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대한제국(조선)의 풍경 ①

근대 일본의 사진기술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사진작가 오가와 가즈마사(小川一真, 1860~1929)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수많은 국내외 명소와 풍속, 문화재를 카메라에 담았다.

오가와 가즈마사의 사진점은 1910년에 조인된 한일병합조약을 기념하는 사진첩도 출판했다.

(大日本帝国朝鮮写真帖, 日韓併合紀念 / 小川一真出版部 1910)

1910년의 출판물이지만 사진첩이 제작되는 기간을 고려하면 1900년대 한반도의 모습이 담긴 것으로 보여진다.

일본제국과 대한제국 왕실이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뒷줄 왼쪽부터
흥친왕 이재면(興親王 李載冕, 1845~1912),
완순군 이재완(完順君 李載完, 1855~1922),
의양군 이재각(義陽君 李載覺, 1874~1935),
영선군 이준용(永宣君 李埈鎔, 1870~1917).


앞줄 왼쪽부터
아리스가와노미야 다케히토 친왕(有栖川宮威仁親王, 1862~1913),
순종(純宗, 1874~1926),
사진 찍을 당시는 황태자였던 다이쇼 천황(大正天皇, 1879~1926),
영친왕 이은(英親王 李垠, 1897~1970).

경성 남대문(숭례문). 당시 이미 가로등을 세우고 출입을 막아 유적화한 모습이다.

경성 종로거리. 노면전차와 자전거를 끌고 가는 소년, 물동이를 머리에 진 여성, 노점상 등 일상적인 모습이 눈에 띈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경성의 전경.

파고다공원(탑골공원).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청계천 수표교(水標橋). 원래 수표동에 있었으나 현재는 장충단공원으로 이전되었다.

창덕궁 인정전(昌德宮仁政殿).

창덕궁 주합루(昌德宮 宙合樓). 창덕궁 후원에 있는 2층으로 된 누각.

경복궁(景福宮) 내에 있는 향원정(香遠亭).

경복궁 광화문(光化門).

▲ 멀리서 본 경복궁(景福宮).

▲ 한국 최대의 목조건축물 중 하나인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 연잎으로 가득한 경복궁 경회루(慶會樓).

▲ 1907년, 대한문(大漢門) 앞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 1894~1966)의 혼례행렬과 구경 나온 인파들.

▲ 경운궁(慶運宮) 중화전(中和殿). 경운궁은 1907년 순종이 왕위를 이양받으면서 덕수궁(德壽宮)으로 개칭하였다.

▲ 남산 국사당(國師堂) 내부. 일제가 조선신궁(朝鮮神宮)을 남산 정상에 세우면서 1925년 인왕산으로 이전하였다.

세검정(洗劍亭). 서울시 기념물 제4호로 지붕은 1941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977년 복원하였다.

▲ 경운궁(덕수궁) 돈덕전(惇德殿).

남산공원. 1908년 일제에 의해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1910년 일반에 공개되었다.

통감부(統監府) 청사. 을사조약 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와 정치, 군사업무를 관장하던 곳으로 한일합방 이후 해산되었다.

▲ 남산에 있던 통감관저(統監官邸). 현재는 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만 남아있다.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가 1906년 3월 2일부터 1909년 6월 14일까지 제1대 한국통감을 역임했다.

▲ 고등법원 및 경성지방법원.

▲ 포졸과 포도대장 등 조선시대의 포도청 관리들(위)과 대한제국 시대의 신식 경찰들(아래).

▲ 1915년 이전의 경성우편국(京城郵便局). 1898년 일본우편전신국으로 지어졌으나 한일합방 이후 경성우편국이 이곳을 사용하였고, 우정서비스가 점점 확대됨에 따라 1915년 새로운 청사를 지어 이전하였다.

- 관련 글: 1915년 경성우편국 신축

우편배달부. 우체통과 소포를 배달하는 인력거가 함께 찍혀있다.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 교원양성을 위해 1895년 설립된 곳으로 15세 이상의 보통학교 졸업생에게 입학자격이 주어졌다.

▲ 한성사범학교 수업 모습. 1911년 8월, 일제가 공포한 제1차 조선교육령에 따라 경성고등보통학교의 사범과 혹은 교원 속성과로 개편되면서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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