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안타까운 소매치기 처녀와의 러브스토리

 

처녀 소매치기 선도 '러브스토리'
순간적 도벽 재발로 파탄 위기에
생후 두달 아들 안고 보호실 생활
"왜 다시 이런 짓을" 자책의 눈물
남편 "한번 더 기회를..." 군 복무 때 죄수로 만나

 

"설이 엄마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소매치기 전과 7범의 국졸 여죄수를 사랑,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20대 학사출신 남편이 백화점에서 순간적인 충동을 못 이겨 소매치기를 하다 구속된 부인에 대해 대신 처벌이라도 받겠다며 눈물로 법의 온정을 호소하고 있다.


11일 서울 남대문 경찰서 형사계 보호실 앞에서 하루 전 소매치기 혐의로 구속된 강모 여인의 남편 정모씨(26, 대구시 동구)가 생후 2개월 된 아들을 포대기에 싸 안은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부인 강씨는 지난 10일 하오 2시쯤 서울 이모 댁에 다니러 서울에 올라왔다 아이 기저귀를 사기 위해 서울 롯데 백화점에 들어갔다. 이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매장으로 올라가던 강씨가 옆에 있던 20대 여인의 핸드백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순간적인 충동으로 지갑을 빼낸 것이다.
2년 반 동안 잠자던 도벽이 재발된 강씨는 또 6층 의류매장에서 옷을 고르고 있던 아낙네의 손지갑을 빼내다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한 번만 이 짓을 더하면 애기 아빠가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했는데... 내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강씨는 철창 안에서도 남편 볼 면목조차 없다며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삼켰다.

 

[도벽으로 경찰에 체포된 강모씨]

남편 정씨가 부인을 만난 것은 지난 89년 봄 대전 ㅊ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정씨가 천안교도소의 경비교도대에서 군 복무 중일 때였다. 행정병으로 근무하던 정씨는 소매치기로 2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던 강씨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비록 국민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죄를 지은 그녀였지만 성실한 수감생활과 착한 심성에 마음이 끌렸다.
그 후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 교도관 몰래 용돈을 쪼개 영치금을 넣어줬고 때로는 책을 넣어주며 삶에 대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지난 90년 3월 23일 그녀가 2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감한 다음날 정씨는 대전 교외의 한 성당에서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전과자와 한집에 살 수 없다"는 부모의 냉대에 못이겨 대구로 내려갔다.
훌륭하게 가정을 일군 뒤 부모를 찾겠다는 결심을 한 정씨는 과외교사를 하며 집안을 일구기 시작, 지난 9월에는 아들 설이를 얻는 행복을 만끽하기도 했다.

사건이 터지자 정씨는 담당 검사와 판사를 찾아다니며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지만 그녀의 전과사실 때문에 정상참작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답변이었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철창에 갇힌 모자를 바라보다 12일 상오 전세금을 빼내 변호사 수임료를 마련하기 위해 대구로 향하는 남편 정씨의 발걸음은 더없이 무거웠다.

1991년 11월 13일》

 

[1991년 11월 13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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