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타임캡슐/낡은 사진과 신문 BesTan | 2021. 7. 16. 23:58
1940년 6월 1일, 월간지 가데이노도모(家庭の友) 32호에서는 사람의 홍수로 붐비는 서울(경성)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 설명 속에는 도시집중현상이 일어나 서울이 펄펄 끓는 도시가 되었으며, 여기에 더해 사쿠라(벚꽃)철이나 전람회 등에 사람들이 돈을 펑펑 쓰는 모습을 '악습'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였다. 당시 서울의 인구는 백만 명에 근접함에 따라 기차역, 백화점, 유원지, 극장, 운동장, 주점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넘쳤고, 입장권이 필요한 곳이라면 줄이 길게 늘어서서 돈을 주고도 못 들어가는 광경이 소개되었다. ● 창경원(창경궁) 일제시대 창경원에는 수천 그루의 벚꽃이 심어져 방문객들로 넘쳐났다. 특히 1918년부터 매년 봄철(3월~4월)이면 휴무없이 야간에도 개장을 해서 서울 사람은 물론이고 지..
카테고리 : 타임캡슐/낡은 사진과 신문 BesTan | 2021. 5. 23. 11:26
일제시대에 기차로 금강산 유람을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경성역에서 경원선 열차를 타고 철원역에서 하차 후 금강산행 전차로 환승하고 내금강역(內金剛驛)에 내리면 장안사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양양에서 출발하는 동해북부선을 타고 고성을 거쳐 외금강역(外金剛驛)에 내리면 금강산 입구에 도착했다. ‘조선철도 12년 계획(1927~1938)'의 일환으로 1932년 9월 16일에 개통식을 가진 외금강역 역사의 모습은 지금은 사라졌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외금강역 역사의 면적은 200평 정도로 공사비는 4만 원이 책정되었다.(조선일보 1932.05.13.) 외금강역은 강원도 고성군 외금강면 온정리에 속해있어 온정리역으로도 불렸다.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