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먹고살기 위해 열도로 건너간 조선인들

- 백만 원 버는 제주의 도민(島民)

- 매년 백만 원씩 벌어서 고향으로 보내는 도민

 

조선사람으로 내지(일본)에 건너가서 돈벌이하는 사람에 대한 정확한 수효는 추정하기 어려우나 대략 그 수를 15만 명으로 보고 있다. 그중 약 20%인 3~4만 명이 일정한 직업이 없이 곤란한 상태에 있으며, 75%는 노동임금이 싸서 비교적 환영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건너가 있는 사람은 제주도(濟州島) 사람으로 그 수가 3만 명에 달하며, 도민들이 매년 자기 고향에 보내는 돈은 백만 원 이상을 돌파하여 그곳에서 내지로 돈벌이 가는 사람을 실어 나르는 기선회사(汽船會社)들은 맹렬한 경쟁을 하는 중이라 한다.

《매일신보 1927.01.18》


한국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해방(1945년) 당시 10,000원은 2005년 가치 10억 원에 해당한다고 한다. 즉 1945년의 100만 원은 2005년의 1000억 원으로 계산된다.

 

45년과 20005년의 60년 차이보다 27년과 2021년의 시간차는 훨씬 더 벌어졌으므로 1927년의 제주도민들이 일본에서 고생해서 고향으로 보낸 돈은 현재가치로 1000억+라고 볼 수 있겠다.

 

제주도-오사카를 연결했던 배는 「기미가요마루(君が代丸)」라는 화객선(貨客船)으로 1922년부터 1945년에 걸쳐 운행하였다.

 

▲ 제1 기미가요마루

제1 기미가요마루는 1891년 네덜란드에서 건조된 669톤급 배(Swaerdecroon)로 1922년부터 제주항로에 투입되어 운행하다가 1945년 5월 23일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의해 침몰하였다.

제2 기미가요마루는 919톤, 길이 62.7m로 제1 기미가요마루가 1925년 태풍으로 좌초했을 때 대리선의 필요성을 느껴 소련의 군함을 매입해 화객선으로 개조되어 1926년 제주도-오사카 항로에 투입되었다. 보통 기미가요마루를 말하면 제2 기미가요마루를 말하는 것.

 

▲ 제2 기미가요마루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1945년 4월 미군의 공습으로 아지가와(安治川) 부근에서 침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미 해군의 기록은 6월 1일 오사카 공습 당시 B-29 폭격기에 의해 침몰된 것으로 적혀있다.

기미가요마루는 오사카에서 아침에 출항하면 다음날 저녁에 도착하는 일정이었으며 이틀간 제주도 주변의 11개소에 기항했다.

당시 정원은 365명이었지만 늘 정원의 두배에 가까운 인원이 승선하였으며,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반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체류하는 상황이라 당시 추석과 설날의 오사카항은 한반도로 귀성하는 조선인들과 배웅하는 가족들로 인파가 엄청났다고 한다.

 

References:
- 경향신문. 해방 당시 10,000원, 지금의 10억 link

- 세계한민족문화대전. 기미가요마루호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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