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의 연속, 데니스 로드맨의 선수시절

NBA선수 생활을 지난 2000년에 접은 후로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데니스 로드맨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많은 비난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 방문을 감행. 
거기까지는 좋다고 해도 자국민이 북한에 의해 억류되고 있음에도 연일 친북적 발언을 함으로써 언론과 자국민들의 비난을 사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데니스 로드맨은 NBA의 전설.
일부 사람들은 '전설급까지는 아니다' 라고 반박하기도 하지만, 로드맨은 2011년 NB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아마추어때부터 '농구천재' 칭호 한번 쯤은 들어야 프로 농구 선수로 데뷔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임을 감안하면, 전세계 농구천재들의 집합소인 NBA, 거기서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선수라면 농구 커리어만큼은 전설이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다.


리바운드 하나로 전설의 위치에 올라선 그는 1992년 3월 4일,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경기에서 34리바운드를 잡아낸 바 있다.(연장포함) 이 경기에서 그는 전반에만 21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는 괴력을 보였다.


NBA의 한경기 리바운드 기록은 윌트 체임벌린의 55개(1960년), 전반 리바운드 기록은 빌 러셀의 32개(1957년)하지만 현대농구로 접어든 1973년 이후로 한정하면 로드맨의 기록은 4위에 해당된다. (1위 37개, 모제스 말론, 1979년)


특히 로드맨은 1979년 이후의 선수들 중 평균 리바운드 순위 1위부터 5위까지의 기록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로드맨 리바운드 개인기록 수립경기


많은 사람들이 최근의 로드맨이 보이는 기행적인 언동을 보고는 '유명선수 출신이 정신 나간 것 아니냐' 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사실 로드맨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선수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변함없는 로드맨의 기행들을 한번 살펴보자.



카메라맨 걷어차기


1997년 1월 15일,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의 경기중 볼경합을 하던 로드맨은 엔드라인 근처에서 카메라맨 유진 아모스(Eugene Amos)의 발에 살짝 걸려 넘어진다. 순간적으로 욱한 로드맨은 카메라맨의 사타구니를 걷어차 버렸다.

이럴땐 냅다 드러눕는게 상책 


순간적으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로드맨은 유진 아모스에게 20만 달러(한화 약 2억 1천만원)의 피해 보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규정에도 없고 유래도 없었던 사건이었기에 경기중 로드맨에게 테크니컬 파울이나 퇴장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NBA는 로드맨에게 2만 5천달러의 벌금을 부과함과 더불어 11경기 출전 정지까지 덤으로 안겨주었다. 결과적으로 11경기에 해당하는 연봉을 포함해 로드맨은 '남의 급소 시원하게 한번 차고' 100만 달러를 지불한 셈이었다.


논란의 자서전 《Bad as I Wanna Be》



1998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래리버드는 3번의 NBA 파이널 우승, 2번의 파이널 MVP, 그리고 센터가 아닌 포지션으로 최초로 MVP 3연패라는 대업을 달성한 전설.(통산득점: 21,791점 / 스틸: 1,556개 / 어시스트: 5,695개)

하지만 로드맨은 1996년 펴낸 자서전 '원하는 만큼 나쁘게(Bad as I Wanna Be)'에서 버드를 '백인이라서 과대 평가된 선수'라고 폄하해서 논란이 일었다.

이외에도 자서전 속에는 1993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다는 고백도 실었다.
자신을 이끌어주던 척 델리 감독의 사임에 더해 부인과의 이혼이 겹치면서 로드맨은 큰 상실감을 겪었고, 2월의 어느밤 자신의 차에서 소총을 무릎에 얹은 채로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가 주차했던 곳은 소속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홈구장 오번힐스팰리스(Palace of Auburn Hills)의 주차장이었다.


마음에 안드는 심판한테 박치기


1996년 3월 18일, 뉴저지 네츠와의 경기도중 판정이 마음에 안든 로드맨은 심판 테드 버너드(Ted Bernhardt)를 머리로 들이받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상의를 벗어던지고 코트를 떠나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지 퍼부었다.

NBA는 로드맨에게 6경기 출전 금지와 2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 로드맨은 선수가 마음대로 경기장을 떠나면 자동 부과되는 벌금 1천 달러, 6경기에 대한 연봉까지 포함해 총 2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시카고 불스는 당시 경기 평균 15.1리바운드로 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던 로드맨이 경기중 퇴장하고,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스코티 피펜이 무릎 부상으로 결장 중이었음에도 98-94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1971-72시즌 LA 레이커스가 세운 시즌 69승을 넘어 70승에 도전 중이던 시카고 불스는 핵심선수가 돌발 행동으로 빠지면서 큰 난국에 처하게 된다.


팀의 리더 마이클 조던은 "로드맨은 불스에게는 매우 위험한 존재지만 우리는 그의 능력뿐 아니라 자유분방한 이미지까지 용납했다. 그가 이 팀의 일부가 되고 싶다면, 우리가 필요로 할때 경기장에 있어야 한다."라며 그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로드맨은 이전에도 심판에 대한 욕설과 심지어 샌안토니오 스퍼스 시절에는 밥힐 감독에게도 아이스팩을 집어던지는 등의 기행으로 통제불능의 이미지가 박힌 선수였는데 불스에 와서 그나마 얌전해진 상태였는데 결국 중요한 시기에 사고를 친 것이다.

시카고 불스는 시즌 70승을 달성하기 위해 남은 17경기에서 12승을 거두어야 하는 험난한 상황을 앞두고 있었지만, 이 위대한 팀은 그것을 넘어 시즌 72승을 달성해냈다.



로드맨의 핵이빨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는 것은 로드맨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1997년 플레이오프에서 로드맨은 알론조 모닝과의 몸싸움을 펼치다가 유두를 깨무는 엽기적인 행동을 저질렀다.


로드맨은 궂은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수비와 리바운드에서 엄청난 집념을 보이는 선수였다. '벌레(The Worm)' 라는 흉측한 별명이 말해주듯이 그와 매치하는 선수들은 그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어..여긴 딱 물기 좋은 위치인데



결혼은 체질이 아니야

데니스 로드맨은 2014년 현재 공식적으로는 3번의 결혼을 했다.

첫번째 결혼은 1992년 9월 애니 베이크스라는 여성과 했고, 딸 알렉시스 로드맨(1988년생)을 두었다. 둘은 불과 3개월 후인 1992년 12월에 이혼을 했고 딸은 이미 성인이기 때문에 현재의 양육비나 위자료 문제와는 상관없는 인물들이다.

딸 알렉시스와 로드맨


1994년 11월에는 가수 마돈나와 로드맨이 열애중이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마돈나는 "로드맨과 아기를 갖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6명을 낳고 싶다" 라며 애정을 과시했지만 둘의 휘발유같던 사랑은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얼마안가 꺼져버렸다.


1998년 11월,로드맨은 카르멘 일렉트라(Carmen Electra)전격 결혼발표를 했다.
영화처럼 라스베가스의 작은 예배당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지만, 9일 후 로드맨은 '결혼 당시 서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는 이유로 혼인무효소송을 제출하였다.


일렉트라 역시 인터뷰에서 "이게 낭만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냥 맥도날드에서 치즈버거를 주문하는 행동과 같은거였어요" 라며 결혼을 몹시 후회하는 발언을 하였다.
부부는 1999년의 새해를 함께 맞았지만 4개월 후 이혼하기로 합의했다.


5년 후 일렉트라는 로드맨과의 결혼 3개월 전에 1주 간격으로 어머니와 언니를 잃고 정서적인 혼란을 겪는 중이었다는걸 강조했다.

"나는 데니스 로드맨과 매일 밤 데이트를 했고 그는 매우 재미있었어요. 당시에는 모든 우울한 것들에서 해방되고 싶었기 때문에 라스베가스로 날아가 무작정 결혼을 해버렸죠. 나는 엄마와 언니를 잃었기 때문에 또다른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어요. 일종의 집착이었죠"

"로드맨과 결혼 후 다툼이 잦아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를 매우 다그쳤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난 깨달았어요.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 나 자신이 엄마와 언니를 잃은 내 감정을 외면하고 있었다는걸.. 결국 이 결혼자체가 가짜라는걸 알고 이혼을 결심했어요"

이후 일렉트라는 2003년 미국의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인 데이브 나바로와 결혼하지만 2007년에 이혼하였다.
2008년에는 록 그룹' 콘'의 기타리스트 롭 패터슨과 약혼을 하지만 2012년까지 결혼도 하지 않았고, 2012년 12월부터 2013년 2월사이에는 <아메리칸 아이돌>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사이먼 코웰(Simon Cowell)과의 데이트가 포착되기도 하였다.

미셸 모이어와 로드맨


한편 1999년부터 미셸 모이어와 만나기 시작한 로드맨은 그녀와의 사이에 아들 DJ(00년생), 딸 트리니티(01년생)를 낳은 뒤 2003년 그의 42번째 생일에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고, 부부는 결혼 이듬해인 2004년 이혼을 신청하지만 여러번 중재가 오고가면서 질질끌다가 2012년에야 공식적으로 이혼한다.

현재 로드맨이 진 빚은 미셸 모이어와 그녀와의 사이에 둔 자녀들에 대한 위자료와 양육비 86만 달러이다.



모피보다는 문신이 나아


2004년, 세계적인 동물보호단체인 'PETA(the 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는 '모피를 입느니 차라리 벗는 게 낫다' 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포스터를 공개했다.


포스터의 주인공은 바로 데니스 로드맨.

그가 헐벗고 촬영한 포스터에는 '밍크를 입느니 차라리 문신을 고려하라(Think INK, not MINK)' 라고 적혀있었다


사람들은 PETA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온몸이 과하게 문신으로 뒤덮인 사람의 말이라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PETA의 캠페인에서 남성이 누드촬영을 한것도 처음이고 스포츠 스타가 참여한 것도 최초였다.



뒤늦은 컴백시도 


조던의 은퇴와 피펜의 이적으로 시카고 왕조가 끝난 후 로드맨도 계약해지가 되었다.


1999년 LA 레이커스에서 그에게 '어떤 짓을 해도 괜찮다'고 유혹하며 계약에 성공하지만 23경기만을 뛰고 퇴출된다99-00시즌 후반에는 댈러스 매버릭스의 부름을 받았지만, 불과 12경기 만에 2번의 퇴장을 당하고 구단주에게 막말을 하면서 방출되었다.


2006년 2월, ABA 밸링햄과의 경기에서 가볍게 블로킹 당하는 로드맨


이후 한국 프로농구 진출을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금액차이에 대한 이견으로 실패한 뒤 2004년과 2005년에는 NBA하부리그인 ABA의 오렌지카운티 크러시와 계약하며 NBA복귀를 노리지만 결국 실패한다.


2005년과 2006년에는 핀란드, 영국, 필리핀등지에서 이벤트경기를 하기도 하며 농구를 통한 삶을 계속 살아가던 그는 2011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자질구레한(?) 사고


1999년 11월 5일, 당시 부부였던 로드맨과 일렉트라는 경범죄로 기소되어 각각 2,500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적이 있다.

1999년 12월에는 무면허로 음주 운전을 하다가 체포되어 벌금 2,000달러와 3개월간의 알콜치료 프로그램에 참석을 명령받기도 하였다.


2002년에는 그가 소유한 레스토랑에서 보건법을 조사하던 공무원을 방해하여 체포되었다. 

2003년에는 약혼녀를 폭행한 혐의로 체포되는등 캘리포니아의 뉴포트비치에 위치한 로드맨의 집에는 경찰이 크고작은 문제로 70회나 출동하였다.

2004년 4월에는 라스베가스에서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되었고, 2008년에는 LA 호텔에서의 한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2개월 후 집에서는 아내를 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어 3년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명예의 전당 입성


이런 천하의 무법자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때는 눈물을 흘렸다.


은퇴 11년만인 2011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그는 "내가 만약 농구를 하지 않았다면 트럭운전수나 노숙자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늘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것이 감격스럽다" 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이날도 깃털과 반짝거리는 장식이 달린 코트를 입고 나타나 여전히 평범하지 않은 모습을 뽐냈다.


로드맨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함으로써 시카고 불스 왕조는 3년 동안 무려 6명(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필 잭슨, 데니스 로드맨, 텍스 윈터, 아티스 길모어)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기염을 토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데니스 로드맨이야!


2012년 4월, 미국 라스베가스의 MGM 그랜드호텔 의류 매장에서 로드맨이 현금을 마구 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로드맨의 변호사에 따르면, 매장 직원이 그에게 계산과정에서 "파산하신 것 아니었나요? 헤헤" 라며 농담을 했고 이에 로드맨이 발끈하여 "내가 무슨 파산을 했다는거야!!" 라며 현금을 꺼내 마구 뿌렸다고 한다.
당시 로드맨은 빚으로 인해 자녀 양육비까지 지급할 여유가 없다는 기사가 나오는 상태였다.


김정은 생일 축하 노래 열창

김정은의 학창시절 우상이었던 로드맨은 그의 초청을 받고 북한을 방문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북한의 인권과 독재에 대한 질문에 "그건 내가 알바 아니다" 라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한국과 미국인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특히 김정은의 생일을 축하하고자 북한을 방문한 뒤 CNN 앵커 크리스 쿠오모와의 생중계 인터뷰에서 호통까지 치며 김정은과 북한정권을 변호했다. 이 일로 수많은 비난을 받은 그는 이후 사과의사를 밝히며 '인터뷰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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