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친구를 죽인 걸로 착각하고 진주교에서 투신한 사건

- 장난하다 동무 죽였다고 소년이 투강 자살
- 그러나 동무는 다시 살아나
- 책임감 깊은 소년의 최후

동무와 장난하다가 실수로 그 동무가 기절한 것을 정말 죽은 줄 알고 책임감에 못 이겨 투신자살한 불쌍한 어린 소년이 있다.

진주읍(晋州邑) 수정정(水晶町) 양수성(梁水成, 14)이란 진주 제3야학교 생도는 지난 20일 오후 9시경 봉래정(蓬萊町) 심재홍(沈在洪, 14)이라는 같은 야학교에 다니는 동무와 진주고보교(晋州高普校) 앞에서 장난을 치고 놀다가, 그만 잘못하여 재홍의『불알』을 발로 찬 것이 원인으로 즉석에서 재홍은 기절을 해버렸다.

여러 가지 응급 수단을 해봐도 살아나지 않으므로 그만 죽은 줄로 믿고 어린 마음에 무서움과 동무를 죽였다는 책임감에 못 이겨 그 길로 도망하다시피 남강철교(南江鐵橋)위에서 큰 돌을 안고 떨어져 죽었다.

여기에 있어 죽은 수성으로 하여금 한층 눈물겹게 하는 것은 죽은 줄 알았던 재홍은 그 부모들이 곧 순천의원으로 메고 가서 주사를 한 결과 드디어 소생하게 되어 이튿날 죽은 수성의 시체를 그의 부모가 건져가지고 남강변에서 울고 있을 때에 재홍은 소생되어 제 동무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한다.

《동아일보 1934.06.23》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급소를 차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강에 몸을 던진 이야기로, 특히 죽은 줄 알았던 친구는 병원에서 응급처치 후 의식을 회복하여 더욱 안타까운 사연이 되었다.


● 경남 진주의 옛 모습

• 진주 제3야학교(晋州第三夜學校): 기사 속 두 사람이 다녔던 진주 제3야학교는 가난한 조선인 학생들을 위해 1923년 교육가 권홍우(權烘宇)가 설립한 4년제 민족학교로 1943년 폐교되었다.

• 진주고보교(晋州高普校): 진주고등보통학교를 말하는 것으로 1925년 4월 설립되었다. 1951년 학제가 개편되면서 진주북중학교와 진주고등학교로 분리되었으며, 진주북중학교는 1953년 진주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진주고등보통학교. 1930년》


• 남강철교(南江鐵橋):
양수성군이 뛰어내린 남강철교는 진주교를 말한다. 1900년대까지 남강에는 교량이 없었고, 1912년 사사키 요시마츠(佐佐木芳松)가 처음으로 배다리를 설치했다.


《남강 배다리. 1915년》
《1920년 남강 배다리 / 진주 반전사진관》

이후 진주 도심이 급격하게 발전하는 등 다리의 효용가치가 높아지자 1925년 10월 15일 공사비 35만 8천 원을 들인 남강철교 공사에 착수하였다. 원래 1927년 3월 30일이 완공 예상일이었으나 6월 16일에 준공식을 가졌고, 6월 27일 개통식을 거행하였다.

《남강철교(진주교). 1920년대》

이날 진주 주민들은 다리 건설이 기쁜 나머지 6월 27일에서 29일까지 3일 연속으로 축하행사를 열었다. 이 다리는 6.25 당시에 일부 파손되기도 하였으나 개보수하여 1980년 초까지 이용하다가 노후화로 수명을 다했고, 1983년 6월 현재의 진주교가 그 역할을 대체하였다.


Reference:
- 동아일보. 장난하다 동무 죽였다고 소년이 투강 자살 (1934.06.23)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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