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빙산과 충돌했다" : 1912년 4월14일 밤


"즉각적인 구조를 요청한다" 


"빙산과 충돌했고, 침몰하고 있다" 


"여자들을 구명정으로 탈출시키고 있다" 


"구조를 재요청한다. 이곳의 날씨는 맑고 청명하다" 


"신호가 희미하다"


아일랜드 해안에서 찍힌 타이타닉의 마지막 모습


가족과의 재회, 연인간의 로맨스, 아메리칸 드림등 이루지 못한 사연들을 간직한 타이타닉호가 침몰한지도 10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이 비극은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는데요

타이타닉 참사와 관련해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 날씨가 너무 좋아서 타이타닉은 침몰했다?


침몰사고의 대부분은 허리케인이나 강풍으로 인한 대형파도가 원인입니다

하지만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 빙산에 충돌한 후 15일 결국 물밑으로 사라졌던 타이타닉의 침몰은 오히려 파도가 잠잠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의 날씨와 바다 상태는 완벽했지만, 타이타닉이 항해하기에는 지나치게(?) 완벽했습니다

당시 바다 상태는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기 때문에 파도가 일어나지 않아 거의 수평에 가까운 바다였다고 합니다

또, 달이 가려져서 육안으로 빙산을 발견하기 어려운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야간 항해 중 달이 없을 때는 파도가 빙산을 발견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바다에서는 밤이 되면 플랑크톤의 일종인 와편모조류(渦鞭毛藻類)들이 해수면으로 올라오는데요

이런 플랑크톤을 포함한 파도들이 빙산에 부딪치면서 나오는 인광(燐光)들은 극도로 어두운 밤바다에서 큰 장애물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와편모조류(渦鞭毛藻類)


하지만 타이타닉이 침몰한 밤의 기상상황은 4월의 북대서양치고는 아주 희귀한 조건들이 모두 갖추어진 운명같은 날이었다고 합니다.


달이 가려졌고,

바람까지 불지 않았고,

파도와 너울조차 발생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빙산에 부딪치는 물결이 발하는 빛도 없었습니다.


이 날을 제외하면 대부분 육안으로도 멀리서 빙산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사고지점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빙산이 가깝다' 라는 경고가 6번이나 알려졌음에도 승무원들이 무시한 것은 당장 눈앞에 빙산이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이날 기상상태가 나빴더라면, 사고 후 구조활동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구조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 타이타닉의 선원들은 육안으로 바다를 감시했다


찰스 라이톨러(오른쪽)


찰스 라이톨러(Charles Lightoller)는 젊은 나이에 이미 베테랑으로 인정받는 선원이었습니다. 13세부터 배를 타기 시작한 그는 타이타닉의 2등 항해사였으며 침몰뒤 살아남은 승무원 중 가장 상급 장교였습니다.

그는 배와 운명을 함께한 스미스 선장과 헨리 와일드 항해사장(부선장)을 대신해 여성과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구명정에 태우는 작업을 이끌었는데, 배가 침몰하면서 발생하는 수류(水流)에 이끌리면서 거대한 기차 2대가 들어갈만한 소용돌이를 아슬아슬하게 몇 센티미터 차이로 피하면서 마지막으로 탈출해 용기있는 승무원으로 칭송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라이톨러는 타이타닉호의 탑승이 최초의 간부임용이었는데요

사실 그가 2등항해사를 맡게 된것은 갑작스러운 결정에 의해서였습니다.

원래 2등항해사였던 데이빗 블레어(David Blair)가 하선을 하게 되면서 스미스 선장은 2등항해사였던 헨리 와일드(Henry Wilde)에게 최고 책임자의 위치를 주었고 3등항해사였던 라이톨러가 2등항해사가 된 것입니다.


갑작스런 간부진의 변화는 타이타닉의 침몰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결과적으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 하면, 전임인 데이빗 블레어가 쌍안경이 들어있는 망대(crow's nest)의 락커 열쇠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은채 내렸기 때입니다


데이빗 블레어가 가지고 내린 열쇠, 경매에서 9만파운드(한화 약 1억5천만원)에 낙찰


결국 승무원들은 누구도 쌍안경을 이용할 수 없게 되었는데,  라이톨러는 뉴욕항에 정박하면 쌍안경을 새로 구입하기로 합니다. 안전을 무시하고 영국 사우스햄튼을 떠난 배는 뉴욕에 닿지도 못한채 수장됩니다.


만약 데이빗 블레어가 쌍안경이 든 락커의 열쇠를 두고 내렸거나, 찰스 라이톨러가 출발하기 전, 혹은 경유지였던 프랑스 쉘부르(Cherbourg)나 아일랜드의 퀸스타운(Queenstown)에서라도 쌍안경을 보급했다면 타이타닉과 수백 명의 운명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늦게 꺼내진 타이타닉의 쌍안경





▶ 명예보다 사람들의 죽음이 가슴 아팠던 일본인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영웅과 비겁자가 태어났습니다.

마지막까지 연주를 계속한 영웅적인 악단 연주자들과 여성들에게 보트를 양보한 신사들은 칭송을 받았으며,

근거리에서 구조신호를 받았지만 동반 침몰의 위험성이 있다며 외면한 캘리포니아호의 선장과, 타이타닉을 소유한 선박회사의 회장이면서도 구명보트에 올라탄 브루스 이즈메이(J. Bruce Ismay)와 같이 비난의 포화를 맞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호소노 마사부미(細野 正文: 1870년~1939년)는 타이타닉에 탑승했던 유일한 일본인이었습니다.

그는 메이지(明治)시대의 철도관료로 러시아에서 2년간의 유학을 끝내고 지인이 있는 영국을 방문후 뉴욕으로 가기위해 타이타닉에 탑승하게 됩니다.


타이타닉이 빙산과 충돌한 그때, 승무원의 외침에 깨어나 구명조끼를 받아든 그는 구명정 근처까지 갔다가 보트가 부족한 것을 보고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운좋게 눈앞의 구명정에 두명이 더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그는 기적처럼 살아남았습니다.


구조 후 미국에 도착했을때 그는 '행운의 일본인'으로 명명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유일한 일본인이라는 것이 불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얼마 후 도쿄에서 발행된 잡지에 그의 이야기가 실리면서 그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잡지에는 영국의 윤리교수 로렌스 비슬리(Lawrence Beasley)가 "사람들을 밀쳐내고 보트에 탄 비열한 일본인이 있었다" 라는 증언이 실려 있었습니다.


"창피한 일본인" 이라는 비난과 함께 그는 직장을 잃었고 언론에 의해 오랫동안 겁쟁이로 비난받습니다.

'일본 남자라면 명예롭게 죽어서 돌아와야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호소노는 평생 비난속에 살면서도 변명 한마디 없이 자식들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남기지 않은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호소노 마사부미의 묘


1997년,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구조 직후 쓰여진 그의 수기가 유족에 의해 공개되었습니다. 타이타닉의 유품회수 작업을 하던 RMS재단은 호소노의 수기와 인양된 다른 승객간의 기록을 대조해 본 결과 로렌스 비슬리(Lawrence Beasley)교수의 구명정에 탑승했던 사람은 중국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사실 호소노가 탑승했던 것으로 추정된 10호 구명정의 승무원의 기록에는 '아르메니아인 남성 2명이 추가로 탑승했다' 라고 증언했기 때문에 그의 존재는 확실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10호 구명정의 아르메니아인이 회고록에서 '일본인과 함께 노를 저었다' 라는 증언을 합니다.

결국 그 증언 덕분에 그는 10호 구명정에 타고 있던 것으로 극적으로 판명되었고 사람들을 밀어냈다고 호소노를 비난했던 로렌스교수는 13호 구명정에 탑승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유족들은 드디어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고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오랜시간 정설로 다루어졌던 오해는 여전히 해난사고 때마다 비겁했던 사례로 꺼내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는 본인이 아니면서도 평생 변명 한마디 하지 않았을까요?

그가 생존의 갈림길에서 남긴 수기로 그 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2등실 승객이었던 나는 승무원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밖으로 나와보니 배가 침몰중이었다

외국인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라는 지시가 들려왔다

긴급구조 조명탄의 파랗고 눈부신 광경에 비명을 지르고 싶은 공포와 절망이 밀려들었다


나는 일본인으로서 비굴하지 않게 의연한 죽음을 맞이해야된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희미한 희망을 빛을 놓을 수가 없었다

타이타닉호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 앉는 것을 각오하면서도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깊은 슬픔에 빠져있었다


그때 구명정의 승무원에게서 "2명 더 탈수 있소! 서두르시오!" 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떤 남자가 보트로 뛰어내리는 것을 본 순간,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는 나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으므로 본능적으로 구명정으로 뛰어들었다

경비 선원의 권총에 맞아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타이타닉호가 가라앉은 후 물에 빠진 사람들의 끔찍한 신음과 비명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우리가 탄 구명정에도 아이들과 남편과 가족들과 부모님을 걱정하는 아이들과 여자들의 통곡으로 가득했다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비참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호소노의 손자인 일본의 음악인 호소노 하루오미(細野 晴臣)는 콘서트를 할때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며 그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에 전력을 쏟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타이타닉 희생자의 공동묘지가있는 캐나다의 핼리팩스(Halifax)를 방문하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도 하였습니다.


할아버지 호소노 마사무비가 생환 후 41세때 낳은 아들이 바로 그의 아버지입니다.

그가 살아오지 않았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그이기에 이 일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호소노 외에도 생환한 남자들은 자국으로 돌아간 뒤 '비겁자'라는 비난을 받은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살아남은 남자들 모두가 스스로 비겁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던 셈입니다

호소노 마사부미 역시 같은 이유로 어떠한 변명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직접 겪어보지 않는 한, 그날 밤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마음에 침묵했을 수도 있습니다.


생전의 그가 가족들에게 가끔 웃으며 했다는 말을 보면 너무도 인간적이어서 누구도 그를 비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살아와서 지금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좋구나"





▶ 타이타닉은 20년 후면 완전히 사라진다?



타이타닉의 잔해는 아픈 사연들과 함께 북대서양의 해저에 평온히 잠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새롭게 발견된 금속의 녹을 섭취하는 박테리아 종이 5만톤의 철을 천천히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할로모나스 타이타닉(Halomonas titanicae): 철과 녹 표면에 붙어 침몰된 선체의 금속을 먹으며 살아간다


전문가들은 미생물의 침입이 타이타닉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타이타닉은 지난 100년간 깊은 바다에 잠들어 있었지만, 이제 15년에서 20년 후면 북대서양의 바닥에는 얼룩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것이라고 합니다.



타이타닉의 흔적은 인류 문명의 맹신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좋은 교재였습니다.

'불침선' 이라는 인간의 자만심과 함께 출항했던 배가 아이러니하게도 100년동안이나 바다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셈이지요.

타이타닉이 완전히 사라져 잊혀지는 것은 이런 교훈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축복(?)일수도 있습니다.





▶ 술꾼이라서 살아남은 사람



찰스 존 조그힌(Charles John Joughin)은 타이타닉의 제빵사였습니다.

배가 빙산에 충돌했을때 취침 중이던 조그힌은 급히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구명정을 내리는 작업에 동참하였고 승객들에게 빵을 나눠주며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진정시켰습니다.

또한 수십개의 의자를 바다로 집어던져 사람들이 잡고 떠 있을 수 있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헌신적인 행동 덕에 구명정에 탑승하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를 바란다며 그는 그 기회를 사양합니다.

이제 죽음을 직감한 그는 '술이나 먹자' 라는 결심을 하고는 술을 꺼내 퍼마시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구명정이 떠나고 결국 타이타닉은 침몰했습니다.

조그힌은 거의 두시간동안 차가운 바다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술 덕분에 거의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물 위에 떠있는 생존한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온 구명정에 의해 구조되었는데, 실은 머리가 물에 젖지 않아 저체온으로 죽음에 이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술이 나를 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영화 타이타닉은 헌신적인 남자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감동적인 로맨스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뉴욕 메이시스 백화점의 소유주였던 이시도르 스트라우스(Isidor Straus)와 아이다(Ida) 부부였습니다


독일계 미국인이었던 이시도르는 뉴욕에서 그의 동생과 유리와 도자기그릇을 파는 사업으로 큰 돈을 번 사업가였습니다. 부자가 된 후, 그는 로잘리 아이다 불룬(Rosalie Ida Blun)이라는 여성과 결혼하였고 이후 평생 떨어져본적이 없었습니다.

어쩌다 일 때문에 따로 떨어질때면 매일 편지를 썼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잉꼬부부였는데요.

타이타닉이 빙산에 충돌한 그날, 부부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왕복여행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이시도르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있다가 아내를 깨워 1등실 승객용인 8호 구명정으로 데려갔습니다.

1등실 승객 중에서도 VIP였던 그들에게는 당연히 좌석이 제공될 수 있었지만, 아직 탑승하지 못한 여성과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이시도르는 탑승을 포기했습니다.

남겨진 아내는 탑승자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구명정에서 내려 남편에게 돌아갔습니다.

"우린 수십년을 함께 했잖아요. 당신이 어딜가든 나도 가겠어요"

그녀의 이 말은 8호 구명정의 탑승객들과 갑판위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목격되었습니다.



한편, 함께 간 부인의 하녀는 신분 때문에 1등실 승객들의 구명정에 탈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다는 하녀였던 엘렌 버드를 구명정에 태우고 자신의 모피코트를 벗어주며 "우리 딸, 밤바다가 추울테니 이걸 입으렴" 이라고 말했습니다.

놀란 그녀는 모피코트를 벗어서 돌려주려고 했지만 부인이 손을 잡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는 이제 그게 필요없을 것 같구나" 라고 말하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엘렌 버드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노부부가 몰려든 군중들의 뒤로 물러나서 거대한 파도가 배를 집어삼킬때까지 침착하게 서로의 손을 잡고 갑판 위의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랑과 헌신이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장면이었어요" 라고 증언했습니다.


이 부부의 이야기는 생존자들이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엘렌 버드와 수많은 목격자들에 의해 기자들에게 증언되었습니다.


영화속에서는 침대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영화 타이타닉' 의 잭과 로즈는 사실 따지고 보면 하룻밤 풋사랑에 불과하지만 스트라우스 부부의 이야기는 감동을 넘어 존경심마저 듭니다.

놀라운 점은 부부는 4살의 터울이 있었지만 [이시도르(1845년생),아이다(1849년생)] 생일은 2월6일로 같습니다. 즉, 운명처럼 같은 날짜에 태어나 같은 날짜에 죽은 것입니다


이시도르 스트라우스의 시신은 맥케이 베넷(Mackay-Bennett)호에 의해 인양되었지만 부인의 시신은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에 있는 베델 묘지의 Straus - Kohns 가족묘에 안치되었으며, (부인을 위한)유골함 자리 하나는 비워졌습니다.


그들의 사랑을 기리고자 뉴욕 맨하탄에는 공원과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소유했던 메이시스 백화점에 근무하던 5천명의 직원들은 부부를 위한 기념패를 만들어 1층 로비의 벽에 걸어두었습니다.



이 기념패는 2005년 메이시스 백화점이 리모델링을 공사를 하면서 제거되어 유족들에게 주어졌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백화점측의 행위를 모욕적인 행동이라며 분개하는등 많은 논란이 일기도 하였습니다.


Many waters cannot quench love, neither can the floods drown it


부부의 무덤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있습니다


"이 사랑은 많은 물로도 꺼뜨릴 수 없으며, 홍수라도 침몰시키지 못할지이다"



관련글:


 숫자와 단어로 보는 타이타닉 참사 


 가장 비싸게 팔린 타이타닉의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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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5)

  • someday
    2013.01.11 15:06 신고

    가슴아픈 이야기들이네요..
    잘봤습니다

  • 성명오류발견
    2013.01.11 20:23 신고

    호소노 마사부미 細野 正文 ほその まさぶみ
    호소노 하루오미 細野 晴臣 ほその はるおみ

    로 정정 부탁드립니다. 일본 위키 백과 참고해서 알려드려요.

  • 2013.01.11 21:52 신고

    쩝~ 쌍안경 하나 때문에 침몰하다니.. 너무 슬픈 이야기여요~~

    • 2013.01.13 11:25 신고

      하나를 집으라면 자연의 힘을 망각한 인간의 교만이라고 할 수 있겠죠

  • 2013.01.12 20:13 신고

    음 타이타닉호에 이런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었군요.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 온갖 인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억울한 사람도 있고, 이기적인 사람도 있고..!!

    • 2013.01.13 11:26 신고

      영화와 소설에 있어서는 더할나위없는 소재죠

  • 야시
    2013.01.13 10:04 신고

    잘봤습니다!
    어디선가 제가 읽은 기억으로는 과속으로 항해한것도 사고의 원인이라고 하더군요

    • 2013.01.13 23:54 신고

      물론 사고의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당시 대양을 횡단할때는 전속으로 항해하는것이 전통이었습니다
      타이타닉만 과속을 한것은 아니라는 얘기죠

  • 2013.04.06 17:27

    비밀댓글입니다

  • 123
    2013.08.31 11:35 신고

    안녕하세고 글쓴이님! 제가 연구논문을 쓰고 있는데
    실례지만
    이글을 쓰고 계실때 참고하신 문헌이나 참고자료가 있으셨는지, 혹 있으시면 그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여쭤보아도 될까요?

    • 2013.08.31 16:49 신고

      안녕하세요

      우선 2012년, 타이타닉 침몰 100주년을 맞아 많은 기획기사들과 인양된 유물에 대한 칼럼들이 쓰여졌는데요
      유물에 대한 꼭지들은 그런 기사들을 읽은 뒤에 재구성하였습니다
      아마 검색을 통해서 영문이나 다른 외국어기사들을 쉽게 구하실수 있으실겁니다
      기본적인 자료들은 encyclopedia titanica(http://www.encyclopedia-titanica.org/)를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인 승객 호소노 마사부미에 관한 이야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타이타닉 침몰 100주년 기념 일본판(2012년 4월호)' 에 실린 그의 손자 호소노 하루오미의 특집 인터뷰기사를 토대로 수기나 관련자료들을 찾아서 작성하였습니다
      http://nationalgeographic.jp/nng/article/20120330/304031/
      작성당시에 호소노 마사부미의 증손녀의 블로그의 글도 일부 참조했었는데, 지금은 그 블로그를 찾기가 힘드네요

      마지막으로 이시도르 부부에 관한 이야기는 글의 내용에도 있듯이 2005년 메이시스 백화점의 리모델링으로 인해 부부의 기념패를 철거하면서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기사들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탈출한 부부의 하녀 엘렌버드의 이야기를 참조하였습니다
      http://fr.wikipedia.org/wiki/Ellen_Bird

  • 2015.06.10 21:39 신고

    감동적이네요

  • Rich
    2017.05.17 12:46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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