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 이야기들 (71) 1986년,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10주년 기념사진

1986년 1월 21일,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이 보유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Concorde)' 6대가 정렬하고 있다.

이날은 1976년 1월 21일에 첫 비행을 시작한 콩코드 여객기의 10주년이었다.

2차 대전 후 비행기의 성능은 가파르게 성장하였고, 인류는 제트여객기에 탑승해 해외를 방문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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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을 시작한 지 불과 반세기만인 1962년 11월 29일,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개발을 위한 협약에 서명했다.

1976년 1월 21일 아침, 드디어 양국이 만든 상업용 초음속 여객기가 활주로를 질주했다. 이날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의 콩코드와 에어프랑스(Air France)의 콩코드는 동시에 이륙했는데, 이는 역사적인 순간을 협력국이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 매부리코는 콩코드의 상징이었다. 이착륙시 시야를 확보하는 것으로 조절이 가능했기 때문에 비행시에는 올라갔다.

다른 일반 여객기 속도의 2배를 훌쩍 넘는 순항속도 시속 2300km(최고속도 2500km)를 자랑했던 콩코드는 불과 3시간 만에 대서양을 횡단하며 첨단기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 '부의 상징'이었던 콩코드 탑승. 비행기 내부도 점점 고급화되었다.

하지만 초음속으로 돌입할 때 나는 굉음(소닉붐)과 낮은 연비, 비싼 항공료로 인해 콩코드는 예견된 위기를 맞게 된다.

대서양을 빨리 이동해야 하는 사업가나 부유층들에게 티켓 가격이야 얼마가 되든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초음속 비행을 위해 기체를 축소하다 보니 좌석이 매우 좁았고, 간격을 넓히기 위해 좌석을 줄이면서 수익성이 악화되는 길을 걸었던 것이다.

▲ 1991년 5월,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공이 영국항공의 콩코드에서 내리는 모습

결정적으로 2000년 7월 25일,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이륙 직후 콩코드가 화재에 휩싸여 폭발하는 사고로 승무원과 승객 109명이 전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모든 기체의 운항이 즉시 중단되었다.

▲ 에어 프랑스 4590편 사고 순간

1년 후 콩코드는 운항을 재개하였지만 끔찍한 사고를 겪은 여객기에 비싼 티켓값을 지불하는 사람들은 훨씬 줄어들었고 사업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는 소련이 만든 투폴레프 Tu-144로 1968년 12월 31일에 첫 비행에 성공했다.

이 기체는 1973년 파리 에어쇼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겪으며 1983년에 운행이 중단되었다. 공교롭게도 초음속 여객기 라이벌의 사고가 모두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것.

 

결국 2003년 콩코드의 운항중단이 결정되었고, 그해 11월 26일에 영국항공의 콩코드 여객기가 히스로 공항을 이륙해 비스케이만(Bay of Biscay) 상공을 날아 브리스톨 필튼 공항(Bristol Filton Airport)에 착륙했다.

▲ 콩코드의 마지막 비행을 클리프턴 현수교 위에서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다.

마지막 비행을 마친 초음속 여객기는 40km 떨어진 브리스톨 항공박물관의 격납고를 향해 사람이 걷는 속도로 천천히 견인되었다. 운항을 마친 콩코드들은 2000년 사고 기체 외에는 모두 세계 각지의 박물관에 전시되는 길을 걸었다.

▲ 진스하임 기술 박물관(Technik Museum Sinsheim)에 나란히 전시된 콩코드와 Tu-144.

이날 비행을 한 콩코드(G-BOAF)는 1969년부터 운행한 20대의 기체 중 하나였고, 이로써 초음속 여객기의 시대는 오랜 기간 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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