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 단어로 보는 타이타닉 참사




$60 



타이타닉의 2등실 티켓의 당시 가격입니다.

가난한 승객들도 많았다는것을 감안하면 3등실의 제일 저렴한 자리도 상당히 비싼 금액이었습니다

(괄호안은 2012년 현재가치)


- 1등실: (응접실이 딸린 스위트 룸)  £870/ $4,350 ($99,000) 


- 1등실: (침실칸) £30/ $150 ($3,413) 


- 2등실: £12/ $60 ($1,365) 


- 3등실: £3~£8/ $15~$40 ($341~$910)





3 years



RMS 타이타닉은 벨파스트에 있는 하란드 월프 사가 1909년 건조를 시작하여 1911년 5월 31일 진수하였습니다.

북아일랜드 앤트림 주에 있는 벨파스트에서 건조된 RMS 타이타닉은 세 척의 올림픽급 대양 횡단선 가운데 두번째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다른 두 척은 RMS 올림픽과 RMS 브리타닉이었습니다.





0



1912년 당시 생후 9주의 아기였던 '밀비나 딘(Millvina Dean)'여사는 타이타닉의 마지막 생존자였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당시 2살이었던 오빠와 딘을 구명정에 태우고 탈출했지만, 아버지는 배에 남아 사망했습니다.

당시 미국 캔자스로 이민을 떠나는 중이었던 가족은 영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밀비나 딘(Millvina Dean)여사가 2009년 5월 31일 영국 사우스햄튼의 요양원에서 97세를 일기로 사망함으로써 타이타닉의 생존자는 1명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1,178



구명보트의 총 정원은 1,178명이었으나 구출된 사람은 711명에 불과했습니다

그 이유는 빙하와 충돌 후에도 사람들은 '설마 이 큰 배가 침몰하겠어' 라는 생각과 다른 배가 구조하러 올것이라는 믿음으로 구명정에 빨리 탑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자와 아이들 우선' 이라는 원칙만을 강조해 남성들을 서둘러 태우지 않은것도 정원미달의 원인이었습니다.

게다가 타이타닉의 승무원들은 구명정을 내리는 훈련을 해본적이 없는 초짜들이었으며, 구명정의 정원이 차면 해수면 가까이 내려야 하는 것도 알지 못해서 구명정이 뒤집히거나 승객들이 떨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2



타이타닉의 침몰당시 바닷물의 온도는 영하 2도였습니다.

영하 2도에서 사람이 버틸수 있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15분을 넘지 못합니다.





4



타이타닉의 굴뚝은 원래 3개였습니다.

그러나, 4개의 굴뚝이 더 파워풀해 보이고 디자인적으로 우아해보인다는 이유로 하나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굴뚝의 크기는 2대의 기차가 동시에 지나갈만큼 컸습니다.



또, 타이타닉의 내부에는 4개의 전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각각 1등실에 3대, 2등실에 1대가 비치되었습니다.





1898



타이타닉이 침몰하기 14년전인 1898년에 쓰여진 모건 로버트슨(Morgan Robertson)의 소설에서는 타이타닉 참사를 예견한 듯한 상황 설정이 있습니다.

소설속의 선박이름은 Titan이었고 이름뿐 아니라 디자인도 흡사했으며 빙산과 충돌하여 대서양에 침몰하는 것까지 타이타닉의 운명과 같습니다.

그 밖에 소설의 배경이  4월의 밤이라는 점과, 배의 크기 (타이타닉: 268m, 타이탄: 244m), 승객수(타이타닉:2,200명, 타이탄: 2,000명)까지 비슷한데서는 작가가 예언을 한 것 같기까지 합니다.





샴페인(Champagne)



배가 출항할때 샴페인 병을 뱃머리에 내리치는것은 전통이었지만, 타이타닉이 출항할때는 웬일인지 행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석탄파업



승객들중에는 애초에 타이타닉에 탑승할 계획이 없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석탄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났고 남은 석탄의 대부분이 타이타닉의 처녀 항해를 위해 투입된 관계로 다른 많은 배들의 항해가 취소되었습니다.

대서양을 횡단하기 위해서는 타이타닉에 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었습니다.





18km




당시 타이타닉은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적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경적소리는 18km밖까지 소리가 들렸지만 결과적으로 별다른 도움은 되지 않았습니다.





3,560



타이타닉에 실린 구명 조끼의 수입니다.

당시의 구명조끼는 캔버스 천과 코르크로 만들어졌습니다.






800m



타이타닉은 20노트의 속도에서 급후진 실험을 한 결과, 타이타닉을 완전히 정지하는데 필요한 거리는 800m였습니다. 육안으로 빙산을 발견했을때 멈추기에는 이미 늦었던 것입니다.





15분



타이타닉이 침몰 후 해저면에 완전히 닿기까지는 겨우 15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속도로 환산하면 16km/h의 빠른 속력이었습니다.

현재 타이타닉은 대서양 해저 3,784미터 아래에 있습니다.


타이타닉의 위치





7월과 8월



위의 사진은 타이타닉의 잔해가 아니라 침몰된 타이타닉이 발견된 후 20년 동안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쓰레기들입니다.

과학자와 영화 제작자, 화물인양업체, 사학자, 유물을 약탈하는 자들까지 포함됩니다.

심지어 2001년에는 데이비드 레이보위츠와 킴벌리 밀러 부부가 수중의 뱃머리에 내려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여 타이타닉 유족협회로 부터 모욕적인 행동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미국과 영국은 어떤 목적으로든 7월과 8월에만 방문을 할 수 있는 조약을 만들었고 다른 국가들도 참여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뉴욕 타임즈


타이타닉의 사고가 일어났던 순간, 대부분의 신문은 잘못된 뉴스를 전파했습니다.

'타이타닉, 빙산과 충돌했지만 모든 승객은 안전해' 라는 뉴스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기자회견에서조차 회사의 부사장 필립 프랭클린은 "타이타닉이 침몰할 위험은 없습니다. 이 배는 불침선이고 승객은 어떤 불편도 없습니다" 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뉴욕타임즈는 "타이타닉이 침몰했다" 는 속보를 제일 먼저 타전합니다.

그리고 결국 뉴욕타임즈의 속보는 불행하게도 사실이 되었습니다.





8천7백만 달러



존 제이콥 애스터 4세(John Jacob Astor IV)는 타이타닉에 탑승한 승객 중 가장 부자로 당시 재산은 무려 8,700만달러에 달했습니다.

그는 모피무역과 부동산 사업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애스터가의 일원으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뉴욕을 방문하면 머무르는 17층 규모의 아스토리아 호텔(1897년 개장)의 소유자였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부호 중 한명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오던 중이었으며 신부만을 구명정에 태우고 자신은 배에 남았습니다.





납치


미셸 나브라틸(Michel Navratil)


타이타닉의 침몰이 임박하자 호프만(L. Hoffman)이라는 남성이 구명정의 승무원에게 어린 두 아들을 건넵니다.

아이들은 영어를 할 수 없었고 연락처도 없었으므로 일등석 승객이었던 마가렛 헤이즈에게 맡겨졌다가 신문기사를 본 엄마가 연락을 취해 프랑스로 돌아갔습니다.


미셸(4세), 에드몬드(2세)


아이들 아버지의 실제 이름은 미셸 나브라틸(Michel Navratil)로 부인에게 이혼당하고 양육권을 빼앗기자 두 아들을 엄마 몰래 데리고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미셸 나브라틸의 시신은 Mackay-Bennett호에 의해 15번째로 인양되었는데 그가 가짜로 티켓에 쓴 이름이 유대인의 성(姓)(Hoffman은 유대인 성씨)이었기 때문에 카톨릭 신자인데도 캐나다 핼리팩스 부근의 유대인 공동묘지(Baron de Hirsch Cemetery)에 안장되었습니다.



무사히 엄마에게 돌아간 아이들 중, 형 미셸 마르셀 나브라틸은 2001년 92세의 나이로 프랑스에서 사망하였고(남자 승객중 가장 오래 생존했습니다), 동생 에드몬드는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후 탈출에 성공하나 부상 후유증으로 1953년 43세의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46,328t



타이타닉의 무게 46,328톤은 무려 1만 마리의 아프리카 코끼리와 맞먹습니다.



건조 당시 세계 선박 역사상 가장 컸던 타이타닉은 전장 269m 폭은 28m에 달했습니다.





The Atlantic Daily



타이타닉은 자체 신문이 발행되어 게시판에 붙여졌습니다.

이 신문에는 뉴스와 광고, 주식가격, 경마 결과와 식사메뉴들이 적혔습니다.





애견가들



타이타닉에는 12 마리 이상의 개가 태워졌는데 모두 1등실 승객들의 개들이었습니다.

비록 동물이지만, 1등실 성인요금의 절반 가격을 개를 위해 지불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차우차우, 킹 찰스 스패니얼 , 에어데일 테리어, 프렌치 불독, 포메라니언, 그레이트 데인등 고급 품종들이 많았는데요

이 개들 중에서 살아남은 개들은 3마리에 불과했습니다.


한마리는 마가렛 헤이즈양이 이불에 꽁꽁 싸서 몰래 구명정에 데리고 탄 'Lady' 라는 이름의 포메라니언이었고, 두번째 역시 엘리자베스 로스차일드의 포메라니언이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헨리 슬리퍼 하퍼의 '쑨원'이라는 이름의 패키니즈였습니다


목숨을 구한 개들은 인형과 크기가 다를게 없는 '작은 종(種)' 이라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큰 개들은 묶여있거나 우리에 갇혀있어서 살아남기에 불리했습니다.

하지만, 타이타닉이 큰 각도로 기울던 시점에 개들이 누군가에 의해 풀려나 갑판 위에 뛰어다니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개들을 불쌍히 여긴 애견가였겠지요


엘리자베스 이샴과 그녀의 개


엘리자베스 이샴(Ann Elizabeth Isham)이라는 여성은 가족과 같은 그레이트 데인과 함께 타이타닉에 탑승했습니다.

맨하탄에 살고 있던 동생의 초청으로 함께 여름을 보내기 위해 가는 중이었는데, 그녀가 평소 자신의 개를 끔찍히 사랑했기 때문에 함께 배를 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타이타닉이 침몰했을때 사망한 1등실의 여성들은 4명에 불과했는데 그 중에 엘리자베스가 포함되었습니다.

가족들은 그녀가 왜 구명정에 타지 못했는지 의아해했습니다.

나중에야 목격자들로부터 그녀가 그레이트 데인의 큰 덩치탓에 구명정 탑승이 거부당하자 '개와 떨어지느니 타이타닉에 남겠다'고 했다는 것을 전해들었습니다.


며칠 후, 그녀의 시신이 인양선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그녀의 팔은 자신의 개와 절대 헤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개의 몸을 꼭 끌어안고 죽어있었다고 합니다.






0


반면, 타이타닉에 고양이는 한마리도 없었습니다.



고양이는 장기간 항해하는 선박의 쥐를 잡아먹기도 하는 등 배에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여겨 선원들이 고양이를 태우는 일은 흔한일이었습니다. 참사가 일어나고 보니 그 많은 승무원들 중 누구도 고양이를 한마리도 실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조차 마치 불운의 전조처럼 느껴집니다.



관련글:


 타이타닉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가장 비싸게 팔린 타이타닉의 유물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4)

  • 2018.06.29 13:22

    비밀댓글입니다

    • 2018.07.17 23:26 신고

      안녕하세요. 답변이 늦었습니다.
      오래된 이미지들은 저작권유효기간이 지난 것들이고 나머지는 제가 편집한 이미지들이라 괜찮습니다.
      답변을 주실지 모르겠는데 해당내용이 나오는 방송일자가 궁금합니다.

  • 윤길
    2018.08.04 21:49 신고

    안녕하세요?
    웹 서핑하다가 타이타닉 기사 잘 읽었습니다.
    세기의 비극적인 사건인지라 많이들 다루고 있지만
    제가 보아왔던중 구성면에서 내용면에서 가장 잘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2013. 01. 13일자 기사 '숫자와 단어로 보는 타이타닉 참사' 내용 중
    'The New York Times' (1912.04.16) 신문 이미지를 제가 출간코자 하는 단행본에 게재코자 하는데 가능할런지요?
    요즘 저작권 문제 때문에 함부로 이미지를 사용할 수 없음을 알기에 문의드립니다.

    도움 부탁드립니다.
    가능하시다면 원본 파일을 받고 싶습니다.

    - 윤 길 드림(010 3627 7871 이메일: igy21@hanmail.net)

    • 2018.11.05 13:16 신고

      안녕하세요. 윤길님
      해당 이미지는 신문 발행일로부터 100년이 지나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본 파일은 뉴욕타임즈 아카이브 페이지에서 기사로 접하실 수 있습니다.

      https://timesmachine.nytimes.com/timesmachine/1912/04/16/issue.html?action=click&contentCollection=Archives&module=LedeAsset&region=ArchiveBody&pgtype=article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