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 이야기들 ㉑ 아낌없이 주는 나무 '마크 트웨인 트리'

거대한 나무의 단면 앞에 선 사람들


1891년, 시에라네바다산맥에 위치한 킹스 캐년(Kings Canyon)에 우뚝 서있던 거대한 세쿼이아(Sequoia) '마크 트웨인 트리(Mark Twain Tree)'가 베어졌다.

단면 앞에는 여성과 남성이 서있고, 나무의 크기를 보여주고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남자가 톱 두 개를 납땜해서 잡고 있다.

나무의 이름에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의 이름이 붙은 이유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다른 나무에도 정치인이나 유명인들의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볼 때 당대의 대문호에 대한 존경의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 킹스캐년에 남아있는 거대한 나무들. 왼쪽의 '제너럴 셔먼 트리(General Sherman Tree)'는 83.8m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이다.

마크 트웨인 트리는 당시 이곳에서 가장 큰 세쿼이아는 아니었지만 '숲에서 가장 완벽한 나무'로 불리던 균형 잡힌 잘생긴(?) 나무였다. 베는 데에만 무려 13일이 소요되었고 쓰러진 나무를 측정한 결과 수령은 1341세, 높이는 100.9m, 둘레는 27.4m에 달했다.


무분별한 벌채


일반적으로 3,000년 이상에 달하는 세쿼이아의 수명으로 볼 때 1341세에 불과한 마크 트웨인 트리는 최소 천년은 더 살아갈 수 있었지만 운이 나빴다.

킹스 캐년의 세쿼이아 숲은 1888년에 설립된 킹스리버 목재회사(Kings River Lumber Company)의 소유가 되었다. 1905년까지 이 회사는 마크 트웨인 트리를 포함해 8,000그루의 거대한 세쿼이아들을 쓰러뜨리며 숲을 초토화시켰다.

▲ 잘려나가는 마크 트웨인 트리

지금이라면 이와 같은 무분별한 벌채가 이루어지지 않았겠지만 이 시대에 거대한 나무를 벌채하는 것은 대형동물을 사냥하는 도전과도 같았다.

▲ 쓰러지기 직전의 마크 트웨인 트리

거대한 나무가 쓰러질 때는 엄청난 충격이 발생했고, 특히나 잘 쪼개지는 세쿼이아의 특징으로 인해 매우 위험했다.

벌목꾼들은 나무가 쓰러지는 곳을 정확히 파악해 참호를 판 뒤 그곳에 나뭇가지 등을 깔아 최대한 손상을 방지하였고, 계산대로 정확하게 나무가 쓰러지면 이는 벌채공학의 승리로 칭송되었다.

▲ 마크 트웨인 트리의 그루터기에 올라선 벌목꾼들

현대사회에서 야생동물을 무차별 사냥해 논란이 되는 사냥꾼들처럼, '쓰러진 거인'을 연상시키는 나무들을 정복하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뿌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남아있는 나무의 흔적

 

당시 쓰러진 마크 트웨인 트리에서 횡단면 두 개를 잘라냈는데 하나는 런던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으로, 다른 하나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으로 보내졌고 지금도 전시되고 있다.

나머지 부분은 킹스리버 목재회사가 분쇄해 울타리로 쓸 목책, 말뚝, 기둥, 널빤지 등 자잘한 목재로 가공되어 팔려나갔다.

▲ 마크 트웨인 트리의 흔적. 미국 자연사박물관(왼쪽), 런던 자연사박물관(오른쪽 계단 위)

또 세쿼이아 숲과 킹스캐년 파크가 1943년에 합쳐져 현재 세쿼이아&킹스캐년 내셔널파크(Sequoia and Kings Canyon National Park)가 된 곳에는 빅스텀프 그로브(Big Stump Grove)가 조성되어 있다.

▲ 세쿼이아&킹스캐년 내셔널파크의 빅스텀프 그로브

말 그대로 대형 세쿼이아들을 잘라내고 남은 그루터기를 그대로 남긴 산책로가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 빅스텀프 그로브의 '마크 트웨인 트리' 그루터기

수천 년간 숲을 이루어 오다가 인간에게 목재를 제공해주고, 남은 그루터기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는 것을 보면 마치 셸 실버스타인의 소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현실로 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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