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타하리, 배정자로 잘못 알려진 사진

배정자(裵貞子, 1870~1952)는 대한제국 시기부터 일제의 밀정으로 활동했다고 알려진 인물로 '여성 스파이'라는 흥미로운 이력 때문에 각종 다큐 프로그램과 소설 속에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우연히 2020년 6월 21일에 방송되었던 MBC의 예능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에서 배정자를 언급하면서 출연진들이 그녀의 사진을 들고 있는 캡처를 보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당 여성은 배정자가 아니다.

▲ '선을 넘는 녀석들'이 언급한 배정자

이런 프로그램은 작가들이 자료를 수집해 출연진들이 대본대로 방송하는 방식일 것이다. 아마도 인터넷에 잘못 퍼져있는 사진을 검증 없이 그대로 내보낸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에는 주로 MBC가 저 사진의 출처가 되어서 인용되고 있다.

다른 출연진은 그렇다 쳐도 역사강사 설민석은 배정자의 다른 사진을 본 적이 있을 텐데 미리 진위를 구별해낼 시각이 없었던 걸까.

▲ 배정자로 잘못 알려진 사진

사실 배정자의 다른 사진이 존재하기 때문에 평균적인 눈썰미만 있다면 두 사진을 비교했을 때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MBC에서 방송했기 때문에 그런 의심은 쉽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MBC에서 해당 여성을 배정자의 사진으로 다루자 이후 공영방송의 공신력을 믿고 수많은 언론, 유튜브, 블로그에서는 이 사진을 배정자로 간주하고 있는 상황.

▲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동일인물로 간주되는 상황

이런 이유로 사람들의 신뢰가 높은 공영방송에서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을 다룰 때에는 제작진들의 책임감과 주의가 더욱 요구되는 부분이다.

물론 배정자라는 인물이 젊은 시절 방탕한 행태를 보였다는 이야기도 있는 만큼 '나이가 들면서 얼굴이 변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사진과 비교해보면 간단히 반박되는 문제다.

▲ 좌측부터 40대(1917년), 50대 추정, 60대 중반(1934년)

배정자의 연대별로 나열한 사진을 보면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얼굴 형태, 입모양 등으로 동일인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또 1926년 9월 1일 자 매일신보는 창간 당시를 회상하는 각계 인사들의 인터뷰를 다루었는데 이때 해당시기 배정자의 모습을 함께 등장시켰다.

▲ 배정자의 30대 시절

매일신보가 창간한 연도는 1904년이니 배정자의 3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위의 세 사진보다 확실히 날씬하고 젊은 모습이지만 넓은 턱을 가진 얼굴형과 입모양으로 동일인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잘못 퍼진 사진과는 얼핏 봐도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배정자의 진짜 나이

배정자는 1869년 혹은 1870년 입춘(1월 30일) 이전 태생일 수 있다. 매일신보 1917년 정사년(丁巳年) 신년호에서는 배정자의 사진과 함께 【'사년생'인 노(늙은) 신부】라는 설명을 달아놓았는데 이는 1869년 기사년(己巳年)을 의미한다. 뱀의 해(巳年)를 맞아 뱀띠 유명인들을 소개한 것.


▲ 사년생(뱀띠)들을 소개한 기사 【매일신보 1917.01.01】

배정자의 알려진 생년월일 1870년 2월 23일은 경오년(庚午年) 말띠에 해당된다.


한편 또 다른 여성 한 명의 사진도 배정자로 잘못 알려져 있다.

▲ 이채연의 부인 배씨

이 사진은 1889년 주미조선공사로 파견된 일행 중 한 명이었던 이채연(李采淵, 1861~1900)과 동행한 그의 부인 배씨로 흔히 '이완용의 부인'으로도 잘못 알려져 있기 때문에 예전에 한번 다룬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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