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공식 여성 마라토너 '캐서린 스위처(Kathrine Switzer)'


- 마라톤의 기원



마라톤은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전인 기원전 490년,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라는 전령이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40km나 되는 거리를 달려 승전보를 전하고 죽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896년 재 1회 올림픽 대회부터 정식종목이 된 마라톤의 우승자는 당시에는 원하는것을 모두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여타 종목들의 우승자들과는 그 격이 달랐습니다

현재는 당시와는 달리 엄청난 시청률과 인기를 자랑하는 스포츠는 아니지만, 지금도 올림픽 대회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상싱적인 스포츠인 것은 여전합니다


<제 1회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spiros louis>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마라톤이지만 여성이 공식적으로 마라톤 경기에 참가할 수 있게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여성은 애초에 신체적으로 40km를 달릴 수 있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마라톤 같은 운동은 생식기관에 심각한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지만, 고대 전쟁을 상징하는 존재로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싶어요"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4월의 세번째 월요일에 개최하는 대회로 1897년 미국 독립전쟁의 시작을 기념하는 매사추세츠(州)의 전통적인 축제입니다


시라큐스(syracuse)대학의 학생이었던 캐서린 스위처(Kathrine Switzer) 1966년, 학교 신문에 기사를 쓰기위해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취재하다가 '번외 코스' 즉, 비공식적으로 대회에 참가한 여성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로베르타 깁(Roberta gibb)'이라는 이 여성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Bobbi gibb'이라는 가명으로 접수를 했으며 가발을 쓰고 스웨터를 껴입었으며 남성 마라토너들이 모두 출발한 뒤 나무 뒤에 숨어있다가 뒤늦게 출발했습니다


<로베르타 깁(Roberta gibb)>


스위처는 그녀의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심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후 대학의 크로스컨트리(cross-country)에 가입하지만 팀원들은 그녀가 치어리더로 가입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위처는 훈련에 엄청난 열정을 보였고 결국 크로스컨트리 팀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함께 훈련을 허용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인생에서 부모님 외에 가장 영향력을 준' 어니 브릭스(Arnie Briggs) 코치를 만나게 됩니다


 <캐서린 스위처(1947년 1월 5일생)>



어느날 스위처는 코치에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요" 라고 말합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브릭스 코치에게서는 "여자는 못해" 라는 답변이 곧바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끈질긴 집념에 코치는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42.195km의 풀코스를 뛴다면 보스턴에 데려가겠다' 라고.

스위처는 42km에 8km를 더해 총 50km를 뛰며 '여자도 뛸수 있다' 라는것을 증명해 내고야 맙니다





- 세상을 바꾼 사진



보스턴 마라톤대회의 참가 신청서에는 성별란이 없었습니다

당시 아마추어 체육연합(AAU)의 규칙에는 여성의 경기참가에 대한 특별한 제제 항목이 없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여성은 참가할 일이 없을테니' 서류에 인쇄할 생각도 하지 않았던 셈입니다

AAU는 스위처의 공식경기 참여사건 후 곧바로 남자선수들의 경기에 여성의 참가를 금지하는 규정을 삽입합니다


1967년, 캐서린 스위처는 'KV 스위처'라는 이름으로 참가신청을 합니다 

얼핏 남자이름처럼 느껴졌기에 서류접수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번호표는 코치가 대신 받아왔습니다

그녀가 출발선에 서자 주변의 남자들이 술렁거렸습니다

스위처는 머리도 길었고 귀걸이도 착용했으며 어떤 변장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몇 Km쯤 달렸을때 기자들이 눈치를 챘고 언론사의 트럭들이 그녀의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챈 레이스 감독관 조크 샘플(Jock sample)은 그녀를 쫓아가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Get the hell out of my race and give me that race number!" 

(번호표 내놓고 당장 레이스에서 꺼져!)


당시 48kg으로 매우 가벼웠던 스위처는 그에게 상의를 잡혔을때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남자친구 토마스 밀러가 어깨로 감독관을 밀어서 날려버리고 그녀를 향해 외쳤습니다


 "Run like hell!!"

(힘껏 뛰어!)


마치 스위처뿐만이 아닌 모든 여성들에게 외치는 말처럼 말이죠



<라이프(LIFE)지가 선정한 '세상을 바꾼 100장의 사진' 중의 하나인 바로 그 장면>



그녀는 살아오면서 여성차별을 전혀 체감하지 못했고 페미니즘 운동을 들여다 본적도 없었지만, 그 순간 완주하지 못하면 '역시 여성은 할 수 없다' 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것이라는 오기로 끝까지 달렸습니다

결국 완주에 성공했지만 그녀의 기록은 4시간 20분에 그쳤습니다

이후 그녀는 1974년 뉴욕마라톤에서 우승하고 1975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51분 37초(당시 세계 6번째 기록)까지 기록을 단축하지만, 가장 큰 감동과 파장을 일으켰던 것은 바로 그 '4시간 20분의 레이스' 였습니다


대회종료 후 그녀는 규정(?)에 의해 실격되었습니다 (여성에게 금지된 코스 참가, 완주, 제3자의 도움) 

여성의 첫 공식대회 참가라는 선례를 막아야했던 주최측은 가명을 사용한 부정 참가라고 주장했지만 그녀가 사용한 'KV Switzer' 라는 서명은 평소 기사에도 사용하던 필명이었기에 '최초의 공식대회에 참가한 여성 마라토너' 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꿈이었던 그녀는 TS Eliot, JD Sallinger 같은 유명작가들을 따라한 것이라고 합니다)



위에 나왔던 로베르타 깁스 외에도 메리 레퍼(mary lepper) 바이올렛 퍼시(Violet percy), 밀드레드 샘슨(Mildred Sampson)같은 캐서린 스위처 이전의 여성 마라토너들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가명을 사용하거나 혹은 변장하는 경우때문에 공식적인 참가로 인정받지 못했고, 남성 마라토너들보다 1시간 이상 떨어지는 기록들때문에 되려 '역시 여성에게 마라톤은 위험하다' 라는 증명자료(?) 가 되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캐서린 스위처 역시 보스턴대회에서의 기록은 좋지 않았지만, 사진의 힘이 그녀를 선구자로 만든셈입니다



이후 그녀는 뮌헨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그리스 육상연맹에 청원을 하지만 거부당합니다

하지만, 사진의 파장은 너무나 커서 이 논란은 순식간에 확대되었고 여성 인권운동가들의 자극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결국 1972년 여성 마라톤은 공식경쟁부문으로 생겨나고 1984년 LA올림픽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었습니다


<1973년, 공식적으로 참가하게된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조크 샘플과도 화해했습니다>



현재 그녀가 참가했던 보스턴 마라톤은 11,000명 이상의 여성들이 참가해서 경쟁하고 있으며, 캐서린 스위처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와 올림픽에 여성마라톤을 만들어낸 원동력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캐서린 스위처 여사는 현재도 여전히 마라톤 풀코스 대회에 참가중이며 70세가 되는 2017년에는 자신이 세상을 바꾼 해의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다시 한번 보스턴 국제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저는 운이 좋았어요. 부모님과 코치님은 항상 인형놀이나 치어리더가 아닌 직접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고 하셨죠. 물론 인형놀이나 예쁜 옷도 좋아하지만 난 등산이나 스포츠를 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어요. 보스턴에서의 경험 후, '할 수 있다' 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자란 여성들이 수백만명이 넘게 있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건 자신을 믿고 한단계씩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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