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무모한 가입식 <300 클럽>


일전에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마을인 오미야콘에 관한 글 세계에서 가장 추운 거주지 : 오미야콘(Oymyakon)을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오미야콘도 우리입장에서 보면 무시무시한 추위를 자랑하는 곳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곳도 사람사는 곳이고 지내다보면 '적응되어서 살만한 곳' 입니다. 하지만 생명체가 전혀 살기 힘든 온도를 나타내는 곳에서 무모한 객기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화 300 아님


'300 클럽'이라 하면, 야구의 300-300 같은 기록이나 영화 300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텐데요

오늘 소개할 300 클럽은 순간 온도차 300℉를 견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호칭입니다.



아문센 스콧 기지


이 클럽의 가입식은 미국의 남극관측기지인 아문센 스콧 기지(Amundsen-Scott South Pole Station)에서 열립니다.

가입 조건은 날씨에 따라 좌우되는데 정확히 화씨 -100도(섭씨 -73도)를 기록하는 날에만 개최됩니다.

우선 상주하는 대원들로 구성된 용맹한 참가자들은 기지내의 사우나를 화씨 200도(섭씨 93도)에 맞추고 알몸으로 10분간 대기합니다.

대기시간 10분이 지나면, 섭씨 -73도의 혹한인 바깥을 향해 내달리는데 여기에서도 복볼복이 작용합니다. 바람이 좀 많이 부는 날씨라면 같은 섭씨 -73도라 해도 체감온도는 섭씨 -97.7도까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바깥으로 뛰쳐나간 참가자들은 '세레모니용 남극점 기둥'을 도는 간단한(?) 절차만 치르면 300 클럽에 당당히 가입하고 기념 패치를 받게 되지만, 대부분은 문을 여는 순간 포기선언을 합니다. 추위가 어느정도냐하면 카메라가 추위를 견디지 못해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기념패치


조금 더 용기 있는 참가자들은 '지리학적 남극점 표시 기둥'까지 달려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회가 처음 시작된 70년대에는 지리학적 남극점이 기지와 300m 정도 떨어져 있어 미친짓이었지만, 현재는 지리학적 남극점이 100m 정도로 가까워져 세레모니용 남극점과 별 차이가 없어져 시도할만하다고 합니다.


▶ 세레모니용 남극점(ceremonial south pole)

적색과 백색의 줄무늬 기둥이 남극점에 꽂혀 있습니다. 이 위에는 크롬으로 된 지구본이 얹혀있고 주변에는 남극조약에 조인한 12개국의 국기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기념사진이나 언론용 사진이 대부분 이곳을 배경으로 합니다.


지리학적 남극점과 세레모니용 남극점


 지리학적 남극점(Geographic South Pole)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남극점은 고정된 점이 아니라 매년 서쪽으로(남미방향) 10m 가량 움직입니다. 

이 남극점은 매년 새로 지정되며 4m 길이의 쇠기둥으로 표시하는데 근처에 미국국기와 남극점의 고도, 지리학적 남극점을 표시하는 남극점 표지판이 있습니다. 



최초 이 대회를 생각해낸 것은 역시나 아문센 스콧 기지의 대원들입니다.

아문센 스콧 기지는 2월 중순부터 10월말까지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는데 이런 조건에서 인간이 받는 심리적 고통은 상당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훈련받은 대원들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닙니다. 결국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이곳에서 대원들이 유희를 위해 만들어낸 대회인 것입니다. 



경기복장은 기본적으로 알몸이지만 워낙 극한인 탓에 예외는 있습니다. 


1. 호흡을 하다가 폐에 동상이 걸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넥 게이터(Neck Gaiter)로 입과 코를 가려야 하며 발을 보호하기 위해 방한부츠를 신어야 합니다. 


2. 속옷은 당연히 벗어야 하지만 여기에는 재미와 실용성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우선 적나라한 알몸으로 동료가 벌벌떨며 덜렁덜렁거리며(?) 뜀박질하는 모습은 폭소를 유발하는 상황이라 스트레스가 단숨에 날아가는 효과가 있습니다. 

- 실용적인 이유로는 뜨거운 사우나에서 땀에 젖은채로 속옷을 입고 혹한으로 뛰어나오면 성기와 속옷이 함께 얼어붙어버리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300클럽 가입식은 참가한 사람들의 경험담에 따르면 '각목에 못을 박아 온몸을 구타하는'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정말 무모하고도 고통스러워보이는 가입식이지만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추위와 어둠만이 있는 곳에서 우울증을 예방하고 자기자신을 다잡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게다가 이 가입식은 세계에서 가장 무모할 뿐만 아니라 가장 엘리트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클럽이기도 합니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가입식이 열리기조차 어려운것에 더해 남극기지의 상주대원들은 각국을 대표하는 브레인들이 주요 면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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