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벨기에 겐트 세계박람회(Wereldtentoonstelling Gent 1913)

1400년의 역사를 지닌 벨기에의 유서 깊은 도시 겐트(Ghent, 네덜란드어 헨트: Gant)는 19세기에 들어서며 숲 속의 중세도시에서 유럽의 섬유산업 중심지로 극적으로 탈바꿈하였고, 1913년 세계박람회까지 유치하였다.

이 박람회를 위해 헨트 신트 피터스 역(Gent-Sint-Pieters)이 1912년 건설되었다. 또 객실 600개를 갖춘 플란다리아 팰리스 호텔(Flandria Palace)이 들어섰으며, 시타델 공원(Citadel park)이 재정비되었다.

▲ 플란다리아 팰리스, 건설중인 헨트 신트 피터스 역, 시타델 공원의 플라워쇼

1913년 4월 26일부터 11월 3일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열린 겐트 세계박람회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역사에 고루 남겼다.

이때 벨기에 최초의 항공우편서비스가 시범적으로 운용되는 역사적 발걸음을 기록했으며, 그리스의 제과업자 레오니다스 케스테키데스(Leonidas Kestekides)가 박람회 참석을 계기로 벨기에에 영구 정착하며 설립한 레오니다스 초콜릿(Leonidas Belgian Chocolates)은 벨기에 고급 초콜릿의 대명사로 남았다.

무엇보다도 세계박람회를 위해 도시가 완전히 재설계되고 역사적인 건물들이 복원되면서 오늘날 겐트는 전통과 최첨단을 아우르는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 겐트의 현재 모습과 레오니다스 초콜릿 로고

하지만 박람회는 심각한 적자를 기록했으며, '인간 동물원'이라 칭해지는 비인간적인 민족학 전시회를 유치하는 흑역사도 기록했다. 당시 약 126명의 세네갈 원주민과 60명의 필리핀 이고로트족(Igorot)이 겐트로 보내져 전시장에 거주하며 눈요깃감이 되었다.

▲ 민족학 전시관과 이고로트족 청년 티미첵

이들은 향수병과 추위에 시달렸으며, 이고로트족의 28세 청년 티미첵(Timicheg)은 4개월 만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박람회가 끝나고 이들이 겐트 거리에서 노숙하며 구걸하는 모습이 목격되는 등 방치되기도 하였다.

2007년 겐트 시의회는 당시의 잘못을 반성하기 위해 신트 피에테 역과 연결하는 터널을 원주민 청년의 이름 '티미첵'으로 명명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2011년 티미첵 터널(Timicheg tunnel)의 개통식에서 다니엘 터먼트(Daniël Termont) 겐트 시장이 인간 동물원에 끌려온 주민들에게 사죄하고 엔리케 마날로(Enrique Manalo) 벨기에 주재 필리핀 대사가 리본 커팅식에 참여하기도 했다.

▲ 개통식을 하는 필리핀 대사와 겐트시장(좌), 티미첵 터널 명판(우)


아래는 박람회 당시의 전시장 모습들과 겐트 시의 풍경이다.

▲ 겐트 박람회 포스터 / René De Cramer
▲ 겐트 박람회 포스터 / Émile Coppieters
▲ 박람회는 130만 평의 부지에서 열렸다.(여의도 면적 89만 평)
▲ 박람회 안내도
▲ 헨트 신트 피터스 역(Gent-Sint-Pieters)
▲ 헨트 신트 피터스 역(Gent-Sint-Pieters)
▲ 겐트 도심의 운하와 호텔
▲ 겐트 박람회 정문
▲ 겐트 박람회 풍경
▲ 겐트 박람회 본관 건물
▲ 전설의 말 Bayard 조각상
▲ 박람회 거리
▲ 박람회 거리
▲ 전시장 전경
▲ 거리의 관람객들
▲ 자동차 전시관
▲ 예술궁전
▲ 시타델 공원 원예궁전 전면
▲ 시타델 공원 원예궁전 후면
▲ 여성 미술관
▲ 이탈리아 관
▲ Flandria Palace 호텔
▲ 앤트워프 관
▲ 브뤼셀 관
▲ 브뤼셀 관
▲ 브뤼셀 관
▲ 독일 관
▲ 독일 관
▲ 네덜란드 관
▲ 벨기에령 콩고 관
▲ 벨기에령 콩고 관
▲ 벨기에령 콩고 관
▲ 리에주(Liège) 관
▲ 파리 관
▲ 파리 관과 자동차 전시관
▲ 페르시아(현재의 이란) 관
▲ 프랑스 보호국 모로코 관
▲ 튀니지 관
▲ 플란데런 관과 레스토랑
▲ 프랑스 관
프랑스 관의 농업 전시장
▲ 플란데런의 옛모습 전시
▲ 독일 관과 파리 관
▲ 축제 전시장
▲ 벨기에 전통 정원 전시
▲ 농가주택 전시
▲ 박람회장의 분수
▲ 박람회장의 분수와 운하
▲ 프랑스 관 앞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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