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타임캡슐/옛 집터 BesTan | 2022. 3. 2. 23:57
3.1 운동이 일어났던 해인 1919년 8월 25일 정오,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93번지에 있던 한상룡(韓相龍, 1880~1947)의 저택에서 한상룡 부부의 주최로 오찬회가 열렸다. 이날 오찬회는 조선인 유학생들을 위하여 가정형 기숙사를 경영하는 히라오카 키치코(平岡喜知子) 여사와 중앙신문 여성기자 미야자키 사유리(宮崎小百合) 여사가 호스트. 손님으로는 이재완(李載完) 후작부인, 이완용(李完用) 백작부인, 한창수(韓昌洙) 남작부인, 이달용(李達鎔)의 부인 등 당대의 귀부인들이 초대되었다. 오찬회의 요리는 조선식으로 나왔으며, 일제는 조선귀족 부인들과 일본인 여류자선가들이 사이좋게 어울리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그해 독립운동의 여파를 희석하고 내선(內鮮)인들 사이의 화합을 도모하고 있었다. ■ ..
카테고리 : 타임캡슐/낡은 사진과 신문 BesTan | 2021. 12. 18. 23:55
박부양(朴富陽, 1905~1974)은 을사오적 중의 한 명인 박제순(朴齊純)의 아들로 부친의 사망 이후 자작 작위를 물려받았다. 그때가 1916년이니 박부양의 나이 불과 12세였다. 1921년 5월 7일에는 모친 대구 서씨가 사망하면서 그는 17세의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이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조선귀족으로써 자작의 지위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조선귀족들이 몰락하는 가운데서도 5만 원 이상의 재산을 물려받아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약관의 나이에 모든 것을 다 가진 박부양은 이 시기 '청년 자작'으로 불리며 여러 건의 사건사고를 일으켰다. ■ 사고뭉치 청년귀족, 박부양 - 1925년 5월 17일 오후 4시 20분경, 박부양은 자동자전차(오토바이) 뒷..
카테고리 : 타임캡슐/낡은 사진과 신문 BesTan | 2021. 12. 15. 23:51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합하는데 큰 협력을 한 공신들은 일본 황실로부터 작위를 받아 '조선귀족(朝鮮貴族)'이 되었다. 기고만장한 조선의 귀족들은 재산을 노름, 축첩, 유흥, 미두시장 등에 흥청망청 탕진하면서 극빈층으로 몰락하는 부류도 등장했다. 결국 일제는 자신들에게 협력한 귀족들이 파산해 비참한 생활을 하는 모습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1927년 2월 10일 '조선귀족세습재산령'을 제정했다. 이는 조선귀족들의 재산중 일부분의 매매를 금지하고 강제로 세습을 시행해 가문이 완전히 몰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보호장치였다. 하지만 이 법에 해당되어 '세습재산으로 묶일 가산조차 이미 탕진'해버린 귀족들이 너무나 많았다. 물론 그들 중에는 천만장자와 백만장자로 불리는 거부도 있었으나 문제되는 부류들은 거의 굶다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