절차 없이 강제로 자신을 병원으로 옮겼으며 그 과정에서 교도관들로부터 팔과 복부 등에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티모셴코는 심지어 교도관이 배를 주먹으로 때려 심한 통증 때문에 한동안 의식을 잃고 기절했었다고 주장하며 검찰에 교도관들의 불법행위를 조사해 줄 것을 요구하며 배와 팔 등에 생긴 멍을 폭행의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폭행당한 부위를 보이는 티모셴코>



하지만 사건을 조사한 검찰은 이날 티모셴코의 폭행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단서들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법의학 전문가들의 1차 감정 결과 티모셴코가 교도관들의 폭행으로 생겼다고 주장하는 복부의 멍은 주먹으로 때려 형성된 것이 아니라 둔중한 물체에 눌렸거나 그러한 물체에 부딪혔을 때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항의해 체코의 바츨라프 클라우스(Vaclav Klaus)대통령과 요아힘 가우크(Joachim Gauck)독일 대통령은 중부유럽 정상회의 (Meeting of the Presidents of Central European States) 불참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 공보실장은 "체코와 독일 대통령은 애초부터 회의에 참석할 계획이 없었다" 고 일축하며 국가간의 갈등도 일어났습니다.

결국 우크라이나에서 열릴 예정이던 중부 유럽 정상회의는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 등 10개국 정상이 티모셴코 탄압에 항의해 불참하는 바람에 회의가 무산되었습니다.



이후에도 티모셴코의 변호를 맡은 우크라이나 의회 의원 세르게이 블라센코는 "감방에 설치된 카메라가 24시간 내내 내부를 감시하며 카메라에는 조명도 달려 있다"며 "티모셴코가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고 항의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병원으로 옮긴 이후에도 24시간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치료 과정의 상당 부분이 완전히 옷을 벗은 상태에서 이뤄지는데 몰래 카메라로 이같은 치료 장면을 촬영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티모셴코는 그러면서 최근 인터넷에 실린 자신의 모습이 담긴 하리코프 병원 동영상이 짜집기가 아니라 진짜라고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반 페르부쉬킨 교도소장은 이같은 비판에 대해 "감시 카메라는 적법한 것이며 카메라 작동을 위해서는 감방에 충분히 밝은 조명이 필요하다"며 "수감자에 대한 지속적 감시는 수감자의 불법적 행동을 차단하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정치계에 입문한 딸 '예브게니아'



한편, 평범하게 지내던 그의 딸 예브게니아는 옥중투쟁을 벌이는 어머니의 상황을 외부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서방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요 


14세에 영국으로 유학가 런던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한 예브게니아는 어머니가 총리에 오른 뒤에도 모국의 정치권과 엮이지 않으려고 애를 써 왔습니다. 2005년 영국의 록 가수 션 카와 결혼한 다음에는 남편의 성을 따랐지만, 몇년 전 이혼한 뒤로 예브게니아 티모셴코 라는 이름을 다시 찾습니다.


<전 남편 션 카, 인터뷰에서 "장모는 선거참패 후 정신이 이상해졌다" 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구명운동에서 큰 지지를 이끌어낸 예브게니아는 "정치인이 되지 않겠다"는 본인의 뜻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야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한 번도 공직을 맡은 적이 없는 예브게니아를 '우크라이나 야권의 구심점'으로 지목하기도 하였습니다.






혼란에 빠진 우크라이나


대외적으로는 유럽 각국에서 지난 유로 2012 대회의 보이콧 위협이 난무했으며, 여러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수반에 대한 홀대가 이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또, 우크라이나 국내에서도 다툼은 계속되어 얼마전인 2012년 12월 13일, 우크라이나 의회의 개원식은 의원들의 폭력 난투극으로 얼룩졌습니다.


<왠지 낯설지 않은 모습>



율리아 티모셴코 전(前) 총리가 당수인 제1야당 바티키브쉬나(조국당)의 의원들은 투옥중인 그녀의 석방을 요구하며 그녀의 사진과 스티커를 붙인 검은 스웨터를 입고 나타났습니다. 곧이어 여야 의원들 간에 격렬한 몸싸움이 시작됐고 서로 멱살잡이를 하는 모습이 연출되면서 의회 안과 밖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 12월 15일 발생했습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우크라이나 하리코프의 아파트에서 한 판사와 그의 아내, 아들과 며느리 등 4명이 목이 잘린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전했습니다.


<사건 현장 보도 화면>


하리코프 내무부의 대변인은 살인이 15일 아침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으며 시신들의 머리는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고, 부검결과 아들은 아직도 숨이 붙어있는 상태에서 목이 잘린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습니다

모든 시신에는 폭행의 흔적이 있었으며 머리에 총을 쏴 살해했기때문에 총탄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머리를 없앤것으로 추정된다고도 합니다


<살해된 블라디미르 트로피보프 판사>



문제는 살인에 어떤 동기도 없어보인다는 점입니다

없어진 물건도 없고 상속문제나 원한을 살만한 사람도 없는데다가 아무리 원한을 샀다 하더라도 가족을 모두를, 거기다가 참수까지 하고 머리를 감추었다는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검찰에 따르면 범인은 우크라이나의 사법부가 휴일인 15일을 택했다는 점과 참수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도구가 필요한 점으로 볼때 계획적인 살인은 명확하다고 합니다


검찰은 티모셴코 판결에 대한 불만을 가진 사람이 불특정 판사를 노렸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하리코프는 수감된 율리아 티모셴코 전(前) 총리가 재판을 받았던 곳입니다





율리아 티모셴코의 인생역정




율리아 티모셴코는 1960년 11월 27일, 결손 가정에서 태어나 맨손으로 총리의 자리까지 올라 인생역전을 이룬 자수성가형 여성입니다

3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떠나는 바람에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하였는데요



19살이 되던해에 구소련의 중산 공무원인 올렉산더 티모센코와 결혼했으며, 이후 청년 공산당에 가입하고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기성복 제조, 미용 협동조합을 설립해 사업가로서의 자질을 보였고 , 페레스트로이카 열풍 속에 1988년 비디오 대여점을 차립니다


소련 붕괴 후 대여점을 대형 체인으로 키워 내며 사업 수완을 발휘했고, 1995~1997년 국영 연합에너지시스템 사장을 지내며 많은 재산을 모았고 이 사업으로 번 돈은 그녀가 정치계에 진출하는데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후 사업가 티모센코는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중개업을 독점하면서 우크라이나 재벌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런 이유로 '오렌지 공주', '우크라이나의 잔다르크' 라는 별명을 얻기전 티모셴코의 또 다른 별명은 ‘가스 공주’ 기도 하였습니다



1996년에는 90%가 넘는 지지율로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으며, 1년 후에는 에너지 부총리를 역임하며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업들의 비리를 개혁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 덕에 정부와 에너지 기업들의 사이가 벌어져 그는 파면을 당하지만, 오히려 파면 사건을 계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면서 자신의 개혁당을 만들고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2002년 율리야 티모셴코 블록을 창당,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며 멋지게 재기에 성공합니다




율리아 티모셴코 블록(우크라이나어: Блок Наша Україна, Our Ukraine)은 개혁적인 진보와 자유주의 세력을 아우르는 우크라이나 '중도 좌'의 정당으로 진한 빨강색이 상징색이며, 사랑을 뜻하는 심장마크가 이 정파의 상징입니다



이후 위에나온 오렌지 혁명으로 야권의 지도자로 부상하며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헤어스타일은 10여년전 기자회견장에서 언론인들이 과거 탈세 루머등을 지적하자 머리를 묶으며 "누구나 변할 수 있다" 고 어필하면서부터입니다



이처럼 티모셴코 총리는 화려한 외모와 언변, 그리고 뛰어난 능력도 인정받아 지지층도 많습니다만, 계속된 우크라이나의 정치, 경제적 불안으로 현직에 있을때 총리직을 비판하는 여론도 많았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여성단체 FEMEN의 누드 시위로 유명한 곳인데요
러시아와의 가스계약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을 당시 FEMEN의 활동가들이 티모셴코를 풍자하는 시위를 한 것을 보면 그녀의 혐의가 전혀 사실무근은 아닌것 같기도 합니다

<티모셴코의 헤어스타일과 복장을 하고 그녀를 비판하는 퍼포먼스중인 FEMEN>


또, 감옥에 있을 당시 같은 감방 죄수의 언론 인터뷰가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요
러시아 온라인신문 뉴스루(NEWSru)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 4월까지 티모셴코 전 총리와 같은 감방에서 생활했던 여죄수 율리야 아바프로바는 자국 민영통신 'UNN'과의 인터뷰에서 티모셴코가 아프지도 않으면서 지병이 있는 것처럼 꾀병을 부리고 감방에서도 일반인들은 먹어보지도 못하는 음식들을 먹으며 지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녀는 "티모셴코와 같이 지내는 동안 나는 감방 청소를 하거나 목욕물을 받았고, 음식을 만드는 등 하녀 노릇을 했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또, 허리디스크로 앉아있지도 못한다는 티모셴코의 주장은 완전한 연극이라며 "그녀는 욕실 의자에 앉아 물을 담은 플라스틱 물병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운동까지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한때 글로벌 아이콘으로까지 떠올랐던 율리아 티모셴코는 정적(政敵) 싸움에서 밀려 사실과 거짓이 섞인 혼돈속에 서서히 잊혀져가는 느낌입니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