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여권사진 속의 애견인

해외 출국의 필수품인 여권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사진은 규정이 꽤나 까다로워서 사진에 미소를 짓는 것도 허용되지 않을 정도이다. (외교부 여권안내 홈페이지)

▲ 외교부 여권규격 안내

이는 한국 정부만의 방침이 아니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정한 기준. 하지만 100여 년 전에 발행된 여권 속에 지금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사진이 있다.

▲ 20세기 초,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여권

위의 여권사진은 유럽 최고의 가문으로 존재했던 독일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Saxe-Coburg and Gotha)에서 1915년 1월 1일 발행된 것인데 한 젊은 여성이 그의 애견과 함께 찍은 사진을 여권 증명사진으로 쓰고 있는 모습이다. 이 유물은 여권 수집가 톰 토폴(Tom Topol)의 소장품으로 그는 '오래된 여권은 다채로운 도장과 아름다운 손글씨가 적힌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하며 다양한 빈티지 여권들을 모으고 있다.

현대는 해외여행이 누구나 돈과 시간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 되었지만 불과 6~70년 전만 해도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은 교통편도 그렇고 각국 정부의 제한도 있어서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비행기의 경우 지금은 퍼스트 클래스가 안락한 여행을 보장하는 최고급 좌석으로 분류되지만 해외여행 초창기에는 비행기를 타는 것 자체가 퍼스트 클래스였을 정도였다. (관련 글: 1957년 에어프랑스와 퍼스트 클래스의 유래)

그보다 한세대가 더 거슬러 올라가는 1910년대에는 나라 밖을 나가는 일반인이 거의 없다 보니 여권사진에 대한 규정도 없었고 여권의 사진란에 크기가 맞는 사진이라면 어떤 사진이든 허용되었던 시대였다.

▲ 여권 사진 속에 남은 여성과 그녀가 사랑했던 개

사진 속의 여성이 언제 이 사진을 찍고 어디를 여행하고 어떤 풍경을 보았는지, 또는 혼자 여행을 갔는지 개와 함께 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지독한 애견인이라는 것은 그 어떤 설명 없이도 충분히 전해지고 있다.

한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은 1826년에 성립된 공국으로 오늘날 독일의 튀링겐과 바이에른 주에 영토가 걸쳐져 있었다.

▲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위치

1918년 11월 7일에 발생한 '독일 11월 혁명'으로 군주제가 철폐된 후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도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독일의 튀링겐주와 바이에른 주로 나뉘어 편입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