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타임캡슐/낡은 사진과 신문 BesTan | 2022. 3. 8. 23:54
윤치오(尹致旿, 1869~1950)는 일제로부터 작위나 공직을 받거나 은사금을 받은 기록이 없어서 친일인사로 분류되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아내 윤고라(尹高羅, 1891~1913)는 부친 김윤정(金潤晶)이 일제에 적극 협력한 친일파로 기록되어있다. 일전의 포스팅에서 다룬 적이 있는데, 이들은 국내 최초로 공개구혼을 통해 결혼한 부부이기도 하다. - 관련 글: 윤치오의 국내 최초 공개구혼 광고 둘 사이에는 딸 윤정선(尹晶善, 1909~)이 유일한 자녀였다. 윤정선은 1926년 17세로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京城女子高等普通學敎) 3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며, '노래(창가)를 잘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단순히 잘 부른 정도가 아니라 매우 특출 났는지 1925년 일본 황족이 경성을 방문했을 때 앞에서 독창을 했을..
카테고리 : 타임캡슐/낡은 사진과 신문 BesTan | 2022. 3. 3. 21:28
대한제국 학부(현재의 교육부와 비슷한 관청) 학무국장이었던 윤치오(尹致旿, 1869~1950)는 부인 이숙경(李淑卿, 1869~1907)과 1907년 1월 26일 사별하고, 그해 말에 신문을 통해 재혼할 상대를 찾는 광고를 내걸었다. 사실 윤치오의 위치 정도로 보면 재혼상대는 명문가의 딸들 중에 적당한 인물을 조용히 선택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교육의 일선에 있는 학무국장답게 공정하고 객관적인 공개구혼을 통한 모범적인 태도를 보이려 했던 것 같다. 명문가끼리의 결혼에 자유연애관이 끼어들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시대를 감안하면 조금이라도 열린 면접(?)이었던 셈이다. 아래는 공개구혼 광고를 한 뒤 반응을 알리는 기사이다. - 여자들의 청혼(女徒請婚, 여도청혼) 학부 학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