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정리 BesTan | 2022. 6. 12. 23:00
게시글 이전하였습니다. 1934년, '나치 독일의 2인자'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 저택 | earthwow.org 당시 그는 스페인 내전과 나치정권이 독일에서 득세하는 시기의 모습을 담았다. 아래의 사진은 1934년경, '독일 제3제국의 이인자'로 불렸던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의 베를린 저택을 방문해 earthwow.org
카테고리 : 정리 BesTan | 2022. 5. 18. 23:10
라이프치히(Leipzig)는 독일 동부 작센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대도시(2021년 기준: 605,407명)로 독일 전체에서도 8위의 규모이다. 동독지역만을 놓고 따지면 베를린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곳. 신성로마제국 시대부터 무역도시로 번성하며 유럽의 경제, 문화적 중심지로 여겨져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하에 있다 보니 쇠퇴하였지만, 통일이 된 현재는 독일 내에서 삶의 질(QOL)이 가장 높은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아래의 사진들은 동독 시절인 1978년 라이프치히의 일상을 담고 있으며, 그해 가을에 열린 박람회의 모습도 볼 수 있다. ▲ 1978년 9월 4일, 라이프치히 가을박람회(Leipziger Herbstmesse)를 방문하는 사람들. 라이프치히 박람회(Leipziger ..
카테고리 : 정리 BesTan | 2022. 1. 30. 22:08
짧은 세월 중부유럽의 강국으로 존재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Österreichisch-Ungarische Monarchie)은 1867년 5월 29일에 성립된 연합체였으며,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1918년 10월 31일 사실상 해체되었고 1919년 9월 10일 생제르맹 조약으로 완전히 소멸되었다. 이후 헝가리 왕국,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을 비롯해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폴란드 제2공화국, 유고슬라비아 등이 세워졌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체코 프라하를 지나는 블타바 강(Vltava)의 풍경. 길이 446km로 오늘날 체코에서 가장 긴 강이다. ▲ 프라하 중심부 블타바 강 유역의 오피스(Opyš) 언덕 위에 있는 프라하 성(Pražský hrad). 길이 570m, 너비 128m로 ..
카테고리 : 정리 BesTan | 2022. 1. 5. 22:31
독일의 영화감독이었던 에리히 엥겔(Erich Engel)은 나치의 선전영화를 제작하는 것을 피하고자 코미디 영화를 주로 제작하였다. 에리히 엥겔이 1935년 오스트리아에서 제작한 '누르 에인 코뫼디안트(...nur ein Komödiant)'에는 폭정에 저항하는 농민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군 장교가 거부하는 내용이 담겨있으며, 이를 통해 나치의 전체주의와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그의 사상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아래는 1939년 에리히 엥겔 감독이 촬영한 2차 대전 개전 전후의 독일이다. 전체주의가 휩쓸고 있던 독일이지만 그가 촬영한 사진 속에는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는 '개인'의 자유로운 모습이 주로 담겨있다. 아마도 그가 보고 싶었던 조국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낸 것은 아니었을까. ▲ 베를린 바이센제(Wei..
카테고리 : 정리 BesTan | 2021. 12. 3. 23:50
게시글 이전하였습니다. 2차 대전 막바지, 독일 뎀민(Demmin)의 집단자살 미스터리 | earthwow.org 추정에 따르면 1945년 4월 30일부터 5월 4일까지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 1200~25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당시 뎀민인구가 약 15,000~16,000명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평균 7명 중 1명이라는 엄청 earthwow.org
카테고리 : 정리 BesTan | 2021. 11. 29. 23:33
아래의 사진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신호탄으로 불리는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 당시의 모습이다. 얼마 후인 9월 17일에는 소련도 독·소 불가침 조약에 따라 동유럽의 합의된 지역을 분할받기 위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불과 한 달 만인 10월 6일에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의 수중에 넘어가며 전쟁은 종료되었다. 이후 독일은 점령지 폴란드의 지식층을 살해하였고, 소련역시 약 150만 명의 민간인을 트럭에 실어 집단수용소로 보내며 폴란드를 유린했다. ▲ 1939년 9월 8일, 폴란드 방어군이 야스워(Jasło)시의 다리에서 겨자폭탄을 폭발시킨 현장. 이 공격으로 독일군 2명이 전사하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다. ▲ 가까이에서 본 겨자폭탄 폭발 현장. ▲ 1939년 9월 13일, 폴란드 그디니아(G..
카테고리 : 정리 BesTan | 2021. 11. 25. 23:18
해외 출국의 필수품인 여권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사진은 규정이 꽤나 까다로워서 사진에 미소를 짓는 것도 허용되지 않을 정도이다. (외교부 여권안내 홈페이지) 이는 한국 정부만의 방침이 아니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정한 기준. 하지만 100여 년 전에 발행된 여권 속에 지금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사진이 있다. 위의 여권사진은 유럽 최고의 가문으로 존재했던 독일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Saxe-Coburg and Gotha)에서 1915년 1월 1일 발행된 것인데 한 젊은 여성이 그의 애견과 함께 찍은 사진을 여권 증명사진으로 쓰고 있는 모습이다. 이 유물은 여권 수집가 톰 토폴(Tom Topol)의 소장품으로 그는 '오래된 여권은 다채로운 도장과 아름다운 손글씨가 적힌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하며 다..
카테고리 : 정리 BesTan | 2021. 11. 5. 23:12
오스트리아는 1938년 제3제국(나치 독일)과의 '안슐루스(Anschluss, 병합)'이후 2차 대전 종전까지 독일국의 일부였다. 그런 이유로 한때 전범국 취급을 받기도 하였으나 1943년 10월 모스크바 선언을 통해 독일에 의한 피해국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이는 오늘날까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합병 당시 오스트리아의 인구는 제3제국의 8%에 불과했지만 나치 SS특무부대원 중 오스트리아 출신은 13%, 강제수용소의 오스트리아 직원도 40%에 달하는 등 '희생자'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했기 때문. 독일과의 합병이 종전 후에 무효가 되자 오스트리아는 연합군에 의해 1955년까지 분할 점령당하는 시기를 거쳐 현재는 영세중립국으로 남아있다. 아래의 사진은 오스트리아의 연합군 군정기(1945~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