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먹고살기 위해 열도로 건너간 조선인들
- 정리
- 2021. 2. 21. 01:00
- 백만 원 버는 제주의 도민(島民)
- 매년 백만 원씩 벌어서 고향으로 보내는 도민
조선사람으로 내지(일본)에 건너가서 돈벌이하는 사람에 대한 정확한 수효는 추정하기 어려우나 대략 그 수를 15만 명으로 보고 있다. 그중 약 20%인 3~4만 명이 일정한 직업이 없이 곤란한 상태에 있으며, 75%는 노동임금이 싸서 비교적 환영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건너가 있는 사람은 제주도(濟州島) 사람으로 그 수가 3만 명에 달하며, 도민들이 매년 자기 고향에 보내는 돈은 백만 원 이상을 돌파하여 그곳에서 내지로 돈벌이 가는 사람을 실어 나르는 기선회사(汽船會社)들은 맹렬한 경쟁을 하는 중이라 한다.
《매일신보 1927.01.18》
한국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해방(1945년) 당시 10,000원은 2005년 가치 10억 원에 해당한다고 한다. 즉 1945년의 100만 원은 2005년의 1000억 원으로 계산된다.
45년과 20005년의 60년 차이보다 27년과 2021년의 시간차는 훨씬 더 벌어졌으므로 1927년의 제주도민들이 일본에서 고생해서 고향으로 보낸 돈은 현재가치로 1000억+라고 볼 수 있겠다.
제주도-오사카를 연결했던 배는 「기미가요마루(君が代丸)」라는 화객선(貨客船)으로 1922년부터 1945년에 걸쳐 운행하였다.
제1 기미가요마루는 1891년 네덜란드에서 건조된 669톤급 배(Swaerdecroon)로 1922년부터 제주항로에 투입되어 운행하다가 1945년 5월 23일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의해 침몰하였다.
제2 기미가요마루는 919톤, 길이 62.7m로 제1 기미가요마루가 1925년 태풍으로 좌초했을 때 대리선의 필요성을 느껴 소련의 군함을 매입해 화객선으로 개조되어 1926년 제주도-오사카 항로에 투입되었다. 보통 기미가요마루를 말하면 제2 기미가요마루를 말하는 것.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1945년 4월 미군의 공습으로 아지가와(安治川) 부근에서 침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미 해군의 기록은 6월 1일 오사카 공습 당시 B-29 폭격기에 의해 침몰된 것으로 적혀있다.
기미가요마루는 오사카에서 아침에 출항하면 다음날 저녁에 도착하는 일정이었으며 이틀간 제주도 주변의 11개소에 기항했다.
당시 정원은 365명이었지만 늘 정원의 두배에 가까운 인원이 승선하였으며,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반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체류하는 상황이라 당시 추석과 설날의 오사카항은 한반도로 귀성하는 조선인들과 배웅하는 가족들로 인파가 엄청났다고 한다.
References:
- 경향신문. 해방 당시 10,000원, 지금의 10억 link
- 세계한민족문화대전. 기미가요마루호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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