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구월산에서 발견된 4000년 전 단군상

매일신보 1927년 1월 18일 자에는 무려 4,000년 된 단군상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1927년이 단기 4260년이니 거의 고조선 건국 초기에 만들어진 셈이다.

심지어 단군상의 재질은 중국 낙양에서 가지고 온 '황토'였다는데, 석재나 청동으로 만들어도 그 긴 세월을 버티기 어려운 마당에 자연스레 가짜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발견된 황토 단군상》

● 단군상 발견기사

- 4천 년 된 단군상 구월산중에서 발견
- 단군의 성상을 찾아낸 단군교, 대성전을 세우고자 총회를 연다.
- 대성전 기성회 발기(大聖殿期成會發起)

지금으로부터 사천 년 전 태백산 아래 단목(檀木, 박달나무)에서 탄생하사 조선민족 시초의 군주가 되시고, 백곡을 품어 백성을 먹이고 목축을 길러 사람을 살찌게 하시며 예악(禮樂)을 창제하여 사람의 도리를 알리신 단군을 봉양하자는 것으로 교주 정훈모 씨가 단군교를 창립한 지 이미 이십 성상(20년)이 지났다.

예전부터 기자(箕子)께서 동쪽으로 오신 이래로 중국의 낙양 황토를 가지고 오시어 특히 단군의 성상을 만드사 황해도 구월산속 석굴에 봉안하였다는 사적이 있음으로 전기 교주와 교도들이 그것을 봉영(奉迎)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지난 을축년에 이르러 구월산 석굴의 지점이 교주의 꿈에 나타나 마침내 그것을 찾아내 시내 다옥정 3번지의 단군교 경성 교당에 추봉하였다.

이제 교도들은 경성에 단군 천조 대성전 기성회를 조직하여 금 18일 오후 2시에 다옥정(현재 서울 중구 다동) 본부에서 발기회를 거행하여 성상을 영구히 봉안할 곳을 세우려 한다더라.

《1927년 1월 18일》

 

위 기사의 단군교는 구한말인 1909년 1월 15일에 창립된 종교로, 1910년 한일 병합조약이 이루어지자 그해 8월에 만주로 교단을 옮기고 대종교로 명칭을 바꾼다. 이때 창립멤버 중 한 명이었던 정훈모(鄭薰謨)는 단군교의 이름을 고수한다는 명분으로 분파해나가며 교주가 되었다.

 

《정훈모(1868~1943)》

어딘가 어설픈 「4천 년 된 황토 단군상」의 발견은 막 생겨난 종교인 단군교를 민족종교로 끌어올리고자 했던 교주의 구심점 찾기의 일환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조선총독부의 공인을 받아 활발한 포교활동을 벌이던 단군교는 점차 일제의 소수종교탄압으로 교세가 약화되며 1936년 사라졌다.

 

References:
- [每日申報] 구월산서 발견한 단군성상(1927.1.18)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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